연재 2012.10.25 23:08

잉여 건축물:경전철(글_이현석)

<월간잉여>'잉여 건축물'에 대하여 연재하기로 하면서 가장 먼저 떠오른 주제는 바로 전국적으로 건설된, 또는 건설이 예정된 경전철이었다. 지어놓고 잉여로운 형태로 유명무실하게 되는 꼴이 한심해서이기도 하지만, 단순히 비웃음만으로는 끝날 수 없을 파국을 낳고 있기 때문이다.

 

가히 '경전철 대란'이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로 전국의 지방자치단체는 경전철이 낳은 '막장드라마'로 몸살을 앓고 있다. 경기 용인시의 경우 사업비 1조에 추가예산 3조를 투입하여야 하는 상황에 민자사업자를 둘러싼 민형사 분쟁까지 진행되고 있다. 경남 김해시의 경우에는 사업비 13천억에 경전철을 완공하였으나 저조한 탑승률로 매년 1천억 이상 민자사업자에게 보상해야 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한다. 인천시는 모노레일 형태의 단거리 경전철을 1천억 가까운 비용으로 완공하였으나 어이없는 부실공사 때문에 레일과 차량 모두 사용하지 못하고 폐기될 운명에 있고, 추가비용만 5백억이 예상된다고 한다. 7월부터는 경기 의정부시에서도 경전철이 새로 개통될 예정인데, 6천억 가까운 사업비가 들었지만 그에 걸맞는 수요를 창출할 수 있을지는 여전히 의문시되고 있다. 앞으로 진행될 사업의 경우에도 미래가 어둡다. 현재 재정투자가 계획된 사업으로는 서울시 5, 부산시, 울산시, 대전시, 광주시, 경기 광명시, 성남시, 김포시, 충남 천안시, 경남 창원시 등 15개 노선이며, 이들의 추정 사업비 합계는 12조가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 4년간 4대강 사업처럼 하도 엄한 데에 돈을 쓴 경우가 많아서 12조가 큰돈이 아닌 것으로 생각될 수 있지만, 문제는 이들 자금이 국고가 아닌 지자체 차원에서 집행된다는 사실이다. 가뜩이나 지자체 자금사정이 악화되는 상황에서 더더욱 심각한 재정대란을 초래할 수 있다는 점이 많은 사람들을 아찔하게 하는 것이다.

 

이렇게 경전철 사업이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데에는 몇 가지 공통적인 원인이 있다.

 

가장 큰 부분은 역시 부실하고 무리하게 진행된 수요조사이다. 대표적으로 김해시의 경우, 처음 사업을 계획할 때 예측한 1일 탑승객의 수는 개통연도에 176천여명으로 예측했으나, 실제로는 3만여명 정도에 그쳤다. 다른 사업의 경우에도 숫자의 차이는 있으나 공통적으로 실제 승객의 수 (또는 현실적으로 재추정한 승객의 수)가 사업초기 예측치의 절반도 되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이렇게 무리하게 수요조사를 진행하는 이유는, 해당 지역민은 부동산 자산의 가격을 높일 수단으로 공공교통을 끌어들이고, 지자체 입장에서도 표가 아쉬운 터에 이러한 요구를 쉽게 거절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고객의 특성을 잘 알기 때문에 보통 사업계획을 제공해주는 지역개발연구원이나 민간사업자들도 고객의 구미에 맞는 정보만을 선택하여 (또는 조작하여) 제공하고 사업을 벌이면서 자신들의 이익을 챙기게 되는 것이다. 특히나 요즘 서울지하철 9호선처럼 민자사업자와 '최소운영수입보장'특약을 맺은 경우에는 문제가 더더욱 꼬이게 된다. 가뜩이나 비싼 돈을 들여서 지어놓고 파리 날리는 것도 지자체 입장에서는 서러울 지경인데, 사업실패를 부른 장본인인 회사한테 고스란히 고객의 돈으로 수입을 보장해 주는 꼴이니 정치적으로도 문제가 되는 것이다. 무리한 수요조사를 막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이해당사자들이 조금씩 욕심을 내려놓아야 하지만, 내면적 욕심을 억제하기 위하여 법률로 강제할 방안이 없다는 점이 문제해결을 어렵게 하고 있다.

 

그림: Slump







다른 공통점으로는 이들 경전철이 역설적이지만 결코 '경전철'스럽지 않다는 것이다. 실제로 건설되었거나 계획중인 시스템을 보면 기존의 지하철 못지않은 규모로 과다하게 지어진 경우들이 많다.

 

이를테면 전구간을 지하 깊숙히 파묻어버린다든지 또는 전구간을 높은 고가선로를 지어 올린다든지 하는 방식으로 말이다. 그나마 고가로 지으면 돈이라도 덜 들게 되지만, 지하로 묻는 경우에는 설령 터널단면을 줄인다고 하더라도 공사단가가 만만치 않다. 과다설계로 생기는 또다른 문제점은 승객들의 접근성이 떨어진다는 점이다. 경전철은 기존 지하철에 비하여 단거리를 신속하게 오가는 시스템이기 때문에 정거장도 시내버스만큼 서로 가깝게 붙어있게 된다. 그런데 지금처럼 기존의 지하철 수준의 깊이와 규모로 짓게 된다면 지상과 승강장 사이의 거리가 멀어지게 되면서, 짧은 거리를 빨리 이동한 만큼의 시간절약 효과가, 승하차하는데 드는 시간지연으로 인하여 상쇄되게 된다. 이에 대한 해법으로는 최근 외국에서 주목을 받고 있는 노면전차(트램) 시스템을 고려해 볼 수 있다. 별다른 지하공사가 필요 없어서 공사단가가 지하철의 10분의 1 수준이고, 시가지 노면을 직접 달리기 때문에 승객들의 접근성도 매우 좋다. 반면에 기존 버스중앙차로 보다는 수송력이 높고 매연이 없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한국에서 경전철 시스템을 결정할 때에는, 이러한 사회적 편의보다는 건설자본과 정치권력의 편의가 앞장서기 때문에, 그들이 별 재미를 보지 못하는 (다른 말로, 별로 남겨먹을 것이 없는) 경제적 시스템에는 그닥 관심이 없는 것이 비극이라면 비극일 것이다.

 

마지막 문제점은 경전철과 광역교통망 사이의 시너지효과가 전혀 없다는 점이다. 현재 지어지고 있는 경전철은 주로 도시내부의 특정 지역을 오가는 형태로 계획되고 있다. 그러나 도시화가 확대되면서 사람들이 이동패턴은 과거처럼 한 도시에 머무는 경우가 별로 없을 정도로 급속하게 광역화되고 있다. 즉 서울의 출퇴근시간 교통량을 담당하는 것은 외곽의 김포, 의정부, 용인 등지에서 오가는 사람이고, 부산의 출퇴근시간 교통량은 김해, 양산 등지에서 오가는 사람들이 담당한다. 그런데도 이들 도시의 경전철 계획은 기존의 광역철도 시스템에 분리되어 (심지어는 광역철도 시스템이 없는 경우도 있다!), 도심 내부에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새로운 교통패턴에 전혀 부응하지 못하는 것이다. 지금 지어지는 경전철이 광역교통망과 연계를 맺는 유일한 방법은 기존 철도 시스템과 환승역으로 연결되는 형태이지만, 어차피 상당한 시간이 걸리는 환승을 거칠 바에야 차라리 자동차를 택하겠다고 하는 심리가 나오는 것은 막을 수 없을 것이다.

 

최근 다른 선진국, 특히 독일, 스위스, 미국에서도 이러한 문제를 인식하게 되면서 경전철과 기존 철도시스템을 직결하는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 사실 앞서 언급한 트램 시스템이 우수한 이유 중 하나는 경제성도 경제성이지만, 기존 철도와 규격이 같아서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도심 내부에서는 노면전차의 형태로 도심지 위를 직접 달리면서 버스 못지않게 보행자 친화성과 승객 편의성을 보장하면서도, 도심을 벗어나면 기존 철도와 직접 연결되어 고속의 광역교통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다. 한국에서도 이러한 부분이 기술진들 사이에서는 많이 다루어지고 있으나, 역시 건설자본과 정치권력의 이해관계에 부응하지 못하는 탓과, 지역민들의 이해부족의 탓으로, 실제 실현되기에는 아직 요원해보인다.

 

이처럼 전국의 경전철은 지금 단순한 잉여단계를 넘어 위기단계로 치닫고 있다. 그 때문에 일각에서는 경전철 무용론을 주장하면서 과거의 버스교통을 강화하자는 움직임도 보인다. 그러나 버스는 그 수송력이 낮기 때문에 전철수요가 부족한 과도기적인 단계에서는 유용하지만, 도시규모가 어느 정도 성장한 다음에는 지속가능한 서비스를 제공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전철노선이 지금처럼 구비되기 시작한 2000년대 이전의 서울시 시내버스의 혼잡을 생각해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경전철 사업은 친환경적이고 안정적인 교통서비스를 제공하는데 필수불가결한 사업이라고 볼 수 있다. 다만, 그 사업을 진행하는 데 있어서 건설자본과 정치권력의 이해관계를 배제하고, 철저히 경제성과 효율성에 입각하여 최적의 시스템을 구축하는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잉여상태로 한심하게 놀리고 있는 경전철은 확실히 죄이지만, 경전철 자체를 죄악시 하는 것은 경전철 문제에 대한 해법이 아니기 때문이다.









※ 월간잉여 7월호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