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잉각색 2013.01.21 00:18

사과맛 동거 이야기(찐찐)

아직도 서울역 앞에 가면 사과를 사고 싶다. 이태원에서 일을 마치고 돌아오던 길, 서울역에서 갈아타기 전 뛰어 들어가곤 했던 마트. 한 주 치 식료품과 생활용품을 바구니에 밀어 넣고 계산대로 향하다가 늘 멈칫거렸던 과일 코너. 30분 안에 사서 버스를 타야 환승이 되는데, 한 봉지에 5490원이라는 푸른 아오리 사과를 들었다 놓았다 하다가 급하게 돌아서던 발걸음이 생각난다.




영화 [사과] (2009) 포스터




고시생이었던 그와, 23초의 대학생이었던 나는 학교 옆 반지하 방에서 동거를 시작했다. 부모님께는 각자 자취와 하숙을 하는 것으로 알리고 우리 집에서 마련해준 2천만 원의 보증금과 그의 집에서 보내주는 40만 원의 월세로 살아가기로 했다. 반지하이긴 했지만 그가 원래 살던 하숙집보다 쾌적했고, 나는 갑갑한 집에서 나와 살 수 있기만 하다면 어디든 좋다고 생각할 때였다. 더군다나 매일 봐도 좋고 하루만 못 봐도 그립던 그와 함께 하는 삶이라니.


생활은 늘 다변했다. 나의 과외비와 그의 집세가 들어오는 날에는 풍선처럼 부풀어 올랐다가 월세와 공과금을 내고 나서는 초승달처럼 가늘어지기도 했다. 내가 다니던 학원에서 해고되고 돌아오던 날에는, 버스가 지나치던 종로의 제과점의 빵들을 보며 많이 울기도 했다. “살 수 없겠네” “살 수 없겠네되뇌며, 그것이 빵을 살 수 없는 것인지 앞으로 살아갈 게 막막한 것인지 알 수 없겠다고 생각했다. 퉁퉁 부은 채로 집에 돌아온 나를 보며 깜짝 놀란 그가 따뜻한 손으로 등을 쓸어내려주었던 것도 기억난다. 괜찮다며, 다음 날 통장에 5만 원을 넣어주며 밥 잘 챙겨먹고 다니라고 보내준 문자를 읽다가도 눈물이 났다. 지나가보면 정말 소소한 일들이었지만 그때는 서로 잘 울고 잘 웃고 그랬다.


그래도 대신동 집을 떠올리면 좋았던 기억들이 비눗방울처럼 피어오른다. “가사노동 분담하기” “월경 중 배려하기처럼 꼭 지키기로 한 규칙들을 노란 2절지에 큼지막이 써서 벽 한쪽에 붙여놓고 찍었던 사진. 크게 다툰 다음 날 그가 끓여놓고 간 카레 냄비 밑에 숨어 있던 사과 편지. 늦게 공부를 마치고 돌아온 그와 함께 만들어 먹었던 밍밍한 인스턴트 냉면의 국물. 겨울날 동파된 보일러를 드라이어로 한 시간이나 녹여서 드디어 따뜻한 물이 나왔을 때의 얼싸안고 좋아했던 우리. 그렇게 거짓말처럼 2년이 흘렀다.




영화 [티끌모아 로맨스] (2011)



집 계약이 만료될 즈음이었다. 그는 시험에 붙었고, 나는 본격적으로 취직을 준비할 시기였다. 우리는 옆 동네 2층 원룸으로 이사를 준비했다. 비슷한 조건에 전 집보다 좀 좁지만, 아침부터 볕이 들어오고 곰팡이도 피지 않는다고 해서 결정했다. 이사 갈 집에서는 내보낼 사람이 있어 계약이 급하다고 했다. 원래 살던 집에 새 사람이 들어오지 않아 애가 탔다. 계약일이 며칠 남긴 했지만 이사 갈 날짜에 맞춰 주겠다던 보증금은 차일피일 미뤄졌는데, 집주인은 전화를 받다 안 받다 했다. “아저씨, 주시기로 한 날짜가 지났는데요.” “아저씨, 죄송한데 저 거기 계약이 급하다고 해서요.” 사정을 했지만 집주인은 언제 주기로 했냐는 듯 모르쇠였다. 새집 주인은 새집 주인대로 왜 빨리 오지 않느냐고 역정을 냈다. 몰릴 대로 몰린 나는 입주할 때는 3개월 전에만 말하면 원하는 날짜에 맞춰주신댔잖아요. 말씀드린 지 4개월이 되어가는데요. 사정 좀 봐주세요라며 부득불 약속을 잡고 또 잡아 사무실로 찾아갔다. 계약일 하루 전이었다. 빌딩이 세 채라던 아저씨는 퉁퉁한 배를 쓰다듬으며 집주인은 2천만 원을 내어주었다. 고맙습니다, 인사하고 돌아서는데 머리 뒤꼭지를 향해 말소리가 들렸다.


요즘 학생들은 하여튼 싸가지가 없어. 아가씨, 동거하는 걸 집에서는 아나?

하여튼 발랑 까져서.


말없이 돈을 들고 집으로 돌아온 나는, 혹여 집주인에게 들릴까 봐 입에 이불자락을 밀어 넣고 울었다. 죄 지은 것도 아닌데, 왜 이런 얘기까지 들어야 하나남자친구가 돈을 받으러 갔으면 그렇게까지 얘기했을까집이 무너져라 바닥을 두드리며 울던 대신동 반지하 집 생각이 난다.



이제는 그 어린 날의 기억과 소중했던 사람도 모두 과거의 추억으로 자리 잡았지만, 이제는 나도 직장을 잡고 다른 집에서 살아가고 있지만, 여전히 전세방에서 융자받은 돈들 이자 납입일 손 꼽아가며 카드 값에 적금에 생활이 펴졌다 줄었다 한다. 나날이 정신없는 하루는 지난날들과 닮아 있어 그런지, 아직도 서울역에 가면 사과가 사고 싶다. 파랗고 단단한 아오리 사과 한 봉지. 젊은 우리 사랑, 젊은 날의 동거, 당신과의 사과 한 봉지짜리 기억이 아직 마음속을 데굴데굴 구른다.

 

 







※ 월간잉여 11월호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