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2013.04.03 21:08

레슬링여 1편: 매트 하디 (김호진)


WWE로 대표되는 프로레슬링 업계는 그야말로 잉여들의 천국이다.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이다. 프로레슬링이라는 업계는 선수 개개인의 실력보다 스타성에 초점을 맞추고 짜놓은 각본으로 돌아간다. 스타성이 없는 선수들은 각본 한 톨 부여 받지 못한 채 방송에 아예 출연을 못하거나 가끔 출연을 하더라도 스타 선수들이 내려다주시는 체벌을 감사히 받는 역할만 수행해야 한다. (이런 선수들을 일컬어 자버 jobber라고 한다.) 거기에 단체의 운영방침이 꽤나 비합리적이라서 북쪽의 김씨 왕조에나 존재할 연좌제 같은 게 암암리에 존재해 태그팀 파트너나 형제 선수가 사고를 칠 경우 강제로 징계부담을 나눠야 하는 경우가 많다.


이번 호의 주인공 매트 하디(Matthew Hardy) 역시 20여년이 다되어가는 선수 생활 동안 잘난 동생 새끼와 친구 놈 때문에 각종 평지풍파를 다 겪었다. 그러면서도 ‘Will Not Die’ 를 외치며 주목 받기 위한 몸부림을 찰락댔으나 종내에는 살아도 산 것 같지 않은 생활을 지내다 자살 소동까지 벌인, 자신의 피니쉬 기술 명칭인 트위스트 오브 페이트’(Twists of Fate) 만큼 꼬인 운명을 살았다.

 



파이팅 넘쳤던 매트 하디



O.M.E.G.A의 탄생과 성장

매트 하디는 1974, 노스캐롤라이나의 카메론이라는 시골 깡촌에서 태어났다. 3년 뒤인 77년엔 마치 '전두환x노태우' 마냥 같은 애증의 관계이자 평생의 동반자인 동생 제프 하디(Jeff Hardy)도 태어난다. 유년의 하디 형제는 성골 초글링 같아서 큰 숲에 불을 지르거나 아버지가 어머니 사후 만나던 이웃집 부인의 차 주유구에 흙을 집어넣는 등, 깽값만 해도 집 하나는 살만한 블록버스터급 사고를 치고 다녔었다.


이후 프로레슬링에 빠져 동네 친구들을 모아 어설프게나마 단체를 결성하고 (동네마다 퐁퐁, 방방이라고도 하는)봉봉을 사 그곳에서 레슬링을 하곤 했었는데 나이가 점점 늘어감에 따라 이 짓(?)에 대한 스케일도 커진다. 지금은 나름 인디레슬링씬의 신화로 일컬어지는 단체 O.M.E.G.A(Organization of Modern Extreme Grappling Arts)를 만들고 레슬링 경기를 녹화해 테이프로 만들어 팔거나 여러 지역 기업이나 매장들로부터 스폰을 받아 행사를 기획하는 등의 싹수 있는 행동을 이어나간다. 놀라운 것은 스폰서를 따오거나 행사를 기획하고 홍보하는 모든 일들을 매트 혼자 진행해 왔었다는 거다. 지금은 어디서든 잉여취급 받는 그가 적어도 O.M.E.G.A에서는 없어서는 안 될 절대적 존재였었다는 거다.


O.M.E.G.A가 각광을 받게 됨에 따라 자연히 메이저 단체로부터의 계약제의가 들어오기 시작한다. 1998년 하디 형제는 곧 당시 가장 큰 레슬링 단체 중 하나였었던 WWF(지금의 WWE, World Wreslting Entertainment)에 들어가게 되는데 갓 데뷔하고 체구도 작은 신인이 처음부터 대접을 받기는 어려운지라 이렇게 저렇게 두들겨 맞는 역할들만 수행했었다. 그렇게 맷집만 기르는 생활을 하다 레슬링 팬들이라면 알고 있듯 하디 보이즈’(Hardy boyz)의 전설이 시작된다. ‘더들리보이즈’(Dudley Boyz)에지&크리스쳔’(EDGE & CHRISTIAN) 같은 동료들과 함께 레슬링사에 길이 남을 굵직굵직한 경기들을 남기게 된 것이다.




하디보이즈의 추락

몇 년간 전성기를 구축하며 굳건해 보이던 하디보이즈에 금이 가기 시작한다. 모든 경기의 운영과 기술을 기획하는 등, 보이지 않는 곳에서 살림을 꾸려 온 매트에 비해 기술력은 별로이나 화려함과 잘생긴 외모 등 스타성을 겸비한 제프가 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면서 부터다. 제프는 그의 연식이 늘어감에 따라 대가리가 컸다고 형인 매트에게 반항질을 하기 시작한다. 결국 2001년 하디 보이즈는 (각본상) 매트의 배신으로 해체하게 되나 역시 스포트라이트와 훌륭한 각본은 모두 동생 제프의 몫으로 돌아갔고 실력은 좋으나 스타성이 부족했던 매트는 방송에 나오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해야 할 위치로 내려앉아 버렸다.


2003년 제프는 레슬링에 염증을 느껴 잘근잘근한 사고를 치고 다니다 음악을 한답시고 WWE를 떠난다. 그에 반해 매트는 스스로 캐릭터를 기획해 운영진에 제의해 방송에 출연하고 이윽고 레슬링계의 가장 큰 행사인 레슬매니아에서 혼자서 당당히 경기를 뛰기도 하는 등 나름대로의 성공가도를 달리기 시작하지만 그 인기는 성인남성들의 고민 마냥 곧 수그러들어버렸다. 스타 선수들이 주시는 대로 맞아야 되는 처지로 전락해 버리는데 좌절은 여기서 그치지 않아 잘못된 만남 같은 일이 벌어지게 된다. 2005, 오랜 시간 동안 행복을 같이 나눈 그의 연인 리타와 제일 친한 친구 에지가 바람이 나 버린 것이다. 그것도 모자라 상대적으로 스타성이 높은 에지와의 충돌을 우려한 운영진에 의해 매트는 해고크리를 맞이하게 됐다.


하지만 병 주고 약 준다는 우리 시대 속담은 미국에도 적용된다. 위의 잘못된 만남을 그대로 활용한 악랄한 운영진에 의해 매트는 여친을 앗아간 에지에게 복수한다는 시나리오를 받고 WWE로 컴백한다. 몇 번의 대립을 거친 매트와 에지의 대결은 (당연히) 에지의 승리로 끝이 나지만, 돌아온 매트는 예전처럼 샌드백 같은 신세가 되진 않았다. 타고난 성실함과 기술력을 바탕으로 몇몇 좋은 각본을 받아 메인 이벤터의 위치는 아니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높은 위치를 고수하게 된다.

 




레슬러의 고독한 삶을 그린 영화 <더 레슬러>(2008)




(서프라이즈 성우 톤으로 읽어주시길) 그러--

2006, 개떡 같은 동생 새끼가 WWE로 돌아오면서 그의 앞날에 암운이 드리워진다. 처음엔 하디보이즈 재결성이니 뭐니 해서 (동생을 중심으로 한) 스포트라이트를 받다가 종국에는 언제나 동생놈만 주목받는 게 싫었어라는, 매트로서는 한 맺힌 스토리를 받아 동생 제프와 링 위에서 대립하게 된다. 하지만 이 대립도 오래는 못 간다. 또다시 제프는 메인챔피언자리를 놓고 싸우는 위치로 올라가고 매트는 기껏해야 US챔피언이나 ECW챔피언 같은 다소 격이 떨어지는 챔피언 자리를 놓고 사투해야 하는 입장이 된다. 사실상 매트가 WWE로부터 잉여취급을 받지 않았던 마지막 시기가 이때다.


이후 동생 제프는 시쳇말로 약을 빨아대었고 그의 스타성을 높이 산 WWE에서 가벼운 징계 조치만 했음에도 불구하고 사고만 치다 결국 WWE에 뒷통수를 치고 2위 단체인 TNA로 건너가 버리고 만다. 잘못 없는 매트는 연좌제로 인해 신인 때처럼 거물 선수들, 또는 WWE에서 띄워주기로 작정한 신인선수들의 동네북 신세로 지내다 WWE에 할 말도 제대로 못하고 (사실 WWE에서 들은 척도 안했다는 게 옳다. 이래서 소통이 중요한거다) 2010년에 방출되어 버렸다.


동생과 애인과 친구 때문에 거의 갈 데까지 가버린 신세가 된 매트는 이후 3개월간 백수로 지내다 처음으로 동생 덕을 본다. ‘동생 버프2위 단체인 TNA(Total Nonstop Action Wrestling)로 취직한 것이다. 그러나 자기관리 실패로 인해 불어버린 체중, 다른 선수들과의 불화, 그리고 음주운전으로 인해 TNA에서 마저도 쫓겨나고 만다. 실업자가 되어버린 이후론 그야말로 비참의 극치를 달리는 신세로 전락해 상습적인 음주 운전에 마약까지 적발되고 본인 집에 괴물이 산다는 헛소리로 점철된 영상까지 올린 데다 자살 소동까지 벌이는 등, 예전의 매트 팬들이라면 그저 눈물로 중랑구는 침수시킬만한 안습 행보를 보이게 된다. 이로써 그나마 잡(job)질이라도 가능했던 기능성 잉여신세에서 아예 취급조차 꺼리게 된 재활용불가 잉여로 전락하게 되어버린 것이다. 다행히(?) WWE의 후원으로 재활 센터에 들어가 안정을 되찾고 전국구 단체 중 하나인 NWA산하 단체에서 복귀전을 치른다고 하지만 그가 걸어왔던 레슬링 외길 인생을 되짚어보면 참 씁쓸한 현실이다.


많은 프로레슬링 선수들은 고통을 잊거나 근육을 위해 잦은 음주나 스테로이드 등 약물에 손을 대고 그로 인해 가산을 탕진해 은퇴 후 어려운 삶을 살거나 요절하는 등의 안타까운 모습을 보인다. 매트는 적어도 내가 WWE를 시청했던 마지막 시기에도 나름대로 안정적인 삶과 경기력을 유지했던 선수였던지라 지금 같은 상황을 보내게 될 줄은 몰랐다. 그의 팬 까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안타까움은 금할 길이 없다.

 

매트가 그렇게 되어버린 건 물론 동생놈, 애인X, 친구새끼-이 삼악일체의 존재가 지대한 영향을 미쳤지만 잘 쓸 수 있는 선수도 잉여로 만들어 내쳐버린 WWE 그 자체도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앞으로 WWE에 의해 버려진 많은 선수들의 이야기들을 실어볼 예정이다.











※ 월간잉여 1월호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