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여논단 2013.05.15 18:54

삽질은 ㄴㄴ해 (이현석)

부제: 대선 과정에서 제기된 삽질공약 TOP3


대통령 선거 이후로 환호와 탄식 속에 시간을 보내왔을 많은 분에게 축하와 위로를 보낸다. 워낙에 많은 평론가들이 대선에 대한 평가를 내린 바 있기 때문에 식상한 정치평론을 더 언급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필자가 저번 대선을 두고 꽤 흥미롭다고 느낀 점 중 하나는 역대 어떤 선거들보다도 토목공약이 눈에 띄지 않았다는 것이다. 아마도 가카께서 재임 시절 단군 이래 가장 위대한(?) 규모의 토목사업을 휘저으신 덕분에 토목사업에 대한 사회적 거부감이 높아진 탓이 아닌가 싶다. 또한 때마침 정파를 초월하여 복지국가에 대한 공감이 높아진 것도 이유가 될 수 있겠다. 그래서 그런지 신문이나 인터넷 어디를 보더라도 토목사업 공약에 대한 검증은커녕 소개조차 되지 않았었다.


하지만 가카가 워낙 토목사업을 부정적으로 말아먹으셔서 그렇지, 원래 선진국에서도 토목사업이 대통령 선거의 단골 주제가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프랑스의 고속철도 테제베(TGV)와 루브르 미술관의 리모델링은 1980년대 미테랑의 대선 공약에서 나온 위대한 유산이다. 전임 대통령 사르코지 역시 그랑파리(Grand Paris)라는 대규모 국토계획 공약을 들고 나와 공간의 업적을 남기려 했다. 미국의 오바마 역시 대규모 고속도로, 철도, 도시 인프라 재생사업을 미래의 미국을 부강하게 만들어 줄 공약으로 내세우면서 막대한 예산을 약속한 바 있다. 그러나 이러한 예산들이 모두 착하게 쓰이는 것은 아니다. 일본의 경우처럼 막대한 국가예산이 전국토를 의미 없이 콘크리트의 무덤으로 만드는 식으로의 포퓰리즘으로 전락하게 되면 국가 재정위기라는 독배(毒杯)로 돌아오게 된다.


그래서 선거는 이미 끝났지만, 이번 대선 과정에서 제기되었던 토목 관련 공약 중에서 경제성, 환경성이 아닌 삽질성을 기준으로 평가했을 때 수위(首位)에 오를 만한 것들을 추려보는 것도 중요한 과정이라고 본다. 파고들면 한도 끝도 없겠지만,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3개만 추려보겠다.

 


동남권 신공항 (새누리)

또 신공항이다. 비행기로 1시간, 고속철도로 3시간, 고속도로로 6시간 이내에 모든 국토가 커버되는 코딱지만한 나라에, 이미 국제공항이 8개나 있는 나라에 또 10조원 이상을 들여서 국제공항을 짓겠다고 나섰다. 항상 그렇지만 모델은 허브공항이요, 이유는 지역발전이다. 다만 이번 동남권 신공항의 경우에는 자치단체에 따라 부산 가덕도냐 경남 밀양이냐 하는 문제로 입지선정을 두고 전쟁 조짐까지 갔었다는 점이 조금 참신한(?) 면이라고 볼 수 있다. 이미 재작년에 한차례 홍역을 겪은 이슈라 여러 전문가들이 불가론(不可論) 내세웠지만 다시 한 번 되짚어보자. 지금 영남지역에 국제공항이 없어서 지역발전이 안되는 것인가? 이미 대구, 부산에는 도심 접근성이 좋은 국제공항이 위치해있다. 문제는 수도권 집중 정책으로 지방도시에 인재와 자금이 몰리지 않아서 지방도시가 성장을 못하고 있는 것이고 그래서 해외여행 수요가 충분하지 않은 것이다. 이건 뭐 생각해 볼 필요도 없이 너무 당연한 이치이다.

 

만약에 이 지역에 충분한 규모의 해외여행인구가 존재한다면, 정부에서 뜯어 말려도 항공사 스스로 취항하려고 기를 쓸 것이다. 인천공항에 수많은 항공기가 오가는 것이 그 배후에 있는 수도권의 해외여행 수요 덕분이지 어느 정신 나간 항공사가 공항 건물이 좋아서 비행기를 보내겠는가. 그동안 여러 버전의 신공항 계획이 있었지만, 인천공항을 제외하고 성공한 케이스는 전무하다. 가장 기본적인 경제학의 수요-공급의 원칙을 무시하게 되면 어떤 버전의 신공항도 성공하지 못할 것은 자명하다.


 

경부선 지하화 (새누리)

이 공약은 말 그대로 경부선을 지하로 파묻어 버리겠다는 것이다. 물론 서울-부산 전구간을 그렇게 하겠다는 것이 아니고 서울 노량진에서 경기 군포까지 20km정도를 그렇게 하겠다는 것이다. 뭐 이유야 뻔하다. 철도가 지상으로 지나기 때문에 소음이 심하고 도시가 양분돼서 도시발전이 저해되고 등등. 따라서 철도를 지하로 묻어버리면 소음 문제도 해결되고, 지상 철도부지를 개발하면 돈도 벌고 꿩먹고 알먹고아니냐는 것이다. 그러나 미안한 이야기지만 전혀 그렇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지하화에 소요되는 비용이 (공약집에 나온 것으로만 따져도) 무려 7조에 육박한다. 경기도에서 계획하는 급행철도 GTX3개 노선(75km)의 신설비용이 10조원 정도로 추산되는 것에 비하면 너무 비싼 계획이다. 그 뿐인가. 십분의 일 미만의 비용만 투자해서 신호 시스템만 개량해도 기존 경부선을 준()고속철도로 만들 수 있다. 철도변 주민들이 얻을 편익에 비해서 나머지 국민들이 져야할 부담이 너무 크다. 그리고 철도가 정 꼴보기 싫다면 차라리 훨씬 적은 돈을 들여서 현재 철도부지 위를 덮어서 건물을 짓든지 공원을 만들든지 하면 될 것이다. 이런 사례는 국내외에 많이 있다. 도대체 왜 생돈을 들여서 지하에 파묻지 못해서 안달일까. 그리고 백번 양보해서 철도부지에 부동산 개발을 한다손 치더라도 과연 사업이 성공한다는 보장이 있을까. 서울 도심 한복판 건물도 텅텅 비어가고 강남 아파트 값도 계속 분위기가 안 좋은 판에, 도대체 누가 새로 개발한 (그것도 좋은 위치에 있지도 않은) 막대한 부동산 물량을 처리한다는 말인가.





그림 잉집장




 

목포-제주 해저터널 (민주)

이번에는 민주당이다. 새누리당의 동남권 신공항과 마찬가지로 정치적 텃밭을 달래기 위한 삽질 공약의 호남 버전이라고 보면 된다. 일단 공약의 내용은 목포에서 제주까지 남해를 가르는 해저터널을 만들어서 고속철도 KTX를 제주까지 연결하겠다는 것이다. 내세우는 논리 역시 간단하다. 제주도가 섬이다 보니 항공기나 선박에 많이 의존해왔는데, 이들 교통수단은 풍랑에도 약하고 수송력도 한계가 있으니 대량수송이 가능한 철도를 통하여 제주도 여행 수요를 높이겠다는 것이다. 또 하나의 논리가 있는데, 이렇게 해저터널을 짓고 호남선 KTX를 제주에서 무안공항으로 경유시키면 무안공항의 활성화가 가능하지 않겠냐는 설명도 있다. 딱 한마디만 하겠다. 해저터널 짓는데 들어가는 비용은 15조에 육박하는데, 호남고속철도 건설비용이 10조원이다. 고속철도를 소위 풀 스펙으로 하나 더 깔고도 5조가 남는 돈이라는 말이다. 제주도가 매년 창출할 수 있는 관광수요를 따져볼 때 가치가 있는지 없는지는 당사자 스스로 더 잘 알 것이다. 지금 런던과 파리 사이의 고속철도 운행을 가능하게 해준 영불해협터널도 개통한지 20년이 가까워지는데도 아직 건설비를 상환하지 못한 상황이다. 육지에서 제주로 가는 여행수요가 런던 파리 사이의 여행수요보다 아무려면 더 많을까. 무안공항 활성화 이야기도 생각해보면 참 웃기기까지 하다. 아니, 제주도에 올 사람들이 무안공항에 내려서 KTX를 타고 해저터널을 지나 제주로 가야할 이유가 단 하나라도 있을까.

 

천만 다행인 것은 현재 분위기로 봤을 때 저 공약들 중에 실행될 수 있는 것이 단 하나도 없다는 점이다. 늘어나는 복지수요 때문에도 그렇지만 건설 분야의 예산이 편성된 결과를 봐도 새 정부 임기 내에 착수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하지만 항상 감시의 눈초리를 유지하고 있어야 할 사안인 것은 분명하다. 지금은 우스갯소리로 전락한 지방공항의 처지이지만, 공약으로 나올 때만 해도 다들 설마 하다가 이렇게 된 것이다. 그렇게 한심한 삽질로 끝난 토목공약이 그것뿐이던가. 새만금이 그렇고, 각종 신도시들이 그렇고, 전국토 방방곡곡을 파헤치며 들어선 4차선 국도가 그렇다. 그나마 앞서 예를 든 3개의 사업은 워낙에 터무니가 없다보니 차마 추진할 동력을 스스로 잃어버린 것들이지만, 조금만 규모가 작은 사업들만 봐도 소리 소문 없이 진행되는 한심한 삽질들이 많다. 이번에 딱 걸린 쪽지예산도 다 그런 과정들이다. 그래서 결론은? 깨어있는 국민이 되자. .













※ 월간잉여 11호(창간 1주년호)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