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스포츠 2013.05.26 22:43

이 시대 셔틀맨을 위한 만화적 상상력 (흑염소)



셔틀. 스타크래프트에서 나오는 용어로, 유닛들을 운반/운송할 때 쓰이는 기구의 이름이다.

그리고 현재 한국에서는 학교에서 일진의 심부름으로
쉬는 시간마다 빵 배달을 하는 우리들을 '빵셔틀'이라고 부른다.  -<셔틀맨> 예고편 중-


성경에 기록되길, 인간의 삶이 생과 사로 나뉘고 노동의 대가로 먹을 것이 주어지며 출산의 고통을 얻게 된 것은 모두 사과 한 알 때문이었다. 하지만 사물 그 자체는 옳고 그르다 말할 수 없는 터, 어쩌면 원죄의 시작은 뱀의 사주를 통한 이브의 ‘셔틀 행위’였다고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인간의 역사에서도 셔틀의 흔적을 찾기란 어렵지 않다. 이집트와 잉카의 마추픽추라 하면 사람들이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것은 불가사의한 기술의 건축물들이다. 지금과 같은 기술과 장비가 없었던 당시, 모든 아름다운 문명을 꽃 피우고 한 나라를 세울 수 있었던 기반은 바로 부역이라는 이름의 ‘셔틀’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석조와 나무를 나르던 수많은 셔틀이 있었기에 문명은 책이 아닌 현실로 실존할 수 있었던 것이다.



애니메이션 The Prince of Egypt, 1998



거대한 규모로 중차대한 국사國事에 이용되었던 고대 셔틀과 달리, 현대로 넘어오면서 셔틀은 매우 세세한 분야로 나뉘며 개인화 되는 양상을 보인다. 또한 셔틀이 권력 관계에 의해 갑을 관계가 형성 된다는 것은 변함이 없으나, 그 권력은 셔틀의 행위만큼이나 세밀하고 촘촘하게 나눠진다. 지금 우리시대에서 ‘셔틀’이란, 행위는 존재하지만 결과물은 남지 않는 기이한 현상이 되었다. 만화 <셔틀맨>은 그로 인해 빚어진 개인의 끊임없는 좌절과 허무를 만화적 사유와 상상력을 총 동원하여 풀어냈다. 만화가 아니었다면 전국 각지의 빵셔틀을 스카웃해 택배 배달부 전문 양성학교에 데려가 키운다는 웃기지만 슬픈, 혹은 병신 같지만 그럴싸해 보이는 상상이 나올 수 있었을까?



셔틀맨 (중앙북스 출간)
155mm*225mm 두께 35mm 무게 550g (용량 대비 무거움 감 있고베이킹 전용 저울이라 오차 있을 수 있음)

비고: 달걀 한 알의 무게는 약 50g
가격: 온라인 서점이 천원 싸지만

필자는 동네서점이 망하면 주말에 갈 곳이 없으므로 오프라인에서 만원에 구입함
그림 캐러멜 (유부남)
네온비 (유부녀…지만 필자가 좋아함. 언니 사랑해요)




셔틀맨 익스프레스, 통칭 <SME>의 창단 5주년 기념행사에서 입사 3년 만에 기업 최고 연봉을 받는 이영수 택배원의 회상을 통해 이야기는 시작된다. 평범한 고등학교에서 매일 빵셔틀을 하는, 이름마저 평범한 이영수가 을의 대변인을, 이 이야기의 주인공이며 이름부터 태가 나는 박일진이 갑의 자리를 꿰차고 있다. 


영수는 매일 일진에게 빵을 사다 바치지만 그것은 개인적인 만족도, 대의를 위한 희생도, 시간이 흐르며 가치로 환산되는 경험도 아니었다. 아무것도 아닌 ‘행위’에 영수는 점점 짓눌리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등장인물의 입을 통해 작가가 실토할 정도로 식상하게, 정의감도 힘도 매우 강해보이는 김건이 전학을 온다. 일진이 영수에게 빵셔틀을 시키자 김건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선다. 영수는 해방의 기쁨을, 일진은 위협을 느끼며 그를 바라본다. 그 사이에 우뚝 선 건이 외친다.
 

“네가 원하는 그 빵! 내가 사다주지!!”


건은 무서운 스피드와 정확한 발음으로 매점 아주머니에게 가장 먼저 빵을 건네받았다. 학생은 그가 새치기를 했다는 것을 알았지만 반박할 수 없는 포스였다고 증언했다. 건의 빵셔틀은 아주 능동적이고 전문적이었다. 게다가 건은 영수가 허무하게만 생각했던 빵셔틀의 장점(정확하게 빵 주문을 외면서 느는 암기력, 잔돈 계산을 위한 암산력, 짧은 쉬는 시간을 활용하느라 단련된 체력과 스피드)을 줄줄 외며 셔틀 예찬론까지 펼친다. 물론 그렇다고 일진의 폭력이 정당하다는 것은 아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스포가 있으니 읽기 싫으면 그냥 넘겨도 되겠지만 아마 대부분 읽으리라 생각하고 사실 결말보다 중간중간 빵빵 터지는 폭탄 같은 유머가 진국이니 미안한 마음은 고이접어 나빌레라) 학교 안의 먹이 사슬의 최하층에 있는 빵셔틀을 모아 사회의 훌륭한 일꾼으로 성장시키겠다는 김건의 할아버지, 김노인의 꿈은 현실이 된다. 김노인은 전국 각지의 빵셔틀을 스카웃해 택배 배달부 전문 양성학교에 데려가 키우고 박일진의 셔틀이었던 이영수는 높은 연봉의 택배사원이 된다. 박일진은 건의 예언대로 영수 자택의 잔디깎이가 되었다.



스포주의



[셔틀맨]의 세계를 부러워할 사람은 학교 안 셔틀맨뿐만이 아니다. 또 있다. 바로 택배기사다. 김노인의 막대한 투자와 교육으로 택배회사는 기사들에게 고액의 연봉을 줄 수 있는 시스템을 개발한다. <사립 김노인 기숙사 고등학교>에서는 여러 가지 테스트를 통해 학생 개인의 성격과 적성을 파악하여 맞춤 교육을 실시하고, 한 분야를 정통하는 마스터로 만들어 낸다. 예를 들어, 도자기 수집이 취미인 고객이 있다면 김노인과 직원들이 개발한 <SHUTTLE-MAN OFFICE PROGRAM>를 이용하여 그 분야에 정통한 택배 기사를 선택하는 것이다. 전문적인 지식을 요하는 일은 운임료가 올라가게 될 것이고 그것이 결국 서비스의 질과 기사들의 처우를 개선하게 되는 것이다.또한 이것은 단순하게 기사와 소비자였던 관계를 사람對사람으로 변화시킨다.
   

현실에선 불가능한 얘기다. 택배 한 건을 배달하고 기사가 받는 돈은 700원 남짓. 광고에선 껌 값보다 싼 택배비라고 고객을 유혹하며, 직원들에겐 껌 값만도 못한 돈을 임금이라고 주고 있다. 대기업과 합병된 뒤 대우가 더 나빠졌다고 D모 택배 회사의 기사는 말했다. 결국 연말 대목을 앞두고 직원들이 대거 그만두는 사태가 발생하고, 그 지역을 거치는 택배들은 2, 3주간 행방불명이 되거나 분실되는 사태가 속출했다(는 바로 필자가 일하는 쇼핑몰에서 발송한 물건들이다. 전화 업무와 각종 잡무를 맡고 있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물건이 오지 않고 택배 회사는 연락이 안 되니 너님이 환불 처리해달라”는 전화를 연말부터 글을 쓰는 오늘까지 받았다. 내 잘못도 아닌데 매번 사과하는 것도 어이없다. 그냥 사지마. 크리스마스라고 새해라고 스스로에게 주는 선물 따위는 온라인에서 사지 말라고! 끊긴 전화에 대고 한두 번 중얼거려만 봤다). 기사들의 처우를 개선해 주지 않은 채 그들이 그만두거나 말거나 방치한 회사는 뒷짐을 지고 있고, 그 몰매를 15**번으로 시작하는 여덟 자리 숫자 뒤에 숨어있는 그녀들이 고스란히 맞는다. 그녀들도 아무런 죄가 없긴 마찬가지이다. 


이쯤 되면 셔틀을 하나의 소질이라고 말하며 개발해보자는 건의 이야기는 어느 정도 현실성 있게, 심지어 희망적으로 들리기까지 한다. 우리가 미쳤건, 세상이 미쳤건 어느 한쪽이 단단히 미친 듯하다. 그래서 일독 아니, 재독 삼독을 권한다. 실컷 웃고, 웃음의 제물이 된 그들의 눈물을 되새겨보자. 나는 영수도, 건도, 일진도 아니었다. 택배기사도, 온갖 고객의 짜증을 받아주는 콜 센터 직원도 아니다. 그들의 사이를 메우며, 그들의 고통에 침묵하는 수많은 사람들 중 하나일 뿐이다.



“택배왔습니다.”
잉여로서 가장 쓸모 있어지는 어머니의 홈쇼핑 물건 받는 30초, 이 시대 진정한 셔틀맨들의 지친 어깨에 고맙다고 큰소리로 인사해주자. 기왕이면 집에 있는 귤 한 알, 차 한 잔도 같이 건넬 것을 추천하는 바이다.




영화 나의 결혼원정기, 2005










※ 월간잉여 11호(창간 1주년호)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