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2013.06.23 23:01

잉문학에 봄이 왔다고? (민병효)

구글, 페이스북 등의 초대형 기업들이 인문학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얼마 전 국민은행 공채 시험에서는 금융 3종 자격증 대신 자신이 읽은 인문학 서적을 쓰라는 요구가 있었다. 그에 발맞춰서 각종 취업 준비 사이트와 청년 아카데미에서는 인문학 서적 베스트셀러 목록을 뽑고, 요약본을 공유하고 있다. ‘인문학 열풍’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러나 그 열풍은 정작 인문학도들에겐 그리 가까이 다가와 있지 않다. 대학 신입생 시절, 우리는 인문학을 ‘선택’했지만, 사회는 그 선택이 그리 현명하지 못했다는 걸 너무나 명확히 보여주었다. 학과별 취업순위를 보면 ‘문사철’은 나란히 하위권을 맴돌고 있다.


그렇다. 수능을 잘 못 봐서 점수를 맞춰 대학에 온 우리는 전쟁에 나선 군인이 총알을 장전하듯, 밀려올 현실에 대한 준비를 해야 한다. 그것이 고등학교를 갓 졸업하자마자 손에 다 넣기 힘들 정도의 자유를 얻은 우리가 짊어진 의무이고 세상이(라고 하고 우리 엄마라고 읽는다) 바라는 것이다. 하지만 어떻게? 음. 솔직히 말하면 잘 모르겠다! 그것이 문제이다. 인문학은 무엇을 하는 학문이며 나는 거기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고 세상은 얼마나 인문학을 필요로 하는가. “전공을 살리거라 ”라고 어머니는 말씀하시지만, 어머니. 제 전공은 '살릴' 게 없습니다. 저는 이제 교직 이수를 하거나, 대학원에 가거나, 복수전공을 해야 합니다. 어머니, 잉여 인간이라는 말 들어보셨죠? 죄송해요. 제가 바로 예비 잉여인간, 잉문학도입니다.
 
# 다음의 내용은 모두 논픽션이며 대화 내용을 바탕으로 했습니다.


M (본잉) : 자, 시작해볼까. 자기소개부터 해야지, 이야기하기 전에 자신의 정체성을 먼저 밝히는 게 더 설득력이 높으니까.


L: 아, 오빠. 무슨 자기소개야. 호구 조사 나왔어? (L은 유일한 여성 멤버이다.)


M: 시끄러워. 빨리해 너부터.


L: (매우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며) 저는 21살이고 국문학과에 재학 중인 학생입니다. 졸업하고 뭐 할 진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아 이거 진짜 민망하다. 이거 왜 하는 거야 오빠?


J: 저는 29살이고… 현재 국문과 졸업 예정입니다. 언론사 입사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H: 저는 22살이고 국어국문학과에 재학 중입니다. 역시 언론 쪽을 생각하고 있으나 아직 명확하진 않습니다.


M: 저 역시 22살입니다. H 와 같은 올해 2학년이고 국어 국문학과에 재학 중이며, 광고 쪽으로
나갈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만, 확실하진 않습니다.








첫 번 째 주제, 나는 왜 국문학을 전공하는가.
M: 나는 왜 국문과에 왔는가, 이게 첫 번째 주제입니다. 이게 사실 핵심 아닌가요?


J: 동의합니다.


H: 근데 그런 핵심적인 질문에 난 정말 허접한 대답을 할 수 밖에 없는데… (M: 나도야. 나도 점수 맞춰서 왔어) 저는 언론 쪽으로 나갈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영문과, 국문과 중 그나마 둘 중에 국문과가 더 도움 된다고 생각해서 왔습니다. 근데 지금은 뭐… 잘 모르겠어요. 별로 도움 되는 것 같진 않아요. 정말 저 혼자만의 생각이었어요.


L: 그럼 원래 언론 쪽 과를 가려고 생각했었나요?


H:네. 수시도 다 언론 관련 학과에 썼고, 알다시피 다 떨어지고. 근데 정시로 우리 학교를 올 성적이 돼서 썼는데 우리 학교에 언론 관련 학과가 없잖아요. 그래서 국문과 왔어요.


M: 저는 제가 성적 맞춰서 왔다고 했는데, 성적 안 맞춰서 온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전 수시도 다 국문과로 썼어요. 원서를 쓸 당시 진학사나 메가 스터디 같은 합격 예상 사이트가 사실 정확하진 않아요. 우리 학교를 쓸 성적이 됐는데, 사실 경영이나 자전도 된다고 나오더라고요. (J: 뻥 치지마. ) 아니 뻥이 아니라 진짜요. 전 국문과에 대한 막연한 환상이 좀 있었어요. 책도 많이 읽고 싶었고 관심도 있었고. 물론 뭘 배우느냐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한건 아니었어요. 광고에 도움이 ‘되겠거니‘ 했어요. 


이구동성: 어리석었네요. 책도 많이 안 읽잖아요.
M: 네….       


L: 전 수시 합격생인데요. 수시도 경쟁률이 있잖아요. 원래 국문과를 쓰려고 했었는데 다른 높은 학교는 국문과 경쟁률이 되게 높아서 막 돌리고 그랬는데 우리 학교는 많이 안 높더라고요. 제가 국문과에 오고 싶었던 이유는 원래 언어 영역도 좋아하고, 적성도 맞는 것 같아서요. 나중에 직업은 많이 고민하지 않았어요. 지금도 특별히 괴롭거나 한 것 같진 않아요.


J: 저도 비슷한데 현실적인 이유와 현실적이지 않은 이유가 있어요. 현실적인 이유는 마찬가지로 점수가 됐고, 언론 쪽 생각하고 있었고…. 전, 25살에 학교에 입학했어요. 그 전에는 다른 학교 공대에 다녔는데 적성에 잘 맞지 않았어요. 졸업을 하고 일을 하면서 회의감이 들었고 일보단 공부를 좀 더 하고 싶었습니다. 제가 안 해 본 공부를요. 혼자 공부도 해봤는데 계속 한계가 너무 절실히 보이더라고요. 그래서 대학에 다시 가자 생각했고, 문과로 전향해서 공부 했어요. 나중에 붙은 곳이 다른 학교 역사과, 교육학과고 우리 학교 국문과였는데 그 중에서 국문과를 선택 한 거죠.


M:  결국 공통 된 의견이 "점수를 맞춰서 왔다"인가요? 


J: 수시는 대부분 자기 마음대로 좀 더 성적보다 높은 학교와 과를 지원하는데 정시는 보통 학교를 많이 보고 원서를 쓰니까요. 당연한 것 같아요. 


M: 그런데 국문과가 사실 인문대학 중에선 취업이 ‘그나마’ 잘 되는 편 아닌가요? 


J: 영문과가 제일 잘돼요 사실. 지금 생각난 게 있는데, 제가 졸업하기 얼마 전에 학원을 하나 다녔는데요. 거기서 자기소개를 하는 시간에 제가 국문과라고 소개하니까 전체가 빵 터졌어요. (L: 국문과처럼 안 생겨서 그런거 아닌가요? ) 그런 게 아니라, 다 공대생이거니 일하고 있는 사람인데, 그들이 보기에는 그냥 웃긴 거예요. 정확한 이유는 모르지만, 가장 취업이 힘든 학과로 알려져 있으니까요. 어디를 가나 뭐 하려고 전공했냐고 물어보고.


J: 요즘 제일 도움 안 되는 과로 알려진 게 국문과와 철학과잖아요. 외국어랑도 관련 없고…. 취업이 안 된다는 건 결론이아니라 전제예요. 아예 취업 쪽으로는 의미가 없다는 거죠. 대기업 쪽으로 준비하는 선배들 중에 국문과로만 준비하는 경우는 사실 없구요, 세 가지 길이 있다고 보는데 첫 째가 대학원에 가는 것, 두 번째는 복수전공, 세 번째는 그냥 해서 출판 언론 쪽으로 가는 게 있는 것 같아요. 선생님(국문과는 교수님을 선생님이라고 부름)들에게 물어본 바로는 대학원 가는 경우가 3분의 1 쯤 되더라고요. 셋 다 1학년 때부터 준비하는 사람은 별로 없고, 어떻게 하다보니까 되는 게 이 세 개인 거죠. 출판 언론 쪽은 국문과의 메리트가 크다고 생각해요. 국문과가 들어간다고 해도 이상하게 보지 않는 유일한 직종이죠. 언론관련 학과에서 배우는 것도 사실 별로 연관이 없다고 하더라고요. 문제는 출발점으로 돌아가서, ‘성적을 맞춰 온다’ 는 말을 한 번 더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 것 같아요. 


M: 저는 여전히 그 말이 맞다고 생각을 해요. 그럴 수밖에 없는 시스템이고, 저하고 H는 재수를 했는데 재수, 삼수를 할수록 그런 경우가 많아요. 특히 높은 대학은 대학을 보고 지원하고, 낮은 대학은 과를 보고 지원하는 현상이 지배적 이예요. 물론 저희는 과도 낮고 학교도 별로 안 높기 때문에 그다지 공감이 안 되는 말이긴 한데요. 


J: 그런데 만약 경영이나 사대, 공대 같은 경우엔 점수 맞춰왔다는 생각을 잘 안하더라고요. L 같은 경우 제가 알기론 대부분 수시도 인문대를 쓴 걸로 알고 있는데 (L: 네, 맞아요. 적성에 맞아서요. ) 적성을 고려한 고민을 할 기회가 많이 없었다는 겁니다. 모르고, 선택의 여지도 없으니까 우리는 점수 맞춰서 왔다는 말을 할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배우는 내용에 대해 많이 고민하지 않고 오는 것은 경영이나 사대나 인문대나 비슷한 것 같은데, 학과 선택의 지향점이 인문대 같은 경우 상당히 애매하죠. 취업이라고 말하기엔 취업이 잘 안되고, 정말 흥미가 있었다고 말하기엔 배울 것에 대한 고민을 많이 안했어요. 그러니 왜 입학했니? 라고 물으면 “점수 맞춰서요’”가 나오는거죠.
오히려 사대 같은 경우 저희보다 입학성적이 낮은데요, 그럼에도 그들은 진로에 대해 목적과 방향이 확고한 편이니까 점수 맞춰왔다는 말을 덜 한다는 거죠. 그렇지 않나요? 


M: 네. 동의합니다.




두 번째 주제, 인문학의 가치와 인문학 열풍
M: 어…. 현재 인문학 열풍이 불고 있습니다. (일동 웃음) 인문학 열풍이라는 건 서점 베스트셀러 칸에 인문학 서적이 늘어나고 국민 은행 같은 대기업이 입사 조건으로 인문학적인 소양을 강조하기 시작했다는 건데요. 전 이 ‘열풍’의 기본 근저에 깔려있는 생각이 스펙은 더 이상 믿을게 못 된다는 생각 같아요. 스펙은 기본이고 스토리는 필수란 말이 있잖아요. 스펙은 모두 같다는 거예요 이제. 3600. 평점 4 x 토익 900점.  그래서 그들이(대기업 인사팀들이) 눈을 돌려 기대하는 것이 ‘인문학적 가치’라는 건데, 과연 각자가 느끼는 그 인문학에 대한 ‘기대’가 무엇인지 알고 싶어요. 각자가 생각하는 인문학적 가치는 무엇인가요? 그리고 이 열풍은 얼마나 우리에게 가까이 있을까요? 


제가 계속 미인회 (M은 재학 중인 학과의 ‘미학 인문 학회’, 줄여서 미인회의 회장을 맡고 있다.) 를 하고, 책을 읽고 거기에 대해서 더 공부하려고 하는 이유는 제가 지망하는 광고랑 맞닿아 있어요. 광고는 다른 생각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인문학은 다른 생각을 할 수 있는 기반을 제공해 준다는 거죠.


H: 사고의 방향이 다양하단 얘긴가요? (M: 비슷해요.) 저도 저 말에 공감을 하는데요. 언론을 예로 들자면, 언론은 분명 ‘가치’를 담아서 정보를 제공하거든요. 전 그 기반이 인문학이라고 생각하는 거구요.


M: 얼마 전에 읽은 책 중에 ‘불온한 산책자들’이라는 책이 있는데요. 에스트라 테일러( 다큐멘터리 감독) 가 썼고, 철학자들을 인터뷰한 내용을 담은 책이에요. 책의 중요한 포인트는 인터뷰하는 ‘장소’인데요. 철학과 가장 먼 맨해튼 중심가, 쓰레기장 등에서 철학자들이 하는 사유를 듣는 거죠. 그 중 피터 싱어는 쇼 윈도우에 비친 명품 구두를 보고 윤리적 질문을 제기 합니다. 뉴욕 중심가에서요. 인문학과 반대되는 말이 자연과학인데, 자연과학이나 경제학‘만’ 공부 했을 때는 윤리나 가치를 묻는 질문을 던질 수 없다고 생각해요. 


J: 인문학은 가능성입니다. (일동 웃음) 인간으로써 할 수 있는 고민의 가능성을 열어주는 거죠. 과학 역시 이성의 산물이지만 그걸 더 빛내게 해 줄 수 있는 학문이 인문학인 거죠. (J는 이렇게 말하며 자신의 아이폰을 들어보였다. 앱등앱등) 








애플과 스티브 잡스 까는 심슨




J: 인문학 열풍이 부는 것은 이런 것 같아요. 어느 순간 (한국 제조업이) 세계 1위가 되버리니까, 정체 되었다고 느끼는 거죠. 계속 베껴서 따라 왔는데 이제 추격당하는 겁니다. 이제는 말 잘 듣는 애들이 아니라 창의적이고 없던 것을 창출할 사람이 필요한 거예요. 그렇게 갑자기 이놈의 인문학 열풍이 불어온거죠. 


H: 전 사실 인문학을 공부해서 얻게 되는 창의성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어요.  


M: 박웅현의 [인문학으로 광고하다]에서는 ‘안테나’라는 말이 나옵니다. 매일 똑같은걸 보면서도 새롭고 구체적인 질문을 던질 수 있느냐를 염두에 두고 한 말입니다. 다른 ‘질문’을 던지는 게 창의성의 시작이라고 생각을 해요. 





 박웅현 인문학으로 광고하다 (2009, 알마)





J: 그건 사실 감수성에 가까운 거죠. 시적 감수성이나 언론적 감수성 같은 것과 같은 종류의 감수성이요. 창의성이라는 건 정형화 된 틀을 깨는 것인데 창의성을 목적으로 한다며 새로운 틀을 다시 요구하는 것 같아요. “창의성에는 인문학이 필요하니까 인문학을 공부해라”는 식으로요. 공부해서 될게 아닌데 늘 배우고 공부하고, 가르쳐왔던 방식으로 다시 접근하는 거죠. (L: 그럼 어떻게 접근해야 된다고 생각하세요? ) 전 사실 그냥 마음대로, 꼴리는 대로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하는데… (일동 웃음) 전 그래서 사실 “국문과에 왔는데 내가 배우려고 한 것을 안 알려준다”라는 말을 좋아하지 않아요. 이 역시 해왔던 방식으로 인문학에 접근하는 거잖아요. 그런데 뭐, 대부분 그런 정형화된 방식을 원하니까.


H: 기업은 100을 채웠으면 120, 130을 원하는데 사실 인문학적 방식은 그렇게 위로 쌓아가는 생각이 아니잖아요. 기업의 입장에선 옆으로 새는 생각이고….


J: 요즘 삼성이 안경디자이너를 계속 뽑는대요. 스마트 안경 만들려고. 애초에 그렇게 준비되고 미친 사람들, 위로 쌓아갈 사람을 구해오고 쓰다가 버리는 거죠. 


M: 아까 H가 말했듯이 100을 쌓는 길은 이윤이 되는 길이잖아요. 근데 우린 경제적 질문만 던지는 게 아니고, 계속 다른 질문을 던지고 싶어요. 하지만 기업은 그런 질문들을 경제적으로 환원하고 싶은 것 같아요. 예를 들어 누가 “비정규직 노동자의 삶을 살려야 되지 않느냐”라고 말을 해요. 윤리적 질문인데, 여기에 기업이 동조하며 하는 말은 “아, 맞는 말이야. 비정규직 노동자를 살리는 게 더 돈이 돼.”인 거죠. 이런 식으로 경제적 가치로 환원되는 인문학적 질문이 몇 개나 있을까요? 이런 지점도 인문학 열풍과 우리의 괴리라고 생각해요.



안 어울리게 무거운 자리, 무거운 글이 되어버렸다. 우린 똑똑하지도 못하고, 약삭빠르지도 못하다. 그저 삶의 위에 존재하는 존재자 아래서 나름 뭐 그냥 치열하게 살아가는 중이다. 우울 할 때 무한도전 보고, 밤에 배고프면 라면 먹고 내일 아침에 후회해 가면서.


사실 ‘나 인문학도야‘ 라고 뻣뻣하게 굴 자신도 없고 그게 가치 있는 일이라는 생각도 그다지 하지 않는다. 다만 경제 논리의 헤게모니 속에서 ’불가능한 것의 가능성’ 을 꿈꾸는 것은 얼마나 매력적인가. 모두가 한 곳을 향해 뛰어갈 때, 정말 그곳에 가야하는가를 질문하는 것은 얼마나 재미있는 일인가. 


결국 나완 너무 잘 맞지만 지금 세상과는 잘 안 맞는 인문학을 공부하면서, 손을 잘 안 잡아주는 현실에게 계속 손을 내밀어 보면서 사는 것이다. 그런데 뭐 열심히 해야 말이지….













(격)월간잉여 12호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