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여논단 2013.07.28 14:13

왜 안 하냐고 그만 좀 물어봐라 (김현경)

부제: 비혼주의자의 고백


소수자/비주류의 카테고리는 어느 사회에나 존재한다. 그에 따르는 제재와 편견 또한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없을 수 없는 것이지만, 유독 이 나라에서 소수자들을 살기 힘들게 하는 특성이 하나 있으니 바로 타인들의 노골적인 시선이다. 한 사회의 특성에 관한 성급한 일반화는 경계해야 마땅하지만 이건 아무리 봐도 적어도 G20개국 중 다른 나라에선 찾기 힘든 우리나라만의 분위기인 것 같다. 참 묘한 것이 남의 일에 이해나 공감을 못해줄 바엔 관심도 꺼줘야 하는데, 상대를 면전에 두고 얄팍한 호기심을 표시하거나 원치도 않는 훈계나 충고를 던지는 행위가 무례이자 폭력이라는 상식이 이 바닥엔 형성되어 있지 못하다.


물론 대놓고 차별하거나 마녀사냥을 하는 것보단 낫지만, 이런 일상적인 핍박은 가해자들에게 죄의식이 전혀 없는데다 일일이 맞대응하기 민망할 만큼 사소하고 미묘한 언행들이기 때문에, 스트레스를 줄이기 위해선 결국 피하고 숨는 것밖엔 답이 없게 된다. 같은 이유로 명절날 집 밖으로 떠도는 청년백수, 노처녀들도 안됐지만, 이들은 그래도 한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성취해야 할 가치에 ‘아직’ 도달하지 못한 존재들로서 격려와 동정을 받고(본인들은 이조차 싫을 수 있겠지만) 잠재적인 일원으로 인정받는다. 자신의 가치관 자체를 인정받지 못하기 때문에 늘 커밍아웃을 망설이는 우리 비혼주의자(혹은 독신주의자)들과는 처지가 다르다.


사실 비혼주의란 말이 ‘주의’지 가치관이나 신념이라고까지 할 수도 없다. 비혼주의자는 결혼이라는 제도 자체를 부정적으로 보거나 반대하는 사람이 아니다. 물론 그런 비혼주의자도 있지만 다른 얘기다. 결혼제도를 개인의 자유를 구속하는 악습이자 조만간 사라질 구시대적 유물이라고 주장하면서도 정작 자신은 어떤 이유로 결혼을 선택하는 사람도 있다. 유명한 예가 가수 박진영 씨인데 그분은 “사랑하는 여자의 가족을 위해” 자신의 신념에 반해 결혼을 결심했다고 밝혔으며, 그 후에도 변절(?)하지 않고 결혼 반대론을 고수하다가 결국 몇 년 만에 쿨하지 못하게 이혼하셨다. 지금은 그분의 신념이 어떻게 바뀌셨는지 모르겠는데, 반대로 결혼제도에 대해 전혀 회의해 본 적이 없다가도 결혼생활에 실패한 이후 달리 생각해 보게 된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여간 이 글에서 말하는 비혼주의란 자신이 결혼생활을 할 의사가 없다는 얘기지 결혼제도 자체를 부정하는 게 아니라는 걸 분명히 해두고 싶다. 내 개인적인 견해를 밝히자면 나는 현대의 일부일처식 결혼제도가 인류사에서 오랜 세월 보편적으로 존속해 온 만큼 나름의 합리성과 타당성을 갖추고 있는 제도라 인정하며, 여성주의자로서 우리나라의 가족 관련 법률과 관습에 남아 있는 전근대적 가부장제의 불평등, 불합리성이 개선되어야 한다는 신념을 갖고 있긴 하지만, 그 아래서도 행복하고 건전한 결혼생활이란 일생을 걸고 도전해 볼 만한 가치라고 생각한다.


다만 모든 사람이 꼭 같이 따라야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할 뿐이다. 결혼이 보편성 있는 제도임은 분명하지만 모든 개인이 추구하는 라이프스타일에 다 맞을 수는 없다. 그리고 결혼제도가 안 맞는 라이프스타일을 추구하는 사람 중 하나가 바로 나라는 거다. 민주 사회에서 마음에 맞는 사람들끼리 같이 살 자유가 있듯이 혼자 살 자유를 누리겠다는 것이다.  또한 평범하게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낳아 인류의 미래를 길러내는 일을 제대로 하려면 인생을 다 걸어야 하는 사명이다. 비혼주의자들은 그런 부담이 없기 때문에 평생에 걸쳐 자기 일의 전문성이나 더 넓은 공동체의 문제에 더 몰두할 수가 있고, 또 그럴 수밖에 없게 된다. 공동체에 큰 기여를 한 사람들이 자기 가정엔 소홀한 경우가 많이 있는데 그게 인간의 한계다.





시집가는 날 (1956)





뻔한 말이 쓸데없이 길어지는 건, 맞다, 피해의식 탓이다. 수없이 부딪쳤던 왜 비혼이냐는 질문에 사실 진정한 답은 한 마디 뿐이다. 단지 “결혼하고 싶은 생각이 안 들어서”이다. 그러나 대개 이 말만으론 놓여날 수가 없기 때문에 주저리주저리 말이 길어지게 된다. 내 인생에 별 관심도 없는 사람들, 심지어 다시 볼 일도 없는 사람들이 “왜”냐고 묻는 건 대부분의 경우 정말 이유가 궁금해서가 아니다. 뭐라고 대답하든 즉각 온갖 비아냥 섞인 반론이 쏟아진다. “그런 애들이 꼭 제일 먼저 가더라”, “임자를 못 만나봐서 그런다”, “아직 어려서, 철이 없어서 그런다”, “벌써 그렇게 단정할 필요가 있느냐, 가능성은 열어 놔라”, “해도 후회 안 해도 후회라는데 해보는 게 낫지 않느냐” 등등…약속이나 한 듯이 똑같은 말로 몰아세우다 결국 “지금 생각은 그렇지만 나중에 바뀔 수도 있겠죠”란 완곡한 항복 선언을 받아야만 물러선다.


솔직히 말해 비혼을 공격하는 사람들을 보면 “자기네들 결혼생활이 불행하니까 우리한테도 맛 좀 보여주지 않고는 억울하다는 건가?”하는 생각마저 든다. 실제로 충분한 결혼생활 경험이 있는 이들 중 진심으로 “이렇게 좋은 걸 왜 안 하냐”고 안타까워하는 경우는 거의 못 봤다. 뭐 우리 부모님을 포함해 있긴 있지만.(이런 말을 굳이 붙이는 이유도 내 비혼주의에 ‘숨겨진 사연’을 찾으려는 이들이 하도 많아서다. 글쎄 그런 비혼도 있겠지만 난 아니라고) 


비혼을 사회적인 문제로 진단하는 시각도 좀 웃기긴 마찬가지다. 특히 최근 들어 심각해지고 있는 출산율 저하와 결부시켜 이런 논의가 많은데, 물론 지금 우리 사회가 개인이 가정을 꾸리기 위해 져야 할 부담이 지나쳐 혼인율과 출산율을 저하되고 있는 것은 분명한 문제 상황이고, 실제로 요즘 비혼들 중엔 경제적 부담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결혼을 포기한 비중이 점점 들어나고 있는데 이건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 그러나 이렇게 거시적인 걱정을 하는 분들이 대부분 놓치고 있는 사실이 있는데, 그건 비록 사회 경제적 상황에 영향을 받는 비율이 있긴 하지만, 어떤 상황에서도 결혼이나 아이를 원치 않는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독신으로 살았다면 여러 사람 고생 안 시키고 자신도 더 만족스러운 삶을 살 수 있었을 텐데 사회 규범이나 통념, 혹은 경제적 문제 때문에 기혼자 대열에 편입된 사람들도 언제나, 바로 지금 이곳에도 있다는 것이다. 즉 최근의 비혼 인구의 증가는 경기 침체 탓도 있지만, 그만큼 우리 사회에서 개인이 선택할 수 있는 삶의 방식이 다양해졌다는 긍정적인 지표이기도 하다.

사람들이 결혼을 선택하는 이유는 한 가지가 아니다. 남들이 다 하니까, 혼자 살면 외로우니까, 누군가를 사랑하니까, 경제적인 이유로, 부모에게서 독립하고 싶어서, 아이를 낳고 키우기 위해서, 등등….이유가 각기 다른 만큼 결혼을 인생에서 제일 중요한 목표로 삼고 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하게 되면 하고 아니면 말지 하는 사람도 있다.


비혼주의자도 마찬가지다. 신념 때문에, 경제적인 문제로, 그냥 할 필요성을 못 느껴서, 아이를 원치 않아서, 이성 관계에 어려움이 있어서, 자유로운 삶을 위해, 등 여러 이유로 비혼을 선택했지만, 어떤 상황이 개선되면 결혼할 의사가 있는 사람부터 하늘에 독신을 맹세한 사람까지, 색안경을 끼고는 다 볼 수 없는 다양한 스펙트럼이 존재한다. 유별나고 고집스러운 사람들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실은 모두가 그렇듯 자신이 가지 않은 길에 대한 아쉬움과 미래에 대한 불안과 인간 본연의 고독과 싸우느라 힘들고, 겉으론 단호한 척해도 주변의 냉소적인 시선에 상처받고 흔들리는 평범한 사람들일 뿐이다.


그래서 서른 살 고비에 맘먹고 이런 글이라도 한 편 써두면 앞으로도 끝없이 마주칠 싸늘한 “왜?”에 얼굴 안 굳어지고 웃어넘길 힘이 좀 날까 하는 마음에, 무엇보다도 이 커밍아웃을 보고 살며시 접선해 올지 모르는 나와 같은 고민을 가진 비혼주의 동지들을 위해 이 글을 썼다.


*이 글은 개인 블로그 http://hanggang07.blog.me 에 2010.10.29.일자로 <우리 그냥 혼자 살게 해주세요 – 어느 독신주의자의 고백>이란 제목으로 처음 올렸던 글의 요약본이다. (전문은 블로그에서 볼 수 있다.) 이때만 해도 비혼주의란 말보다 독신주의란 말이 더 널리 쓰였다. 그러나 3년이 흐른 오늘까지도 비혼/독신주의에 대한 이 사회의 몰이해는 그닥 변한 것이 없고 우리는 여전히 ‘자발적 잉여’의 처지이며, 그 때문인지 이 글은 아직까지도 꾸준히 조회되고 댓글을 받으며 ‘독신주의자들의 성지’가 되어가고 있다. <월간 잉여>의 독자들과 꼭 나눠 보고 싶은 이야기여서 ‘삼땡’을 맞은 오늘 나의 목소리로 다시 말해 보았다.








※ 월간잉여 11호(창간 1주년호)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