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스포츠 2013.08.31 22:16

게임 속 '업적'에 대한 고찰 (조은상)

이소라의 위대한 업적
기억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지 모르겠지만
, 가수 이소라는 <나는 가수다> 탈락번복사건보다 (최소한 내 기준에서는) 더 충격적인(?) 토크를 본인이 진행하는 방송 <두번째 프로포즈>에서 한 적이 있다. 월잉도 일전에 하드코어 와우저(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유저) 잉여 한 분을 인터뷰한 적 있는 것으로 기억하는데, 게스트 이승환(이분도 겜덕으로 유명하다)이 이소라에게 와우를 직접 물어 본 것이다. 이소라의 와우 사랑과 덕력이야 이전부터도 알려져 있었지만, 그때의 대화는 보다 구체적이었다.

 



문제의 그 장면. 게스트 이승환 왈, “정말 업적이 위대하신 분과 제가 함께하고 있는데요.”

 



그렇다. 이소라는 업적이 위대하신 분이었다. 비록 세간에 알려진 것만큼, 9000점에 이르지는 않았으나 (당시 기준으로) 6500점도 와우와 생활이 일체가 되어야 나오는 점수다.




 

야리코미와 업적

그런데 업적이란 대체 뭔가?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일단 야리코미(やり)’란 말을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일본어인 점에서 눈치챘겠지만, 이 개념은 오타쿠의 원산지 일본에서 나왔다. 우리말로 옮기자면 파고들기’ ‘몰두하기정도가 된다. 그러니까 이 말은 원래게임 제작자가 의도하지 않은 게임 속의 요소를 목표로 해서 노는 것을 뜻한다(‘원래를 강조한 이유는 아래에 설명한다). 초창기 야리코미의 대표적인 예로는 타임어택(가능한 짧은 시간 안에 게임을 클리어 하는 것), 올 콜렉션(제공되는 모든 아이템을 수집하는 것), 노 킬(적을 쓰러뜨리는 행위를 전혀 하지 않고 클리어하는 것) 등이 있다 당연히 이런 것들은 엄청난 난이도를 자랑하고, 정말 그 게임의 오타쿠만이 할 수 있는 것들이었다.


업적(Achievement, 게임에 따라서는 도전과제 등으로 불리기도 한다)은 야리코미에서 파생된 시스템이다. 다만 원래 야리코미가 게이머들이 제작자의 의도와 관계없이 자기 마음대로 어려운 목표를 정하고 도전하는 것으로 자기만족과 과시를 얻는 행위라면, 업적은 어떤 것을 달성하면 점수나 훈장 등을 부여해 아예 눈에 보이는 방식으로 게임상에서도 표시해 주는 것이다. 마치 예전에는 자연스럽게 자발적으로 이뤄지던 자원봉사 활동이 언제부터인가 스펙이 되어 공인된 증명서로 기록되게 된 것과 유사하다.

 

따라서 업적의 위상은 매우 모호하다. 업적들은 분명히 제작자가 의도한 게임의 본질과는 관계없는 것들이지만, 제작자는 자기의 의도와 무관한 것에 (상금이나 상품은 없지만) 상장을 준다. 업적 획득은 게임의 본래 목적(몬스터를 쓰러뜨리는 것, 자신의 캐릭터를 성장시키는 것, 임무를 달성하는 것 등등)과는 무관하므로 제작자의 의도가 아니라고 할 수도 있지만, 일단 제작자의 프로그래밍에 의해 기록되는 것이므로 또한 의도된 것이기도 한 모순적인 속성을 띈다.


사실 업적 시스템이 본격적으로 게임이 도입되기 시작한 것은 2000년대 중반부터지만, 그보다 훨씬 이전부터 제작자들은 야리코미를 의식하고 있었다. 야리코미 플레이가 일본 등지에서 화제가 되고 유행하자, 제작자들은 이른바 야리코미적 요소를 게임에 의도적으로 삽입하곤 했다. 업적 시스템은 그러한 방향으로 게임을 즐기는 방법이 진화한 가시적 결과라 할 수 있다.

 





와우 업적 목록의 예. 네이밍 센스는 덤이다.




 

어렵지만 쓸모 없는

물론 제작자의 의도가 직접 개입된 결과로, 업적은 야리코미와는 다른 점이 있다. 야리코미가 대개 평범한 게이머는 할 수 없는 어려운 것들이었다면, 업적은 훨씬 범위가 넓다. 야리코미처럼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하거나 달성이 거의 불가능한 업적이 있는가 하면, 게임을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획득하게 되거나 마음만 먹으면 쉽게 얻을 수 있는 업적들도 적지 않다. 아마도 이른바 라이트 유저들을 포함해 최대한 많은 게이머를 이 시스템에 끌어들이기 위함일 것이다.


하지만 이런 차이에도 불구하고 반드시 공유해야 하는 원칙이 있다. 야리코미가 오타쿠들이 제작자의 의도와 상관없이 그냥 마음대로 노는 것에서 출발한 것인 만큼, 아무리 높게 쌓인 업적도 게임 내적으로 영향을 주지 않아야 한다. 설령 업적에 따라 보상을 주는 경우가 있더라도, 보상은 캐릭터의 외관 변화나 의미없는 기념용 아이템 등 가치가 없는 것에 국한된다. 여하튼 이소라와 와우의 예를 들자면, 대다수의 업적은 10, 특별한 업적은 20-30점이므로 (의도하지 않고 자연스레 얻어진 업적들을 제외한다 해도) 업적점수 6500은 게임 내에서 별다른 이득을 주지 않는 일을 수백 개 이상 수행했다는 말이다.


업적 점수가 올라 갈수록 어려운 것들만 미달성한 채로 남게 되므로, 높은 점수를 가진 상태에서 새롭게 업적점수를 1020점 추가하려 할 때 난도는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간다. 즉 업적은 추구하면 추구할수록 자연스레 그 기원인 야리코미로 회귀한다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많은 게이머들, 이른바 업적게이들은 오늘도 이런 짓을 밥도 굶으며 한다. 게임을 하면서도 게임의 목적이라 할 수 있는 것들보다, 게임 내에서도 쓸모 없는것에 몰두 하는 셈이다. 와우에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같은 블리자드 게임인 스타크래프트2, 디아블로3 등은 물론, 요즘의 온라인 기반 게임은 이와 유사한 시스템을 거의 다 갖추고 있다.




 

업적, 잉여 in 잉여

업적이 무엇인지 이해되면 한가지 의문이 더 떠오를 것이다. 대체 이런 짓을 왜 하는가? ‘어떤 사업이나 연구 따위에서 세운 공적이라는 업적의 사전적 정의는 이 맥락에서 역설적으로 뒤틀리고 정반대의 의미로 이어진다. 게임 속의 업적은 다만 기록으로 남고, 남에게 보여줄 수 있다는 것 이상의 의미는 없다. 어째 친숙하지 않은가? 그렇다. 업적은 곧 게임 속의 잉여짓인 것이다. 그러므로 왜 너희는 게임의 원래 목적에 부합하는 것을 하지 않고 업적게이질을 하는가라는 질문은, ‘왜 너희는 게임 속에서 잉여짓을 하는가라는 질문과 동의어가 된다.


놀이하기 때문에 놀이하는 것이다. ‘왜냐하면이라는 것은 놀이에서 사라진다. 놀이에는 왜가 없다.” 하이데거는 게임 즉 놀이를 이렇게 정의한 바 있다. 한 마디로 게임은 그냥 하는 거지, 이유 따윈 없다는 소리다. 교육, 의학, 군사 등의 목적을 가지는 이른바 시리어스 게임은 이점에서 엄격한 의미에서의 게임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게임의 이러한 정의 즉 이유도 없고 다른 실용적인 목적을 가지지 않는다는 점을 전제한다면, ‘게임에서 왜 잉여짓을 하느냐는 위 질문은 자기모순이다. 게임(=놀이) 자체가 잉여짓의 결정체이기 때문이다. 업적 점수 1만점을 쌓는다고 해서 (점수를 쌓는 과정에서 우연히 얻어진 이점은 당연히 제외하고) 게임 내의 캐릭터는 조금도 강해지지 않는 것처럼, 게임을 아무리 많이 해도 즐거움 이외에 현실적인 이득은 없다. 비유를 하자면, 업적을 모으는 행위는 게임 속에서 게임을 하는 행위’, 메타 게임인 것이다. 그렇다면 최근 몇 년간 업적 시스템이 이처럼 대두하는 경향은, 게임 자신이 사회 속에서 갖는 위상의 반영일 수도 있겠다. 즉 잉여짓의 대명사로 천시되는 게임이, 그 속에서 업적이라는 잉여짓으로 자기반복 되는 셈이다.

 

잉여, 규칙에서 벗어난 존재

이처럼 게임과 게임의 업적은 철저하게 잉여적이지만, 게임 속의 업적게이나 현실 속의 게이머에게는 그것이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처럼 여겨진다. 이런 의미가 창조될 수 있는 것은, 그것의 무목적성과 더불어 거기에 규칙이 있기 때문이다. 게임이란 것은 결국 프로그램된 규칙의 총체이고, 그것을 따른다면 승패가 있고 결과가 있다. 규칙에 충실한 노력의 투입과 그로 인해 얻어진 결과의 반복은, 성취감(Achievement, 업적과 같은 단어인 것은 우연이 아니다)을 낳는다. 게다가 최신 기술로 무장한 비디오게임은 화려한 그래픽과 사운드를 통해 그런 결과를 더욱 그럴싸해 보이게 한다. 일부 유저의 치트나 해킹 혹은 치명적인 버그 등으로 게임의 규칙이 무너지면, 유저들이 대량 이탈해 게임의 존립 자체가 위협당하는 것도 규칙 없이는 게임의 재미 즉 의미를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요컨대 이 규칙을 자기 것으로 받아들인 사람들에게는 게임이든 업적이든 어떤 무의미한 것들도 의미를 갖게 된다.

 

위에서 언급한 대로 업적을 쌓는 행위는 게임의 규칙들, ‘캐릭터의 성장’, ‘아이템의 획득’, ‘몬스터의 사냥등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따라서 업적은 게임의 규칙과 동떨어진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업적게이가 아닌 다른 게이머들에게 업적은 무의미하다.


게임이 무의미하게 여겨지는 이유도 이와 같다. 업적이 게임 속에 존재하지만 게임의 규칙에 벗어난 존재인 것처럼, 게임은 사회 속에 존재하지만 사회의 규칙에 벗어난 존재다. 게임의 규칙은 캐릭터를 키워서, 아이템을 얻고, 몬스터를 쓰러뜨리는 것이었다. 그럼 사회의 규칙은 뭘까? 자신의 능력을 계발해서, 돈을 벌고, 경쟁자들 속에서 이기는 것이 상식이란 이름으로 요구되는 사회의 규칙이 아닌가? 게임을 포함해 잉여라고 치부되는 모든 행동과 사람들에게 공통분모가 있다면, 이런 규칙에서 동떨어져 있다는 점이다.


게임에 장기간 몰두하던 사람이 어느 순간 이게 뭐하는 짓인가하는 허무감을 느끼고 순식간에 게임을 접어 버리는 경우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마찬가지로, 치열하게 경쟁하고 성공하려는 삶에 어느 날 허무를 느끼고, 대안적 삶을 선택하거나 아예 속세를 떠나는 사람들이 적지 않게 존재한다. ‘사회의 규칙또한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는 증거인 셈이다. 그것이 마지막 규칙이며, 그 이상에는, 그 이외에는 아무런 규칙도 없다고 확신할 이유는 없다.


위에서 업적은 잉여로운 것라고 했다. 내 생각에 이 명제의 ()’ 또한 성립할 수 있을 것 같다. 잉여로운 삶 또한 우리 나름의 업적을 쌓고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나 월간 잉여 독자들은 우리의 잉여짓에 의미부여를 잘하고 있을 것이다. 다만 한가지, 지나친 편식에는 주의해야 할 것 같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사회의 규칙에만 빠져서, 삶에 의미를 줄 수 있는 다른 모든 규칙들을 보지 못하는 친구들에게는, 가끔은 쓸데없이 게임도 하고 뒹굴거리기도 할 것을 권한다. , 반대로 한때의 나처럼 너무 게임만 하고 놀기만 하는 친구들에게는 사회의 규칙을 조금 양념 쳐야 할 때도 있을 테다. 글에서 편의상 게이머들을 업적게이보통 게이머로 칼로 자르듯 이분했었는데, 사실 대다수 명랑한 게이머들은 둘 다 섞어 가며 즐기더라.








(격)월간잉여 13호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