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여논단 2013.09.17 20:43

다른 데 가면 다르다 (TRH)

부제: 끝이 없는 백사장



‘갑의 횡포 문제에 온 나라가 주목했다. ‘포 라면’과 ‘남 우유’ 덕분이다. ‘포 라면’과 ‘남 우유’ 사건에 비해 주목 받지는 못했지만, SNS상에서는 꽤 화제가 된 ‘갑질 사건’이 있었다. 한 일러스트 커뮤니티 카페를 운영하는 업체에서 무명의 일러스트레이터나 취준생, 학생들을 상대로 무임금 또는 저임금 노동을 강요하고 대필 작업을 시켰다는 ‘내용’이다. '논쟁'이라고 표현해야 하지 않을까도 싶었지만 해당업체의 관련자들이란 사람들이 쓴 글을 보고는 그러지 않기로 결심했다. 감정적으로 정제되어 있지도 않고 수시로 맥락을 벗어나는데다가 궁색한 논리. 공허한 도덕과 강령들. 남발되는 ‘진심’에 피식피식 쓴 웃음이 났다. 이건 클리셰도 너무 클리셰다. 개인적으로 가치판단은 싫어하는 편이지만 뭐 이건 뻔히 보이는 바닥이고 내가 손석희도 아니며 그 손석희도 종편 간 마당이다. 그래서 '잘 알지도 못하면서‘ 씨부려 보려한다. 그걸 위해선 11년 전에 겪었던 한 끔찍한 인간에 대한 얘기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를 겪은 나와 내 친구들은 그를 ‘백사장’이라 부른다. 당시 이름 없는 한 지방대학의 미술관련학과생이었던 우리는 무절제하고 무기력한 별 볼일 없던 20살을 보내고 21살을 맞이하고 있었다. 입대에 대한 압박감과 나태했던 지난날에 대한 죄스러움에 "무엇이든 부딪히고 견뎌내 보자. 뭔가 배우는 게 있겠지." 라며 스스로를 포지티브 하고 나이브한 모드로 전환시키기에 이른다. 그때 즈음이었다. 평소 학교에서 왕고로 군림하던 선배가 한 사람을 소개시켜주었다. 옆 도시에서 콘텐츠 관련 회사를 운영한다며 자신을 소개한 '선배의 선배' 라는 그는 첫인상부터 대단히 위압적이었다. 넙덕한 얼굴에 부리부리한 인상, 큰 키, 떡 벌어진 어깨. 두툼한 손, 낮게 깔리면서도 울리는 목소리, 친절하고 신사적인듯 하지만 순간순간 느껴지는 고압적인 눈빛과 태도. 그는 ‘열정 있고 책임감 있는’(이 표현도 참 클리셰다.) 인재를 찾는다고 했다. 첫인상도 마음에 들지 않았고 사실 이전부터 학교에서 나돌던 그에 대한 안 좋은 소문(격무, 폭음, 폭행, 욕설, 임금체불)을 들었기에 원래라면 그 제의를 받아들일 리 만무했지만 하필 긍정& 순진 모드로 전환된 직후였기에 그를 따라가고야 말았다. 



그리고 폭음과 폭행의 시간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강제 폭음을 당한 후 비 오는 주차장에서 슬리퍼를 신은 그의 발에 밟힌 날, 그는 나태한 나의 지난날들에 대한 청문회를 열었다. 폭행은 그것에 대한 죗값과 부지런히 살아갈 앞날에 대한 다짐이라는 것이 그의 논리였다. 왜 내 시간과 예술을 그가 평가하고 처벌했는지는 지금까지도 알 수 없지만 그때의 난 그걸 이해하는 척 연기해버렸다. 그리고 나는 그 다음날 학교로 돌아왔지만 다른 친구들은 그의 정체모를 회사에 남아서 몇 달 간을 착취당했다.



백사장은 자신이 <파이트 클럽>의 브래드 피트라도 된 마냥 친구들의 머리를 강제로 밀었고 새벽 다섯 시까지 일을 시킨 다음 아침 여덟시 까지 술을 먹였다. 70만원이라고 약속했던 월급은 몇 달째 지급하지 않았고 거의 매일 벌이는 술판에서는 카드로 200만원을 긁어 댔다. 그러고서 아침 10시에 출근시켰다. 물론 자신은 오후 다섯 시까지 회사에서 잤다. 일어나서는 스피커 풀사운드로 <밴드 오브 브라더스>를 봤다. 다보고 나서는 친구들에게 쓰잘떼기 없는 심부름과 욕설을 해대면서 기분 따라  폭행도 일삼았다. 사람을 때릴 때면 그가 의례 하던 말이 있다.

"다른 곳 가면 나을 것 같아? 똑같아!"






Fight Club, 1999





경찰에 신고하지 그랬냐고? 그러게 말이다. 지금이라면 그런 놈 합의 절대 안 해줄 텐데 말이다. 아이폰으로 녹음도 하고 맞은 멍 자국도 사진으로 찍어 놓을 텐데 말이다. 하지만 그때는 정말로 그럴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왜냐고? 모르겠다. 그냥 순진했다. 작았다. 몸이, 나이가, 마음이, 실력이, 열정이, 작았다…라고 믿고 있었다. 그래서 정말 다른 곳 가도 똑같은 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렇게 백사장의 몸집이 크게 보였던 것이고 뺨을 후려갈기던 그의 손이 두꺼워 보였던 것이었다. 그러니 그런 짓을 당했던 것이다. 우리는 지금 술자리에서 백사장을 떠올리면 웃는다. 욕을 하면서 웃는다.










" 아침해가 빛나는~ 끝이 없는 백사장~" 피구왕 통키 주제가를 부르며 그 시절을 회상하는 친구는 백사장에게 삭발당한 머리위로 눈이 1cm 정도 쌓일 때까지 골목에 주저앉아 고개를 처박고 울었다고 한다. 그날이 자기 생일이었거든. 그 다음 주에 그는 그곳을 탈출했다. 죄를 지은 것처럼 몰래, 윤창중처럼 소지품을 다 놔두고 튀어버렸다. 학교에서 왕고 군림하던 백사장의 후배이자 우리의 선배였던 사람은 그가 탈출해서 회사에 손실이 어마어마하다고 길길이 날뛰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백사장은 그냥 새디스트였다. 그런 인간은 아마 내 남은 평생 다시 만나기 힘들 거라고 생각이 들 정도의 최악의 인간이었다. 폐쇄적이고 전근대적인 지역미술사회 권력의 차양막 속에서 그는 그냥 상습적인 폭력의 대상이 필요했던 것이고, 자존감 낮은 저임금의 예술노동자가 필요했던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변명하기 위해 열정, 노력, 실력 따위의 명분을 내세웠을 뿐인데 우리는 그것을 믿었던 것이었다. ㅍ 일러스트 커뮤니티 사건과는 수위가 달라 보이지만 그 메커니즘은 같다.



10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세상은 꽤 많이 변한 것 같다. 사리판단이 분명하다 못해 영악하기까지 한 요즘 친구들을 보면 당시의 우리들은 정말 등신들이었구나 생각이 들다가도 때때로 터지는 어떠한 사건들을 보면 아직도 우리가 알지 못하는 곳에서는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논리와 이해가 지배하고 있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몇 년 전 TV에서 방영되어 난리가 났었던 -노예할아버지-를 보라. 최태원에게 야구방망이로 맞은 트럭운전수는 또 어떠냐. 그것을 바깥에서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 인간이 몇이나 되겠나. 백사장은 어디에나 있다. 생계와 꿈의 절박함을 뜯어먹고 사는 누군가가 존재한다. 그런 인간들, 상황들 속에서  자기를 구해줄 수 있는 존재는 결국 자신 밖에 없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다른 곳 가면 나을 것 같아? 똑같아" 라고 당신안의 백사장이 겁준다면  '달라' 라고 대답해주자. 그것은 사실이니까. 진짜 다르니까.



우리가 백사장 밑에서 겪었던 그 시간들이 전혀 쓸모없었던 것은 아니다. (이건 자위가 아니다.) 적어도 우리들의 ‘각오’는 진짜였으니까. 실력과 노력에 대한 강박관념은 가질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자기가 감당할 만큼만 순진해지고 위선을 부리자. 자존감과 이기심은 자기가 챙기는 거다. 예술가에겐 그것이 독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예술가이기 이전에 생활인이기도 하지 않나. 그리고 예술이 꽃필 수 있는 집중과 자유를 스스로 찾아야 한다…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라고 재수 없는 말로 끝맺으려던 건 아니었는데, 인생에 지지마라고. 응원해 주려고 했는데 말하다보니 이렇게 되어버렸다. 미안하다.
 
끝으로 내가 좋아하는 논어의 구절을 보태본다


質勝文則野,文勝質則史。文質彬彬,然後君子
(질승문즉야 문승질즉사 문질빈빈 연후군자)
바탕이 방법보다 두드러지면 투박하고
방법이 바탕보다 두드러지면 간사하니
바탕과 방법이 어우러져야 군자이니라





ⓒTRH








(격)월간잉여 13호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