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스포츠 2013.10.01 23:27

[두산 가을야구 기념] 김ㅋㅋ를 아십니까 (설까치)

두산을 응원하는 이유

나는 가진 거라곤 '애향심'밖에 없는 사람이다. 나는 충청도 특유의 능청스러운 정서가 좋고, 그래서 완전히는 아니더라도 그 정서의 영향권에 있는 도시(대전)에서 나고 자란 걸 행운이라 생각하고 있다. 이문구의 소설들에서 그 사람냄새 나는 해학에 감탄해하고 최양락과 김학래가 만들어내는 '괜찮아유'의 유희를 즐거워하며 온양과 유성을 섞은 듯한, 가상도시 '온성'을 배경으로 한 류승완의 영화 [짝패]를 누구보다 반가워했던 사람이 나란 말이다. 게다가 난 JP(김종필)의 성대모사까지 할 수 있단 말이유! 이렇게 충청도 사랑으로 똘똘 뭉친 나에게 사람들이 "왜 때문에 그래요?"라며 궁금해 하는 것이 있다. 충청도만큼이나 야구를 좋아하는 내가 고향 팀 한화 이글스가 아니라 서울의 두산 베어스를 응원하는 모습이 그들에겐 이상하게 보였는가봉가.


여기에는 구구절절한 사연이 있으면 좋겠지만 실은 아주 간단한 이유다. 내가 처음 야구를 봤던 1982, 프로야구 원년에는 두산 베어스의 전신인 OB 베어스가 대전·충청을 연고로 했기 때문이다. 프로야구를 시작하면서 각 구단들에게 연고를 지정해줬는데 그때부터 이미 큰 시장이었던 서울을 노리는 구단들이 많았다. 교통정리를 한 끝에 일단 OB 베어스는 (아무도 맡으려 하지 않던) 대전·충청을 연고로 하되 몇 년 뒤에 서울로 올라온다는 결정을 내렸다. 그런 속사정을 알 수 없는 우리 충청도의 꿈나무들은 당연히 OB 베어스를 열렬히 응원했다. 당시에는 OB 베어스의 인기가 좋아서 OB 특유의 삼색 간지 모자를 쓰고 박철순의 투구 폼과 신경식의 다리찢기를 따라하곤 했었다. 거기에 원년 우승까지 했으니 OB 베어스의 인기는 정말 대단했다. 어쩌면 충청도에 대한 자부심은 이때부터 시작됐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1985, 약속대로(?) OB 베어스는 서울로 연고지를 옮겼다. 그 자리를 이어 들어온 구단이 지금의 빙그레(한화) 이글스였다. 1990년대 초반의 나는 외로웠다. 친구들은 자연스럽게 응원 팀을 빙그레 이글스로 갈아타 홈런왕 장종훈에 열광하고 있었고, 나만이 처음 본 대상을 엄마라고 생각한다는 오리새끼마냥 계속해서 OB 베어스를 응원했다. 그렇게 김보성 못지않은 나의 의리를 비웃기라도 하듯 OB 베어스의 성적은 형편없었다. 서울 라이벌이 된 LG 트윈스와 경기만 하면 맥을 못 췄고, 우리의 에이스인 '배트맨' 김상진은 '야생마' 이상훈만 만나면 늘 한 끗 차이로 졌다. '신바람 야구'를 들고 나온 LG 트윈스에 비하면 우리는 '미풍 야구' 혹은 '중풍 야구' 수준이었다. 게다가 1994년에는 윤동균 감독이 경기에 진 선수들에게 '빠따'를 돌리려 했고 이를 거부한 선수들이 팀을 이탈하는 초유의 일이 벌어졌다. 윤동균 감독은 베어스의 레전드였지만 그렇게 구단의 이미지와 함께 순식간에 몰락했다.


- 이렇게 글을 쓰고 있으려니 그때의 기억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주마등을 실제로 본 적은 없지만). 그렇게 인동초 같은 세월을 보내며 잊을 수 없는 순간들이 쌓여갔다. 1995년과 2001년의 우승. 2000LG와의 플레이오프에서 터진 안경현과 심정수의 홈런. 2010년 삼성과의 플레이오프에서 손시헌의 끝내기 실책.


그 결정적인 순간들 사이로 잊히지 않는 장면 하나가 빼꼼히 고개를 내민다. '결정적'이라 하기엔 너무나 미미한 장면이었지만 이상하게 그 장면은 계속해서 기억에 남아있다. 이른바 김ㅋㅋ'뇌주루' 사건이다. 뇌주루란 말은 정신줄 놓은 주루 플레이로 객사하거나 결정적인 실수를 하는 걸 일컫는 인터넷 용어다. 2012520. ㅋㅋ가 뇌주루를 시전하며 이길 수 있는 경기를 내준 날이다. 그것도 라이벌 LG에게.







김ㅋㅋ한국야구위원회





ㅋㅋ, 그는 누구인가

본명 김재호. 1985년생. 두산 베어스의 내야수. 중앙고등학교 시절 '천재 유격수'로 불리며 2002년과 2003년 중앙고를 2년 연속 봉황대기 준우승으로 이끈 주역이었다. 김민호 이후 눈에 띄는 뚜렷한 유격수가 없던 두산 베어스에서 20041차 지명 선수로 그를 선택했다. 그만큼 기대가 컸다는 뜻이다. 하지만 프로 무대는 그리 쉬운 곳이 아니었다. 그의 천재성은 고등학교에서 멈췄다. 아우토반 같을 줄 알았던 그의 야구 인생은 연습생 출신 손시헌이 깜짝등장하면서 울퉁불퉁 비포장도로로 바뀌었다.





손시헌 ⓒ 두산베어스




ㅋㅋ의 수비력도 나쁜 편은 아니었지만 손시헌의 수비력이 그만큼 뛰어났다. 유격수는 일단 무조건 '수비력'이 깡패가 되는 포지션이다. 거기에 방망이 실력까지 손시헌이 더 좋았다. 야구란 재미있는 스포츠이다. 열 번 가운데 세 번을 잘 치면 굉장한 강타자로 대접 받지만 두 번을 잘 치면 가장 형편없는 타자 취급을 받는다. ㅋㅋ는 두 번을 잘 치는 타자에 가까웠다. 홈런을 칠 만한 힘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볼넷을 많이 얻어나갈 눈을 갖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누가 주전으로 뛰어야 하는지는 분명해보였다. 그는 모든 구단에 한 명 정도씩 있는 내야수 백업 선수가 되어갔다.


더 이상 아무도 발전이 더딘 그에게 큰 기대를 하지 않게 됐다. 그는 손시헌이 다치거나 지쳤을 때 잠시 그의 자리를 대신해주고, 경기 후반부에 등장해 2루나 3루 수비를 메워주는 선수가 됐다. 그저 딱 그만큼만 해주면 되는 선수였다. 그리고 '그만큼'에 미치지 못할 때 갖은 비난이 터져 나왔다. 야구팬들만큼 변덕스러운 종족은 없다. LG 트윈스와의 2012520일 경기는 김ㅋㅋ(안 좋은 의미에서) '인생 경기'였다. 여기서 야구 규칙을 자세히 설명할 순 없지만 그날 김ㅋㅋ'태그업'이라 불리는, 리틀 야구 선수들도 다 이해하고 있는 가장 기본적인 플레이를 하지 못하며 홈으로 들어오지 못했다. 그는 마치 윤창중 씨(56, 무직)가 홈에서 "여기 왜 왔어? 빨리 가!!"라고 외치기라도 한 것처럼 홈으로 올 듯하다 3루에 멈추어 서 있었다. 팬들의 분노가 'Bounce Bounce'할 만한 플레이였다. 결국 경기는 연장으로 가서 졌다. 그가 그날만큼 임팩트 있게 많은 욕을 먹은 적은 없었다.



기분 탓일까? 그날 경기 이후 김ㅋㅋ는 변한 것처럼 보였다. ㅋㅋ란 별명은 그가 늘 웃고 다니기 때문에 생긴 별명이었다. 인터넷 문화가 발달하면서부터 운동선수들에게도 창의적인 별명들이 붙기 시작했다. 그 전까지는 황씨라서 황새(황선홍), 유씨라서 유비(유상철), 이름이 비슷하다고 해서 흥보(홍명보) 같은 별명이 고작이었다. 손씨라서 손오공이라는 별명이 붙은 내 초등학생 조카 친구들의 수준과 그리 다를 게 없었다. 하지만 인터넷 문화와 함께 팬들은 (부정적인 의미가 강할 때 더) 비상하고 창의적인 별명들을 만들어냈다. 타석에서 그저 서있다 루킹 삼진당한다는 의미로 서수아비, 서봇대, 서펠탑, 자유의 서신상(서동욱), 같은 추씨 성을 가졌지만 추신수의 별명인 '추추트레인'보다 한참 떨어진다는 뜻으로 지은 추추트랙터(추승우), 경기에만 나오면 핵전쟁급 재앙을 일으킨다는 뜻의 이핵천, 혜르노빌(이혜천) 같은 별명들이 대표적이다.


ㅋㅋ도 그런 기발한 별명 가운데 하나였다. 하지만 위의 뇌주루 같은 치명적인 실수를 하고 타석에서도 큰 기대를 못 주면서 별명은 부정적으로 바뀌었다. 웃음과 관련해, 근성이 없다거나 "X끼는 야구도 못하는 놈이 왜 실실 쪼개면서 쳐웃고 다니냐?"는 게 비난의 주된 이유가 됐다. 늘 웃는 상이었던 김ㅋㅋ는 점점 웃음을 잃어갔다. ㅋㅋ가 아니라 김——가 된 것이다.






점점 어색해져가는 미소...ⓒ 두산베어스






무엇이 김ㅋㅋ를 김ㅡㅡ로 만들었나

물론 이제 그는 정색하고 야구할 수밖에 없는 처지다. 손시헌 이후 김재호의 자리가 될 것 같았던 유격수 자리는 또 다시 혜성처럼 등장한 허경민이 차지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그가 두산 베어스에 계속 남아있는다면 또 다시 허경민의 백업, 내야 유틸리티 선수로 만족해야할 것이다. 야수진이 두터운 두산 베어스의 특성상 트레이드 얘기가 나오면 늘 '김재호'란 이름이 거론된다. 이를테면 두산 베어스의 남는(잉여) 자원인 셈이다. 그는 약팀에 가면 주전 유격수를 할 정도의 실력은 가지고 있는 선수다. 그래서 한동안은 김ㅋㅋ가 다른 팀에 가는 게 그에게도 더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지만 이제는 그 생각을 고쳐먹었다.



삼성 라이온즈엔 김재걸이란 선수가 있었다. 11시즌을 뛰면서 통산 타율이 25푼도 되지 못했고, 경력의 대부분은 후보 선수였다. 하지만 그는 라이온즈 팬들에게 '걸사마'란 애칭으로 불렸다. 그가 두각을 나타낸 건 야구 인생의 후반기부터였고, '백업' 선수로 WBC 국가대표 자리까지 올랐다. 난 이제 김ㅋㅋ가 두산 베어스의 걸사마 같은 선수가 돼주길 바란다. 부상당하거나 지치고 부진한 선수의 자리를 대신해주며 40살까지 두산 베어스의 소금이 돼주길 바란다. 비록 화려하진 않지만 오래 기억되는 선수가 되길 바란다. 무엇보다 그가 다시 웃음을 찾길 바란다. 어려운 얘기겠지만 더 이상 숨 막히는 경쟁 속에서 웃음을 잃지 말고 다시 웃음을 찾아 여유 있게 야구를 했으면 좋겠다. 프로야구에서 팬이 중요한 건 맞지만, 그 팬들이 선수의 웃음까지 뺐을 권리는 없다. 그저 허리를 한 차례 툭 치면서 "앞으로 잘해." 정도의 격려로 충분하지 않을까. 그는 올 시즌 초반 기대 이상으로 잘하다가 불운하게 부상을 당해 경기를 뛰지 못하고 있다. ㅋㅋ의 웃음을 경기장에서 다시, 빨리, 그리고 오래 봤으면 좋겠다.












(격)월간잉여 13호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