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여논단 2014.01.19 00:52

개성공단, 귀환과 존엄 사이 (인시)




“폐쇄된(중단된) 개성공단을 우리가 가보는 거야. 오픈은 돼 있더라고 뉴스 보니깐.
 어디까지 갔을 때 말리나. 우리가 차를 타고 1km, 2km 전진하는 거야.
 어디까지 갔을 때 반응이 오나. 이거를 어떤 신문이 하겠어요!”




2013년 5월 첫 주에 반영된 무한도전 아이템회의 장면에서 노홍철이 내보인 아이디어다. 비록 이 아이템은 ‘소득 없는 망상’으로 끝났지만 덕분에 큰 웃음을 줬다. 개성공단 이야기만 나오면 자동으로 인상을 썼던 며칠간의 긴장이 풀어지는 순간이기도 했다. 저 망상은 월간잉여가 실현할까? 아이라인 한껏 그린 잉집장이 걸어서 1km, 2km 전진한다면 그들은 순순히 문을 열어줄 것 같긴 하다. 그곳은 지금 한반도에서 가장 잉여가 돼버린 곳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지난 4월 정부는 개성공단 근로자의 ‘신변안전’ 차원에서 ‘귀환’ 조치를 내렸다. 한반도 긴장이 악화됨에 따라, 또 북한이 “이렇게 나오면 폐쇄해 버릴거다”고 압박한 결과이다. 지난 5월 초 마지막 7인이 귀환함으로써 개성공단은 잠정 중단 사태를 맞았다. 근데 저 귀환이란 단어 뭔가 이상하다. 알고 봤더니 저 단어를 쓰는데도 논란이 있었다고 한다. ‘복귀’를 쓰면 다시 돌아갈 것 같은 인상을 주기에 안 되고, ‘철수’령을 내리면 완전 폐쇄하는 인상을 주기에 사용하지 않았단다. 그래서 ‘재난’지역에서 피하라는 의미가 있는 ‘귀환’을 썼다고. 이분들 일 진짜 열심히 한다.

언론들은 그 한 달간의 과정을 늘 그렇게 경쟁적으로 보도했다. 개성공단은 어쩌면 한반도 마지막 보류가 아니었을까. 진중권 교수는 트위터를 통해 “그나마 개성공단은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가 마련해둔 카드였는데 그걸 박근혜 정부가 허망하게 써서 자충수를 둔 느낌이다. 이제 남북관계는 '제로시대'에 돌입했으니…”라고 말했다. 5년마다 정부이름 바뀌듯 나라가 바뀌는 듯한 얘기는 그렇다 치더라도, 이제 한반도 평화에 남아있는 건 무엇인가 하는 허무한 생각이 든다.

북한의 입장도 이해하기 어렵다. “우리의 존엄을 훼손했으니”라는 북한 측의 이유. 여기서 존엄이란 단어는 사전 뜻과 가깝게 쓰인 것 같은데, ‘우리’라고 하는 게 북한 인민을 뜻하는 건지 3부자를 뜻하는 건지 3부자에 투사 혹은 동일시된(하려는) 인민을 뜻하는지는 알 수가 없다. 또 그렇게 하지 말라는 핵개발, 군사 도발 등으로 위협을 하고 있지 않나. 잘못한 거 많다 너네. 근데, 여기서 잘잘못을 가리면 또 함정에 빠지기 쉽다. 그리고 북학의 전략과 속내는 ‘전문가’들이 매일 언론에 나와 이야기하고 있다.

주목해야 하는 건 그 ‘귀환’과 ‘존엄’ 사이에서 개성공단이 잉여가 됐다는 것이다. 긴장, 대치 상황, 대북제재, 탈북, 미국, 중국, 유엔, 섬나라 아베 등 한반도엔 유난히 독립변수와 종속변수가 많다. 그런데 개성공단을 통해 또 다시 상기되는 건, 저 귀환과 존엄을 말하는 남과 북의 입장 속엔 다른 논의가 낄 수 없다는 현실이다. 물론 이것을 또 교과서에도 나오는 ‘유일한 분단국가’, ‘분단이라는 특수한 상황’이라고 환치하며 넘길 수도 있다. 




개성공단이라는 딜레마
어릴 때 천재라고 생각한 존 내쉬 교수가 정립한 게임이론은 고전적이다. 피를 뽑아 신경전달물질의 양을 비교해 저 사람이 왜 저런 비합리적 선택을 했는가를 분석하기까지 하는 요즘 흐름에서, 수학을 써서 결과를 도출하는 초기의 게임이론은 먼지 냄새 난다. 근데 저 계산이 2013년 한반도에도 들어 막는 격이다. 냉전에서 벗어나지 못한 남과 북은 아직도 죄수의 딜레마 게임 혹은 치킨게임을 하고 있다. 귀환과 존엄이란 단어로 상징되는 전략 사이에서 말이다. (귀환, 존엄) 이라는 내쉬 균형을 벗어날 순 없을까.





상상해본 개성공단 딜레마 게임(이라고 쓰고 잉여짓이라 읽는다)



개성공단 딜레마는 남과 북이라는 실체가 연루하지만, 그 딜레마는 국내에서도 빈번하다. 국내에서 남과 북이라는 주체는 허공 속에 존재한다. 해방직후 남한만의 단독정부 수립을 반대하던 사람들과 좌익세력을 탄압하면서 3만 명에 이르는 민간인을 희생시킨 제주43부터 2003년에 고국 땅을 밟았다가 최대 간첩으로 몰린 송두율 교수까지(그는 9개월 동안 구속됐다가 독일로 떠났고 2008년엔 무죄가 됐다). 그들의 ‘죄’는 무엇이었을까. 우리는 지속적으로 ‘여기여야 한다’는 가언명령에 노출돼 왔다. 소설 [광장]의 이명준은 제 3국을 선택했지만, 배 위에서 투신자살을 했다.

냉전 반공주의는 해방 이후 지금까지 유효한 헤게모니다. 저것 때문에 다른 걸 못한다는 말도 반복적으로 나왔다. 냉전은 그 좁은 틈에서 다른 논의를 배제하기 때문에 사회 발전에 좋지 않은 영향을 준다. ‘노동문제나 계급 불평등의 문제를 제기하거나 혹은 자본주의 경제 체제를 수정하고자 하는 정책이나 프로그램, 이념과 연계될 때 그건 공격의 대상이 된다. 이런 조건에서 생존할 수 있는 정치 세력은 보수주의 세력일 수밖에 없다’ 최장집 교수의 분석. 주장과 정책, 사회에서 이념이 걸림돌이 되기에 사람은 동원되고 그 좁은 틈에서 다양한 가치를 갖는 정당은 자리 잡을 수가 없다.

그런 가운데 진보당은 잉여다. 그들이 언제 잉여가 아니었던 적이 있었나? 반문할 수 있겠지만, 그들을 진지하게 지지한 사람들도 이제는 회의감에 짐 싸고 떠난 느낌이다. 이른바 NL(민족해방), PD(민중민주) 논쟁. 통합이라는 불안한 단어는 역시나 허무한 결말이었다. 냉전이라는 허공 속 딜레마가 진보당 내에서도 있다는 건 아이러니일 뿐이다. 세계의 시간은 이미 ‘녹색이다, 인간이다’하고 있는데, 우리는 아직도 ‘이쪽이냐, 저쪽이냐’ 하고 있다. 녹색은 물론, ‘내가 좌파요’하면 좌파가 되고 불온해지는 현실에서 공부하는 좌파 찾기도 어렵다. 뉴스에선 여전히 박 대통령이 나오고, ‘그’는 김 씨이고, 국가 최고정보기관은 근무 시간에 댓글 작성을 한다.



불가능성의 가능성
이런 상황에서 한국 사회 가장 만연한 배제의 문제를 끌어 올리고, 지젝 교수의 말처럼 ‘문제의 근원에 대해 보다 근본적으로 폭넓게 사유하고, 전 지구적인 시각을 가지며, 철학적으로 문제를 생각’하는 건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이것은 불온이라 이야기 했던 불가능성을 들여다보고, ‘소득 없는 망상’에 익숙해야져야 하는 것을 암시하기도 한다.

귀환과 존엄 사이 잉여가 된 개성공단은 한반도, 우리 사회 허공 속 딜레마를 상징한다. 물론 이는 해방 직후부터 아니 그 전부터 있던 것이지만, 그러기에 반복해야하는 물음이다. 두 단어 사이에 갇히지 않고 불가능성의 가능성을 상상해보면서 말이다. 베를린 장벽이 쉽게 무너지지 않았다는 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황해북도 개성시 봉동리. 포털에 검색해도 지도조차 나오지 않는 곳. 개성공단이 있(었)다고 알려진 주소다. 그곳은 실존하는 곳인가. 모르겠다. 1km, 2km 가까워지면 어떤 기분이 들지 거리감도 막연하다. 그러니깐 아이라인을 한껏 그리고… 비가 온다. 김수영을 읽어야겠다. 



※ 개성공단은 2000년 정상회담 이후 남북이 합의해 황해북도 개성시에 만든 공업단지다. 남한은 자본과 기술을 북한은 토지와 인력을 맡아 운영에 들어갔다. 2012년엔 섬유, 전기, 화학 등 모두 123개 업체, 근로자는 5만 명, 생산액은 4억 달러 정도라고 한다. 많은 사람의 생계가 달렸고, 남북 교류에 상징적인 곳이다. 개성공단은 작년 9월 재가동 됐지만 주문 물량이 줄고 남북 경협 보험금의 상환 시기가 다가오며 공단의 기업들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격)월간잉여 13호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