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스포츠 2014.04.15 05:14

잉여인과 <고령화 가족> (낭만얄캥이)

장기 연애의 후유증(<월잉> 11호 참고)을 딛고 최근 다시 연애를 시작했다. 다음은 어느 날의 연애 보고서다.



여덟, 일곱, 여섯, 다섯. 여기서 발걸음을 멈춰야한다. “오늘 즐거웠어요. 잘 들어가세요.” 그 남자를 보고 말했다. 아쉬워하는 표정이다. 그의 얼굴은 말하고 있다. 집 앞까지 조금 더 바래다주겠다고, 그 시간만큼이라도 같이 더 있고 싶다고. 이럴 땐 새침한 표정으로 돌아서는 게 제격이다. 시계를 한 번 쳐다본다. 그러고는 고개를 들어 늦었으니 얼른 들어가라며 눈빛으로 등을 떠민다. 골목길 너머 그의 뒷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지켜본다. , , , 하나. 끼익. 우리집 철문을 열고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뱉는다. 차마 이 허름한 쪽문이 우리집 대문이라고 말하기 싫은 내 마음을 그는 알기나 할까.

 


그 남자는 32평 쯤 되는 아파트에 산다. 언젠가 사진을 보여준 일이 있다. 햇볕이 잘 드는 발코니에는 각종 화분들이 옹기종기 모여있었다. 선인장이 꽃까지 피운 걸 보면, 이 남자의 어머니가 공들여서 식물을 돌보는 게 틀림없다. 그 만큼 생활에 여유가 있다는 뜻이리라. 아버지는 조그만 사업을 하시고, 어머니는 전업주부고, 형은 학원을 운영한다고 했다. 전형적인 정상가족이다. 그 남자의 나이는 32. 대학 졸업 후 칼같이 취직을 하고, 착실하게 돈 모아 저축해놓은 돈도 꽤 된단다.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난 평범한 청년이 연애상대라, 평범치 않은 가정에서 평범치 않게 살아온 나는 겁이 난다. 누군가는 이런 고민을 두고 호강에 겨워서 요강에 똥싼다 말 할 수도 있겠다. 내 가족 내력을 모른다면 말이다.

 


영화 <고령화 가족>에 나오는 콩가루 집안은 우리집과 닮아 있었다. 실컷 대학 보내놨더니, 영화감독하다 다 말아먹고 잉여인간으로 살고 있는 둘째 아들 박해일 역은 내가 맡고 있다. 집에서 유일한 대졸자인 나는 몇 년 째 변변한 밥벌이를 못하고 있다. 공무원 시험을 준비 중인 오빠 역시 잉여인간이라는 점에서 영화 속 첫째 아들과 흡사하다. 두 잉여인간을 묵묵히 품어주는 엄마는 얼굴마저 영화에서 엄마 역을 맡은 윤여정과 닮았다. 여태껏 돈 버느랴 밥 해먹이랴 고생했으면서도 늘 해사하게 웃는 눈매가 딱 우리 엄마다. 나이값 못하는 자식들과 어머니가 한데 살아가는 풍경을 그린 영화 <고령화 가족>은 그냥 우리 가족 얘기였다. 지지리 궁상을 떨면서도 가족이라고 살 붙이고 살아가는 그 광경이 어찌나 촌스럽고 짠하던지. 햇빛도 잘 들지 않는 15평 반지하에 살고 있는 식구들이 떠올라 울지 않을 수 없었다. 뒤늦게 다운받아보고 혼자서 이렇게 청승질이다.






고령화 가족 (2013)



 

햇살이 눈부시다. 오늘도 삶을 바쁘게 살아내는 온갖 사람들이 쏟아진다. 점심 먹으러 나온 직장인들, 차 한잔하러 나온 아줌마들, 리어카 끌고 다니는 늙은 아저씨. 문득 이들도 모두 정상가족의 일원인지 궁금해진다. 아버지는 착실하게 돈을 벌어오고, 어머니는 집에서 화초를 가꾸고, 장성한 자식들은 제 밥벌이를 하고 있나요? 속으로 묻는데 스크린 잔상에 남아있던 윤여정이 대사를 치고 들어온다.


가족이라는 뭐 별 거 있니. 같이 밥 먹고, 같이 자고, 같이 웃고 울고 그러면 가족이지.”


과연 이 거리를 지나는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할까. 거리의 시계를 멈출 수 있다면, 영화관 하나 빌려서 이 사람들을 밀어다넣고 <고령화 가족>을 보여주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힌다. 이상한 오후다.


주말에 그 남자와 함께 <고령화 가족>을 다운받아 봐야겠다. 저거 꼭 우리집 얘기같다며 복선도 깔아줘야겠다. 그러고는 그 날 저녁에는 우리집 대문 앞까지 바래다주게 할까보다. 오래된 격언의 기대 용기를 내보련다. 사랑하면 보이고, 보이면 알게 되나니, 그 때 아는 것은 지금과 같지 않으리라고 했던가. 차마 글로 옮기지 못한 콩가루 집안의 자세한 내막은 천천히 알려줘야겠다.













(격)월간잉여 14호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