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잉각색 2014.06.11 16:11

개털의 홍대 앞 카페 유랑기(이윤식)


이제는 작년이 돼버린 2013년, 나는 전역을 하고 나서 1년 안에 단편영화를 만들어 보겠다고 이리저리 발버둥 치고 다녔고,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한 뒤부터는 일주일에 서너 번 카페에 들락거렸다. 아무리 정리를 잘 해봤자 집에서는 글은커녕 뭐 하나 집중해서 할 수도 없을게 뻔했다. 분위기 좋은 곳을 가야 글이 잘 나온다며 홍대를 뻔질나게 드나들었다. 하지만 간간히 하는 알바로 생계를 유지하는 처지에 매번 5천원이 넘는 커피를 사먹는 건 생계형 백수에겐 여간 부담이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묘안 하나를 생각해 냈으니 ‘카페 무임이용’이 그것이다.

실제로 카페에 가보면 이따금 음료는 아무것도 시키지 않은 채 친구를 기다리거나, 두세 명씩 와서도 음료 하나 시키지 않고 얘기만 하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그러나 나는 한번 가면 대여섯 시간을 카페를 이용하는 탓에 그러기엔 눈치가 보였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일회용 카페 컵을 위장용으로 가지고 다니는 것이었다. 처음에 카페에서 음료를 시키면서 일부러 따뜻한 음료를 시키고, 친환경 머그컵 대신 일회용 종이컵으로 달라고 주문했다. 음료를 다 마신 후 카페에 나서면서 일회용 종이컵을 가방에 챙겨갔고, 집에서 깨끗이 씻었다. 그리고 그 날 이후로는 카페에 갈 때마다 그 종이컵을 가방에 챙겨서 갔다. 나는 이것을 카페 패스Cafe Pass라 부른다.








아직도 집에 모셔져 있는 카페패스들….




카페에 도착하면 약간의 주변 눈치를 보다 노트북을 꺼내면서 종이컵을 같이 꺼내 놨다. 마치 음료를 이미 시켜 가져온 듯. 사실 주변 사람들이 나에게 그다지 관심을 가질 일이 없어서 종이컵을 꺼내는데 그리 눈치를 볼 일은 없지만, 그래도 혹여나 누군가 우연히 내가 가방에서 종이컵을 꺼내는 장면을 본다는 무지 민망할 것 같다. 하지만 아직까지 그런 경우는 없었고, 혹여 있었더라도 그걸 대놓고 웃어서 나를 민망하게 한 경우는 없었다. 아무튼 그렇게 카페의 일회용 컵을 테이블에 올려놓고는 다른 여느 사람들과 같이 당당하게 카페를 이용한다. 다섯 시간이고 여섯 시간이고 카페에 죽치고 앉아 글을 쓴다. 양심상 그래선 안 되는 건데, 와이파이도 이용하고 별도로 비치된 물도 이용하고 가끔은 노트북 충전기도 가져와 전기까지 사용해 버린다. 카페 입장에선 그야말로 진상 손님이 아닐 수 없다.




내가 가봐서 아는데(feat.이명박)
무임이용에 와이파이, 얼음물 그리고 전기까지 이용하는 주제에 나는 카페와 자리의 위치 선정에도 까다로웠다. 일단 카페는 음악이 잔잔하고 2층 이상으로 되어있어 카운터 직원들의 눈치를 보지 않으면서도 경치가 좋아야 하며, 화장실이 깨끗해야 한다. 그런 카페를 정했으면 이제 자리 선정을 해야 한다. 자리는 우선 의자 혹은 소파가 충분히 편안해야 하며, 장시간 노트북을 이용하기에 무리가 없도록 테이블 높이가 적절해야 한다. 노트북 충전을 할 수 있게 전기콘센트가 근처에 있으면 금상첨화이다. 초창기 이 조건을 만족시킨 곳은 홍대 수노래방 앞 탐앤*스 4층의 창가자리였다. 그 카페는 2층의 카운터를 거치지 않고도 바로 4층으로 갈 수 있게 계단이 바깥에 위치하여 있고, 내가 좋아하는 4층의 맨 안쪽 창가 자리는 소파가 폭신폭신하고 창밖을 내다보면 상상마당과 수노래방이 있어 쉬면서 사람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게다가 자리 바로 뒤에 콘센트가 비치되어 있고, 와이파이도 비밀번호 없이 제공된 데에다(이후 비밀번호가 설정된 것 같다. 설마 나 때문인가?) 레몬 띄운 얼음물도 비치되어 있어 글쓰기에는 최적의 장소였다. 그러나 이내 그곳에 거의 가지 않게 되었는데, 그것은 그곳이 오후 4시 정도만 되면 사람들로 북적여 여간 시끄러운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장소가 장소이다 보니 놀러오는 사람들 - 그중에서도 4명 이상의 여자 손님들이 많은 터라 도통 집중할 수가 없었다.

그 뒤 내가 발굴해 최근까지도 애용해왔던 곳은 홍대 정문 앞 네스*페이다. 홍대 정문 앞 네스카*는 모든 면에서 탐앤*스의 장점을 갖추고 있었다. 2층의 창가자리에 앉으면 홍대 정문에 학생들이 오가는 풍경을 볼 수 있고, 소파와 테이블 역시 무척 편안한데다 콘센트도 있다. 그런데 네스카페는 탐*탐스와 달리 항상 조용한 분위기가 유지되는 곳이었다. 번화가의 한복판에 있는 탐앤*스와는 달리 학교 앞에 위치한 네스카페의 주 손님은 그룹 과제나 개인 공부를 하러 온 홍대생들이다. 그래서 크게 시끄럽게 떠드는 사람 없이 조용한 분위기가 유지된다. 더구나 음악도 탐*탐스가 역동적인 음악이 많은데 비해 네스*페는 흥겹지만 온화한 음악들이 주를 이뤄 무언가에 집중하기에 좋은 장소였다.


다만 네스*페에 아쉬운 점이 몇 가지 있다면 처음부터 와이파이가 잠겨 있었다는 점(나와 같은 무임이용자가 아니라면 전혀 아쉬울 이유가 없는 것이지만), 화장실에 비누가 없다는 점 정도일 것이다. 이 정도는 크게 아쉬울 것이 아니라 나는 최근까지도 네스*페를 주로 이용해 왔다. 하지만 얼마 전부터 3층이 폐쇄됨과 동시에 남자 화장실을 이용할 수 없게 되자, 5시간 넘게 카페를 이용해야하는 나는 다시 다른 카페를 찾게 되었다.



당당히 무임으로 이용할 수 있는 대안공간
네스*페 이후에는 단골이랄 정도로 많이 가는 카페는 아직 없는데, 요즘은 사실 일반 카페 말고 당당히 무임으로 이용할 대안공간을 생각해 보고 있다. ‘서교예술실험센터(서울 마포구 잔다리로6길 33)’ 예술다방을 이용할까 생각 중이다. 전에도 이 공간에 가본 적은 몇 번 있지만 프린지페스티발에서 자원활동가로 일하면서 이 곳을 매일 제 집처럼 드나든 탓에 이 공간이 퍽 익숙해졌고 애정도 생겼다(프린지페스티발 기간 동안 서교예술실험센터는 운영본부로 사용되었으며, 예술다방은 프린지카페로 운영되었다). 예술다방은 시민에게 개방된 공간인 데다, 음료도 무료로 이용하는 무인카페이다. 나는 이 공간이 풍겨내는 자유로운 분위기와 예술관련 책들, 그리고 무엇보다 앉은뱅이 소파가 좋다. 프린지페스티발 기간에는 앉은뱅이 소파에서 쭈그리고 앉아 리뷰를 쓰곤 했는데 그 기억이 무척 좋아서인 것 같다. 








지금 이 글은 ‘영삼성라이프카페(서울 마포구 동교동 165-5 대아빌딩)’라는 곳에서 쓰고 있다. 홍대입구역 8번출구 근처에 위치한 이 공간은 삼성생명이 만든 공간인 듯한데 2층으로 이뤄져있고 회원가입을 하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고 월 3회 무료음료도 제공된다. 삼성생명의 공간이라 보험 상담을 하는 등 상업적인 측면도 있어 개인적으로 예술다방의 분위기가 더 좋지만, 서교예술실험센터는 행사가 잦아 예술다방 이용이 제한적이라 앞으로 이 공간을 많이 이용할지도 모르겠다.



뭐 어디를 이용하든 나의 뻔뻔했던 카페 무임이용기는 젊은 날의 객기로 남게 되겠… 아마 그러겠지? 평생 개털이진 않겠지 설마?







(격)월간잉여 15호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