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터뷰 2014.08.06 02:00

그래픽 디자이너 붕가붕가 레코드 김기조

붕가붕가레코드의 수석디자이너이자 타이포그래피스트로 다방면에서 두각을 드러내고 있는(지금 이 서체도 김기조 작가가 캐논 EOS와 함께 프로젝트를 하며 만든 서체임) 김기조 작가는 최근 잉여를 소재로 한 영화 <잉투기> 포스터의 레터링 작업을 했다. 붕가붕가레코드는 ‘루저문화’의 대표주자로 인식되기도 했던 곳이다. 그리고 김기조 작가는 훈남이다. 그래서 만났다, 김기조 작가!






최근 일주일은 어떻게 보내셨는지.
월요일에 CJ E&M과의 작업물을 보내고 금요일 컨퍼런스 준비하며 그래픽 작업할 게 있어서 그거 하고…  화요일 음반 제작 관련 워크샵, 수요일 목요일에는 이런저런 작업들을 수정했고 목요일엔 거의 밤을 샜다. 금요일 컨퍼런스가 좀 부담되는 자리라… 그러다 토요일이 됐다. 자다 깨다하며 주말이 지나갔다.


김기조 님은 언제부터 그렇게 바빴나?
이런 일상은 2011년부터였던 것 같다.


국내 타이포그래피 분야에서 다 해먹고 계셔서 그런 거 아닌가?
다 해먹지 못하고 있다. 내가 하는 활동은 타이포그래피 분야에서 협소한 부분을 담당하는 것이다. 내가 주로 하는 것은 레터링이라는 작업인데 서체개념까지 확장되지 않은 적은 수의 글자를 직접 그리는 작업이다. 영국이나 미국 같은 알파벳 문화권에서의 레터링은 글자를 직접 쓴다는 것에 가까운데 우리나라는 문자의 체계가 다르기 때문에 필요한 작업적인 부분들이 있다. 거기서부터 한글 레터링 작업이 시작된다고 볼 수 있겠다. 우리나라는 레터링을 본격적으로 하는 작가가 없었다보니까 찾아주는 사람이 있긴 한데… 혼자 일하는 사람으로서 레터링 작업 외 전반적인 디자인작업도 한다. 그 외 전화통화라든지 연락이라든지 작업에 수반되는 행위들을 직접 하는데, 작업 자체의 과로라기보다 전반적으로 모든 일의 스트레스가 누적이 되는 상황인 것 같다.


그래도 그렇게 일한 덕에 이제는 좀 먹고 살만 하시겠다.
다행히도 그렇다. 내겐 이걸 지금 안하면 더 이상 할 일이 없을 수도 있다는 조바심 같은 게 있다. “올해가 돈을 벌 수 있는 마지막 해일지도 몰라.”라는 생각을 하며 일이 들어왔을 때 거절하지 않고 할 수 있는 일은 맡아서 하려고 한다.


님이 작업한 ‘오늘의 할 일을 내일로 미루자’라는 타이포그래피를 보고 어느 정도 삶의 여유를 가지고 생활하는 분인 줄 알았는데 조바심을 가지신다니 의외다.
하나의 문장도 자기의 상황에 따라 다른 생각의 형태로 받아들이게 된다. 사실 그 문장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내포돼있다고 생각한다. 내 경우로 생각해본다면 ‘미룬다’는 것 자체가 내 할 일이 뭔지를 안다는 태도, 즉 일종의 능동적인 태도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진짜 중요할 수도 있는 일들은 미룬다는 생각을 하지도 못한 채로 미뤄지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예를 들어 소중한 사람, 사랑해야 할 사람이 사실 있으면서도 그걸 미루게 되는, 그건 언제든지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며 ‘오늘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그런 태도에 대한 생각도 들어있다. 





ⓒ김기조


사랑을 미룬다는 거 님 얘기 아님?
(침묵)


사랑을 한다면 어떤 이와 하고 싶은가?
이상형은 무의미하다고 본다. 이상형을 정해두면 지금 만나고 있는 사람의 매력에 빠지지 못하게 되지 않나? 가령 나는 ‘한가인과 닮은 사람과 사귀고 싶다’라는 사람은 눈앞에 한가인과 닮지 않는 사람이 있을 때 상대에게 전혀 빠지지 못하게 될 것이다. (한가인을 좋아하시나 봄.)


어떤 정형이나 형상이 아닌 ‘이런 사람’이 좋다는 경향성이나, 나는 과거에 이런 사람에게 빠졌다는 경험은 말할 수 있지 않을까?
내가 뭔가 몰두할 수 있게 해주는 사람이 좋다. 어떤 사람들은 말이 안 통하고 호흡 자체가 아예 다르지 않은가? 그 호흡이 비슷할수록 좋을 것 같다.
디자인 회사에 들어가지 않고 따로 작업실을 얻어 홀로 작업하고 계시다. 전형적인 삶의 모습은 아닌데, 부모님이나 친척들이 뭐라고 하지는 않는지? 주변에 보면 그런 오지랖에 스트레스 받는 사람들이 많다.
바빠서 집은 한 달에 두 번 정도 들어간다. 명절에 친척들이 모여도 취직, 학교, 결혼 얘기 같은 건 없는 편이다. 그런 이야기의 파편 속에서 스트레스 받는 사람도 있겠지만 내 경우는 아니었다. 36세의 사촌형도 결혼 안 했는데 친척들 중 그 형에게 뭐라고 하는 사람은 없다. 서로에게 시큰둥한 분위기다.


상대적으로 자유롭게 사는 데에는 그런 분위기가 어느 정도 영향을 끼쳤을 것 같다.
그렇다고 말할 수 있다. 외부자극에 대해 평균치보다 덤덤한 내 성격도 영향을 미쳤던 것 같고.


최근에 한 디자인 중에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은 무엇인가?
디자이너 신덕호씨와 협업한 김간지 x하헌진 앨범이 마음에 든다. 나로서는 협업을 하는 게 흔치 않은 일이었고, 그렇게 나온 결과물에 대해 주변 반응도 나쁘지 않아 보람을 느꼈다.







김간지 x하헌진 앨범




평소 어디서, 무엇으로부터 영감을 얻는 편인가?
그냥 일상적인 것들에서부터 얻는다. 해당하는 그 순간에 보고 있었던 것. 지하철 타고 가다 들리는 아주머니의 대화도 영감의 원천이다. 염감이라는 게 항상 긍정적인 데서 오는 것만은 아니다. 네거티브한 상황에서 작업적 욕구가 일어나기도 한다. 카페에 나와 사람들 소음을 들으며 작업을 할 때도 있다.


네거티브한 상황에서 작업적 욕구가 일어나기도 한다고 하셨는데, 나도 빡쳤을 때 글이 잘 써지는 것 같다. (웃음) 소위 ‘잉여짓’이라고 할 만한 걸 하기도 하나?
이제 게임을 좀 하려한다. 추석 때 명절 기분 내보겠다고  ‘GTA5’를 무리해서 샀는데 명절 때는 일 했고, 여유 시간이 30분씩 밖에 안 나서 좀처럼 플레이를 못하다가 어제 낮에 세 시간 정도 몰아서 했다. 게임시간으로 새벽 세시 쯤 고속도로를 역주행하다보면 트릭 같은 현상이 나타난다. 몰입할 때 느껴지는 중심선 효과, 내가 거기에 감싸져있다는 느낌. 주변이 고요해진다. 그런 걸 몇 번 느끼고 나면 뻗는다. 원래는 ‘심시티’ 같은 호흡이 긴 게임을 좋아했다. 쉴 새 없이 긴장감을 가져야 하는 액션 게임이나 아케이드 게임은 잘 못한다. 긴장을 하더라도 신체적인 반응을 요구하지 않는 대항해시대나 삼국지를 좋아했다.


붕가붕가레코드의 수석디자이너다. 붕가붕가레코드는 ‘루저문화’의 대표주자로 인식되기도 했다.
밴드 ‘타바코 주스’의 권기욱 씨가 “안될 거야 아마”라고 얘기했는데, 나와 주변 친구들 역시 대충 우린 뭐가 안 될 것 같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서울대 2학년 때 축제 기획 때 모인 사람들 중 그런 정서를 가진 사람들이 파생돼 나온 게 붕가붕가 레코드다. 일반적인 루트를 밟은 사람은 여기에 뭉치지 않았다. 정규코스를 밟지 않는 사람들. 그런 게 재미없는 사람들. 그래서 잘 될 것 같지 않은 사람들이다. 그래서 우리에겐 상황을 타개하겠다는 능동적이고 건설적인 의식이나 폭발적인 행동력이나 열정을 동반한 무언가가 없다. 어딘가 시큰둥하고 우리가 하는 게 엄청 잘 될 거라는 기대나 들뜸이 없었다. 기대하지 않았던 반응들이 나오기도 했지만 그게 우리가 한 것에 대한 결실이라는 생각은 없다. 현재는 얻을 수 있는 것의 ‘적정수준’을 계속 체크하며 커다랗게 부푼 꿈을 꾸지 않는 태도를 가지고 있다. 


붕가붕가레코드에는 서울대 출신 인물들이 많다. 그래서 “서울대놈들이 루저 코스프레한다”고 까는 사람들도 있다.
루저의 패배감이라는 상대적으로 느껴지는 개념이라고 생각한다. 잉여도 마찬가지고.  어떤 공동체든 루저나 잉여가 생길 수밖에 없다. 서울대 내에서 상대적으로 루저라고 느끼는 사람들이 있고, 삼성에 다니는 사람들도 패배 의식이 있을 수 있다. 개인이 느끼는 감정의 기제는 다른 것 아닌가.


미래에 대해 비전이랄까, 예측이랄까. 그런 걸 가지고 있는 편인가?
애초에 목표 같은 것을 안 세우는 편이다. 그냥 있으면 자연스럽게 내가 할 일이 다가 올 거라고 생각하고, 내게 일이 없으면 더는 이 일을 하지 않아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현재 자체에 충실한 삶을 살려고 한다. 무언가가 좋아 보이면 사고 영화 연극도 보고 여행도 가는 삶. 하지만 한국인들은 이런 삶의 태도를 IMF 이후 반성하게 된 것 같다. 계획을 하는 삶, 미래를 위한 삶. 보험에 가입하고, 대기업 직원, 공무원, 명문대 같은 윤곽이 뚜렷한 것에 사람들이 몰두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러다보면 내 일상에 잉여로 남길 수 있는 에너지가 다 미래를 위한 에너지로 빠져버린다. 계획을 짜고 산다는 걸 그걸 위해 현재를 담보 잡히는 것이라 생각한다. 
나는 목표가 중요한 게 아니라 방향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두 사람이 여행을 간다고 치자. A라는 사람은 부산이라는 명확한 목적지를 정한다. 그런 이는 부산에 도착하기 전까지 불안할 수 있다. 반면 그때그때 맘에 드는 길을 찾아가겠다는 태도로 여행에 임하는 B는 어디를 갈 필요가 없기에 어디 있어도 삶이 만족스러울 수 있다. 목적지가 있는 사람은 휴게소에서 재촉할 것이고 없는 이는 휴게소에서 즐길 것이다. 갈림길을 만났다고 쳤을 때 A는 고민을 하고 선택마다 슬프고 조바심을 느낄 수 있지만 B는 그냥 좋아보이는 길을 갈 것이다.   ‘더우니까 시원한 길로 가야지, 그늘이 많아 보이니까 저기로 가야지.’ 이런 삶의 태도가 중요한 것 같다, B는 적어도 죽을 때 “재밌었어”라는 말은 하고 죽을 수 있을 거다. 부산까지 가는 과정을 즐기지 못한 A에겐 무엇이 남는가? 심지어 부산에 가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불안감을 갖지 않고 현재를 즐기며 살기 위해서는 사회 안전망이 어느 정도 필요할 텐데, 우리나라는 사회안전망이 잘 돼있는 편은 아니지 않나. B처럼 살고 싶지만 그렇게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맞다. 그래서 사람들이 자신이 처한 삶에 집중해서 살 수 있는 사회, 불안해하지 않아도 되는 국가가 돼야한다고 생각한다. ‘미래고민’을 하지 않아 지금 살고 있는 데에 에너지를 쓸 수 있는, “이제 뭐하지? 시간 비는데?” 하는 고민을 하게하는 국가가 되길 바란다. 그러기 위해선 일단 정권이 바뀌어야 하겠지. 지금 한국사회를 지배하는 프레임을 수정할 의향이 있는 정부가 들어서야 할 것이다.
동시에 우리도 각자 속한 영역에서 해결하려고 노력해야할 것인데, 시스템 안에 편입된 방식으로는 해결이 되진 않는다고 생각한다. 의식의 변화도 필요한데, 시스템을 바꾸기 위해 파업하는 사람들을 보고 고마워하고, 어떤 문제가 개인의 노력을 안 했기 때문이라는 시각을 비판적으로 볼 필요가 있다. 문제를 개인의 탓으로만 돌리는 걸 보면 역겹다. 멘토 장사가 역겨운 것도 청년들에게 문제가 있는 것처럼 주입하며 다독이고 화를 내기 때문이다. 결국 “니가 그래서 그 꼴이다.”라는 뜻 아닌가? 이런 이들에 대해 “우리가 잘못했다”고 주눅 들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2주년을 맞는 <(격)월간잉여>에  덕담을 써달라 부탁 드렸다.








… 글씨가 귀여웠다.



“글씨를 잘 쓰는 편은 아닌 것 같다. 혹시 손글씨를 잘 못써서 타이포그래피스트가 된 건…”이라는  질문에 김기조는 초딩 때 일화를 들려줬다. "초등학교 때 할머니 선생님이 '너 그렇게 글씨 못 써서 어떻게 할래. 연애편지도 못 쓰겠네 ㅉㅉ' 했는데, 그때 어린 꼬맹이가 뭘 안다고 '그 때 되면 컴퓨터로 쓸 겁니다'라고 맹랑하게 대꾸했었다. 그게 지금 직업에 어떤 영향을 준 건 아니겠지만, 생각하면 조금 신기하긴 하다."





(격)월간잉여 15호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