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스포츠 2014.11.20 17:16

무라카미 하루키 <언더그라운드>를 읽고 (삐리리불어봐루쉰P)

다단계 회사와 옴진리교에서 발견한

'이쪽'의 그림자

IMF의 광풍이 몰아치던 99년, 난 공고를 갓 졸업했고, 취직에 실패했다. 나를 포함한 무직자에다가 대학을 가지도 못 했던 찌질이들에게 몰아쳤던 광풍이 있었다. 그것은 ‘다단계 선풍’이었다. 어디서부터 누군가를 통해 시작됐는지 모르지만 우리에게 ‘다단계’는 뿌리치지 못할 유혹으로 다가왔고, 아무런 자본금도 없이 쉽게 돈을 벌고 성공할 수 있다는 논리에 현혹돼 하나 둘 그 세계로 발을 들여 놓는 친구들이 생겨났다. 다행히도 나는 직접적인 접촉이 없었기에 거기에 대해서는 아무런 생각도 관심도 없었다.

재수를 하던 5월의 어느 날,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어머니가 병원에 입원해 병원비가 급하게 필요하다는 연락이었다. 공고를 졸업하고 서로 무직이며 대학도 가지 못한 한심한 인생들이었기에 친하건 친하지 않건 누군가가 겪는 고통은 같은 공고생이라는 한가지 이유만으로 반드시 도와줘야 한다는 그 마음으로 우리는 결속돼 있었다. 그 소식을 들은 우리들은 서로 연락을 했고, 편의점에서 밤을 새며 알바 했던 돈, 공사장에서 욕을 먹어가며 벌은 돈 등, 서로가 발악을 하며 모은 돈을 아까워하지도 않고 그 친구에게 전달을 했다. 근 3백여만원의 돈을 모아 그 친구에게 전달한 후 그래도 우리는 정말 인간적이라며 찌질이들은 찌질이가 지켜야 한다며 서로를 추켜세웠다.

그 후 몇 달이 채 지나지 않아 그 친구의 여동생에게 전화를 받은 나는 큰 충격에 빠졌다. 울면서 전화를 한 여동생은 오빠는 다단계에 너무 심하게 빠져 집에 있는 돈도 훔쳐 갔고, 집에는 들어오지는 않은 채 다단계 시설에서 먹고 살고 있다는 것이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어머님에 대하여 물어보니 아프기는커녕, 그 친구가 빚진 돈을 갚기 위해 식당을 나가고 있다는 것이었다. 제발 오빠를 그곳에 빼달라는 요청에 주소를 받아서 서울에 있는 다단계 회사로 갔다. 그곳에서 발견한 그 녀석을 멱살을 잡고 분노를 터트리며 때리고 욕을 했다. 그렇게 우리를 속이다니 너도 잘 알고 있지 않느냐, 우리가 얼마나 힘들게 살고 있는지를 그런데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느냐며 울음 섞인 목소리로 미친 사람처럼 외쳤다.

나에게 맞으면서도 그 친구는 싸늘한 눈초리로 그 따위 연약한 소리나 하니까 만날 바닥에서 거지새끼처럼 살고 있는 것이다. 그 돈은 내가 다 배로 갚아 준다며 발악을 하며 소리를 질렀다.

그 소란에 나온 다단계 직원들에게 둘러싸여 얻어터진 후 회사 밖으로 쫓겨난 나는 서울의 대로변에서 옷은 찢어지고 입술에는 피를 흘린 채 어쩔 수 없이 타박타박 역으로 걸어 갈 수밖에 없었다. 길 건너편, 그리고 정면에 지나가는 수많은 사람들은 그 누구도 나에게 관심이 없었다.   다정스러워 보이는 커플, 바쁘듯이 걸어가는 사람들. 마치 ‘언더그라운드’에 적힌 옴진리교의 피해자 증언에 나오듯이 그렇게 토를 하고 쓰러지는 사람들이 속출해도 그 건너편에서는 다른 세상을 사는 듯이 자신의 일정에 맞춰 움직이는 사람들처럼. 난 그 속에서 ‘이쪽’과 ‘저쪽’의 세계의 단절, 뭔가 공간이 뒤틀려버린 그런 기분을 느꼈다.

며칠 후 경찰도 찾아갔지만 불법적 단체가 아니기에 우리도 어쩔 수 없다는 무시 섞인 대답만 얻었고, 친구들을 모아서 찾아간 그 다단계 회사에서는 친구가 어디론가 다른 곳으로 옮겨 버렸다는 얘기만 들은 채 결국 그 녀석을 포기해야만 했다. 게다가 가족들과의 연락도 끊어져버린 그 친구를 찾을 길은 전혀 없었다. 그 친구도 아버지는 일용직 노동자, 어머니는 몸이 아프신 전형적인 우리와 같은 종족이었다. 그런데 같은 아픔을 공감하는 우리를 속이고 그렇게 산다는 것이 난 너무나 고통스러웠다.

몇 년이 지나 저녁 퇴근길에 책이나 좀 보려고 서점이 있는 서울의 어느 전철역을 올라가던 중, 지하철 입구에서 몇 년 전 내가 그 녀석의 멱살을 잡았을 때 입었던 그 때 그 옷을 입고 전단지를 돌리는 초췌한 그 친구를 보게 됐다. 마주친 우리는 그 녀석도 나도 당황스럽고 놀라 서로 아무 말 없이 몇 초간 쳐다보기만 했다.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지도 못하고 전단지를 손에 쥔 채 싸구려 가방을 메고 힘없이 서 있는 그 친구를 보며, 나는 한 마디도 말을 하지 못했다. 침묵 끝에 나는 ‘이 개새끼야, 그렇게 사기를 치고 갔으면 성공이라도 해야지 이 꼴이 뭐냐, 이 꼴이…’ 그 한 마디를 하고 사람들이 지나가는 그 지하철 입구 앞에서 울어버리고 말았다. 그 친구와 더불어 말이다. 근처 순대국 집에서 밥을 사 먹이며 손을 벌벌 떨며 숟가락을 드는 그 녀석을 보며 겪었던 그 온 몸을 찢어내는 고통의 근원을 이 책을 통해 조금이나마 추적할 수 있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언더 그라운드>는 그가 1995년 도쿄 옴진리교가 행한 지하철 사린 가스 살포 사건 (이로 인해  승객과 역무원 등 12명이 사망, 5,510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위키백과) 피해자들을 인터뷰한 뒤 쓴 책이다. 이 책 말미에 있는 맺음말 ‘지표 없는 악몽 – 우리는 어디로 가려 하는가?’는 내게 다단계 폭풍에 휩싸였던 그 때의 상황을 다시 한 번 떠올리게 했다.




<언더그라운드> 무라카미 하루키가 쓰고 양억관이 옮김, 문학동네 (2010년)



하루키는 이렇게 말한다.
“쓸데없는 장식만 걷어 내버리면 매스미디어가 근거로 삼는 원리의 구조는 아주 간단하다고 할 수 있다. 그들에게 지하철 사건이란 요컨대 정의와 악, 제정신과 광기, 정상과 기형의 명백한 대립이었다. 그렇게 해서 사람들은 많든 적든 ‘정의’ ‘제정신’ ‘정상’이라는 커다란 승합마차에 올라탔다. 그것은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즉 아사하라 쇼코나 옴진리교 신자에 비하면, 또는 그들의 행위에 비하면 이 세상의 대다수의 사람들은 분명한 ‘정의’이고 ‘제정신’이고 ‘정상’이라는 것이다. 이만큼 알기 쉬운 콘센선스(의견일치)는 없다. 매스미디어는 하나같이 그 흐름을 타고 그 기세를 점점 가속시켰다.”

또 이렇게 쓴다.
“앞에서는 말했듯이 이 사건을 보도하는 매스컴의 기본 자세는 ‘피해자 = 무구한 존재 = 정의’라는 ‘이쪽’과, ‘가해자=더렵혀진 존재=악’이라는 ‘저쪽’을 대립시키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쪽’의 포지션을 전제조건으로 고정시켜두고 그것을 이른바 지렛대의 받침점으로 삼아 ‘저쪽’의 행위와 논리의 왜곡을 철저하게 세분화하고 분석해가는 것이었다. 이러한 상호 유통성이 결여된 모멘트가 도달하는 곳은 항상 축소되고 패턴화된 논리이며, 혼탁함이 초래하는 무감각이다.”

그러면서 하루키는 이런 의문을 제기한다.
“이 지하철 사린사건의 실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사건을 일으킨 ‘저쪽’의 논리와 시스템을 철저하게 추적하고 분석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지 않을까, 그와 동시에 똑같은 ‘이쪽’의 논리와 시스템에도 병행하는 작업이 필요하지 않을까. ‘저쪽’이 던진 수수께끼를 해명하기 위한 열쇠는(또는 열쇠의 일부는) 혹시 ‘이쪽’ 지역의 지하에 감추어져 있는 것은 아닐까?’  ‘옴진리교라는 ‘존재’를 자기 자신이라는 시스템 속에 또는 자신이 속한 시스템 속에 어느 정도 포함되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그 ‘존재’를 검증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우리가 애써 의식적으로 배제해야만 하는 것이 혹시 거기에 포함되어 있는 것은 아닐까라는 것이다. ‘이쪽’ = 일반시민의 논리와 시스템과 ‘저쪽’ = 옴진리교의 논리와 시스템은 서로를 비추는 일종의 거울상을 공유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두 가지 상은 이상할 정도로 닮은 부분이 있고 몇 가지 점에서 호응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우리가 사물을 직시하는 것을 피하고, 의식적으로, 또는 무의식적으로 현실이라는 국면에서 끊임없이 배제하고 있는 자기 자신의 내적인 그림자 부분(언더그라운드)이 아닐까. 우리가 이 지하철 사린사건에 대해 마음 한구석에서 맛보고 있는 ‘꺼림칙함’은 바로 그곳에서 소리도 없이 솟아오르는 것이 아닐까?”

옴진리교의 사린 가스와 다단계라는 사건의 이면 속에 숨겨진 지하 세계는 그 속성이 비슷하지 않을까? 또한 그것은 내가 살고 있는 이쪽 세계의 어둠을 벗겨낸 부분과 매우 흡사하지 않을까? 사회의 성공 = 돈을 많이 버는 것 즉 배금주의라는 도식화에 잡혀 있는 우리들은 대학이라 불리는 학벌의 딱지도 사실 저 ‘배금주의’를 쟁취하기 위한 하나의 길이었다. 그 길에서 탈락했기에 우리는 바로 그 ‘돈’이라는 교주를 직접 모시기 위해 빠른 길을 선택한 것이 다단계였던 것이다. 내 시스템 속에는 이미 ‘저쪽’ 세계로 갈 생각을 이미 굳히고 다만 매스미디어가 말하는 콘센서스에 의해 마치 난 그런 존재가 아닌 것처럼 행세를 한 것이다. 이미 ‘돈’이라는 교주를 섬기고 있으면서 말이다.

하루키는 그 구조에 대해 이렇게 풀어서 말한다. 시스템이라 불리는 고도관리사회에서는 거기에 적응하지 못하는 자를 질병으로 보고 치료하려 한다. 그것은 개인의 자유, 가치를 억압하는 것이다. 허나 거기에도 문제는 있다. 사회에서 사는 이상 개인의 자유, 가치, 자아만을 위해서는 살 수 없다. 사회의 시스템과 개인의 자유, 가치는 서로 상호작용을 하는 것이다. 그 둘이 융합 혹은 타협하는 속에 살아가는 것이다. 옴진리교의 교주 아사하라 쇼코는 사회의 시스템 속에서 개인의 자유, 가치를 찾으려는 자들을 자신이 만들어낸 폐쇄적 시스템 속으로 포함시키고 그들의 자유, 가치, 자아를 자신에게 모두 종속을 시켰다. 이런 아사하라 쇼코의 폐쇄적 시스템과 사회와 개인이 병합돼 있는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스템과 어떤 차이가 있을까? 지금 살고 있는 시스템이 결국은 옴진리교의 폐쇄적 시스템을 낳을 수 있는 토양이 된 것은 아닐까? 그렇게 하루키는 묻고 있는 것 같다.

나 역시 삶을 토대로 본다면 하루키의 글은 수십 번도 긍정할 수 있다. 돈! 학벌! 학력! 이라고 불리는 이 거대한 사회 시스템 속에서 다단계라는 저쪽의 세계로 옮길 수 있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지금도 그런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사는 것이 현실이다. 나에게도 그런 폐쇄적 시스템의 유혹이 얼마나 많은가? 컬트적 종교가 아니라 하더라도 누군가를 증오하고 혹은 대화를 거부하고 나만의 세계에 빠져 사는 것이 행복이라고 사는 이런 행동과 태도. 절망과 증오를 가득 품고 폐쇄적 시스템을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다가서고 있지는 않는가란 예감도 들고 말이다. 무슨 종교든 반드시 어떤 절대성을 주장한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을 미치게 하는 마성에 쉽게 빠져드는 것이다. 그렇다면 돈이라는 절대 교주를 모시고 있는 나 역시 그런 광신에 쉽사리 빠져들 가능성을 항상 열고 있는 것은 아닐까?

더욱이 97년에 쓰여진 이 맺음말에서 하루키는 일본의 체질에 대해 이렇게 논하고 있다. 과실을 외부에 명확히 밝히고 싶어하지 않는 일본적 조직의 체질이라 말하며 사린 사건의 피해는 그로 인해 더욱 어둠 속으로 가려졌다고 말이다. 3.11 일본대지진을 바라보며 그 때의 일본 체질이나 현재나 변화가 없다는 사실에는 당혹감을 더 금치 못한다.

사실 책을 읽은 후 이 책에 대한 다른 리뷰들을 검토해 봤다. ‘지루하다’는 것이 대부분 리뷰의 공통점이었다.(솔직히 나도 지루하긴 했다….) 어찌 보면 반복되는 피해 사실에 대해 지루하게 반복해 적어 놓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하루키는 피해 사실에 대해 반복적으로 적고 싶은 것이 아니라 ‘피해자의 이야기’를 쓰고 싶은 것이었다고 생각한다. 매스미디어에서 말하는 인스턴트적 사실이 아니라 ‘이쪽’ 시스템 속에 살던 인간이 그런 문제를 겪었을 때, 그것을 살아 움직이게끔 쓰고 싶었다는 사실을 느꼈다.  이 사회 시스템이 추상화시키고 단순한 숫자로 취급하는 인간들에 대해 그 숫자를 하나의 인간으로 보고 그것을 살아있는 존재로 만들고 느끼는 것.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성공했다고 평가하고 싶다. 하루키에 대한 나의 관점도 많이 바뀌기도 했다. 하루키를 처음 접한 고등학교 때 ‘상실의 시대’라고 하는 희대의 야설이 나왔다는 소식에 냉큼 달려가서 집어 들었던 천박한 나를 떠올린다.

다단계로 인해 피폐된 삶을 살았던 그 친구를 일주일에 한 번은 만나서 집으로 돌아가라 설득해서 결국은 그 친구의 손을 잡고 집을 찾아 갔었다. 욕할 줄 알았던 아버지도 어머니도 여동생도 모두 그를 울며 반겨주었다. 그리고 지금은 영세한 중소업체에서 별로 안 되는 월급을 받으며 생활을 하고 있다.

그 친구가 언젠가 나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자신이 방황하며 집을 못 들어갔던 그 때 자신에게 내가 했던 말은 기억이 하나도 안 나지만 그 안타까워하던 마음만은 잊히지가 않는다고 말이다. 나 역시 그런 마음을 알 것 같았다. 내가 힘들었을 때 격려해 주던 영업부장님, 잡지사 편집국장님, 헌책방 팀장님…말은 기억이 안 나는데 그 마음은 잊히지가 않는다. 결국 폐쇄적 시스템에 빠지지 않고 이 불안한 사회 시스템에서 버티는 힘은 그런 것이 아닐까.





(격)월간잉여 15호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