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2014.11.27 15:13

연서복 특집: 거꾸로 신은 고무신이 복학생에게 미치는 영향 (최용준)


나는 이제 막 전역한 초짜 복학생이 아니다. 복학생 새내기들이야 전역의 기쁨과 하루빨리 시작되어야 할 연애에 허겁지겁 될 테지만 나는 서두르지 않는다. 전역한지 1년이 넘었고 슬프게도 왜 내가 연애를 못하는지 알 것 같다. 앞으로 할 수 있다는 확신도 줄어든다. 초탈감이 든다고 해야 하나. 그래도 사랑은 하고 싶다.

 

내가 연서복인 이유는 그냥 복학생이 아니기 때문이다. 고무신이 거꾸로 놓인 경험이 있는 복학생이다. 그렇다. 나는 군대에서 여자친구와 헤어졌다. 삼년 반을 만났지만 그녀는 폭풍 같은 나의 감정은 모른 채 소나기처럼 떠나갔다. 헤어짐의 원인 과정 결과에 대해서는 이틀 밤을 새우고도 하룻밤 더 말할 수 있으니 그 때의 아픔은 세상이 무너진다는 표현이 적절했다. 빠져나올 수조차 없는 연평도에서 하루라도 달리기를 하지 않은 적이 없다. 가만히 앉아 고여 있는 감정을 마주할 수 없었으니까. 칠월의 뜨거운 섬은 다시 돌아올 그녀를 위해 희망 없는 희망을 가져야 했다. 끝없이 별을 헤아렸으며 시를 썼고 후임들의 잘못도 용서할 수 있었다. 광활한 우주에서 그 때만큼 내가 작게 느껴졌던 적은 없었다. 전역 하루 전. 공중전화기 앞에서 서성였다. 그녀는 이미 다른 사랑을 시작하고 있었다. 그토록 기다리던 전역이 그다지 기쁘지 않았던 것 같다.

 

어쨌든 전역을 하니까 여자는 많았다. 세상의 반이 여자라는 말은 놀랍게도 사실이었다! 더 예쁜 사람을 만나야겠다는 복수심이 나를 지배했다. 하림의 <사랑이 다른 사랑으로 잊혀지네>를 들으며 설레는 순간을 마주했던 여인들의 전화번호와 페이스북을 향해 돌진했다. 심지어 고등학교 동창생과 어떻게든 기회를 만들기 위해 거리에서 우연히 만난 연기까지 했다. 그 때 선보인 놀란척하는 연기는 정말 어휴……. 아무튼 그녀를 잊기 위해 하루 빨리 연애를 해야 했다. 어떻게든 여자친구를 사귀어야 한다. 그 조급함이 나를 이상하게 만들었던 것 같다. 무엇이든지 느리던 내가 너무 빨라졌다. 몇 번의 데이트를 하고 곧바로 편지를 썼고 남자친구 있는 여자를 좋아했으며 미팅을 했고 도서관에서 번호를 땄다. 모두 난생 처음 있는 일이었다. 군대 가기 전의 나라면 할 수 없을 일이다.

 

여러 사람들에게 찝쩍댈수록 옛날 이별은 점차 희미해지는 것 같았다. 하지만 데이트 후에 혼자 돌아오는 발걸음은 그게 아니었다. 나는 그저 기억의 고통에서 발버둥 칠뿐이었고 몸부림은 행동으로 이어졌다. 서로 호감이 생기는 과정에서 항상 나는 매끄럽지 못했다. 남녀가 좋은 감정을 갖게 되면 과거 연애사를 알고 싶기 마련이다. 어쩐지 재밌고 스릴있는 탐색의 시간들. 그런 야릇한 순간 앞에서 고무신 거꾸로 신은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문제는 히죽거리며 별 것 아닌 추억으로 넘겨야 할 텐데 그 시절의 헤어짐을 이야기할 때면 나를 숨길 수 없는 것이 아닌가. 웃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울 수도 없는 진지해진 나의 표정은 번번이 상대방이 눈치 챌 정도로 어두웠다. 앞에 있는 여자에게 웃으며 옛 여자친구를 말하기에는 마음이 가볍지가 못하더라.

 

누군가를 사랑하고 싶은데 그럴 수 없게 되자 나는 절망했다. 호감으로 쉽게 누군가를 만날 수가 없다. 그렇게 1년을 보냈다. 그냥 복학생이었다면 나는 지금 여자친구가 있을지도 모르겠다.(정말?) 오랜 시간 사랑했던 친구가 없어지고 새 친구를 사귈 때 겪는 어색함을 견디기 어려웠다. 의심하고 두려워하는 태도가 족쇄처럼 달라붙는다. 무엇보다 기억의 공허함이 크다. 군대의 이년 여자친구의 삼년. 그 시절은 이십대 초반의 나를 온전히 담는 그릇이다. 그릇은 조각조각 깨져버린 것만 같았다. 깨진 조각들은 날카로운 사금파리로 변해 이별의 상처를 쑤셔댔다. 그 아픔은 다른 사랑이 필요하다는 강박으로 변했다. 이전의 나를 부정했다. 전역했으니 연애도 새로워야한다는 생각으로 자신을 몰아세웠다. 상처를 반복할 수 없다는 무의식이 연애를 초조하고 어설프게 만드는 원인이었던 것이다.

 

대부분의 복학생들이 연애에 서툰 이유는 아마 나와 비슷할 것이다. 비록 군대에서 일말상초의 불운이 없었다 할지라도 군대는 주로 과거를 떠올리는 장소다. 전역은 보이지 않는다. 오늘은 불행하다. 그래서 오래 전 기억을 더듬거릴 뿐이다. 그렇게 보낸 2년이라는 사고의 틀이 금세 바뀌기는 어렵지 않을까. 대학교에서 지금을 생각해야할 텐데 예전 연인에게 먹혔던 비법 따위를 떠올리니 서툴러질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지난 시간과 새로 마주하는 현재를 끝없이 저울질하는 복학생의 연애는 그래서 더욱 험난하다.



어깨에 힘을 주고 주먹을 날리면 느리다. 힘을 빼고 가볍게 툭툭 주먹을 던져야 빠르고 강하다. 그게 잽이다. 그리고 잽을 던지는 왼손을 제압한 자가 세계를 제압한다고 했다. 나는 그 탈력脫力의 비법을 알기에는 너무 급했다. 복학생들은 복학생이라는 이름 때문에 힘이 바짝 들어가 있다. 개강을 앞두고 군대에서 품었던 핑크빛 로맨스를 실현시키기 위해 마음은 두근거린다. 그토록 기다리던 전역을 하지 않았는가! 세상과 단절된 채 오직 머릿속으로 연애를 한 모든 예비역이 연서복이다. 연애의 욕망이 충만하다. 어떻게 튈지 모르는 탱탱볼의 딱딱함처럼 복학생은 단단해져있다. 삐걱대는 몸으로 실수할 수밖에 없고 허세를 부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엉뚱하게 카톡을 보내고 어설프게 호의를 베푸는 것. 모두 잘하려는 마음이 크다보니 발생하는 어색함이 아닌가.




만화 '더 파이팅' 중



 

힘을 빼자. 꿈꾸는 사랑에 대한 집착을 버려본다. 군대에서 헤어진 옛 연인의 아픔은 시간 앞에 점차 해결된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니 억지로 연애하려고 들지 말아야겠다. 복학생의 급하고 단단한 격정적인 마음은 지난 1년 동안 많이 겪었다. 이제는 좀 품격 있는 선배로서 여유 있게 14학번 13학번 12학번 11학번 10학번들을 마음으로 안아줄 때다. 비록 연애에 서툰 복학생의 삶은 계속되겠다. 그럼에도 작년보다는 나을 것이다. 2년차 연서복이니까. 심호흡하고 어깨한 번 털고 개강을 맞이해 본다. 올 해는 어여쁜 누군가를 만나겠다. 만날 거야. 만나겠지...?

 


최용준. 20대 중반 서울 사는 감성돔. ( ͡° ͜ʖ ͡°)

plumachoi@naver.com

 





(격)월간잉여 16호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