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잉각색 2014.12.08 03:10

두 번의 신문사 잉턴 생활기 (어고은)

오지 않기를, 최대한 늦게 와주기를 바랐지만 오고야 말았다. 대학생활의 헬 게이트, 4학년 2학기를 맞이하는 순간이었다. 스물넷이 되기 한 달 전. 그러니까 2012년 12월, 기말고사를 준비하다가 문득, 이렇게 손 놓고 방학을 맞았다간 그야말로 ‘먹고 똥 싸는 기계’가 될 것 같은 불안감이 엄습했다. 그래서 뭐라도 건지려고 학교 홈페이지에 들어가 학사공지를 뒤졌다. 현장실습프로그램 연수생을 모집한단 글이 보였다. 최대 두 곳까지 지원이 가능했는데, 미디어 관련 회사는 세 곳이 있었다. 두 곳은 신문사였고 다른 한 곳은 영상과 관련된 일을 하는 데였다. 다큐멘터리 동아리에서 활동하면서 영상의 매력에 푹 빠져있던 나는 망설임 없이 1지망을 그 한 곳으로 정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면접관들은 내 영상을 탐탁치 않아했다. 탈락의 고배를 마시고, 남은 두 신문사 중 내가 생각했을 때 인지도가 더 높은 곳을 골라 지원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선택을 후회했다.



그 곳은 인턴이 필요한 게 아니었다. 나쁘게 말하면 값싸게 부려먹을 수 있는 착취대상이 필요했던 것 같다. 내가 꿈꿨던 신문사 인턴생활은 처음부터 어그러졌다. 우리는 편집국과는 동떨어진 복도 끝에 사무실이라 부르기도 민망한 곳에서 일을 해야 했다. ‘그래, 일 하는 환경보다는 무엇을 하느냐가 중요한 거니까’라며 나를 달랬다. 하지만 이내 달랠 수 없는 극도의 분노를 경험했다. 그 ‘무엇’이 스캔 작업이었기 때문이다. 취재를 하고 기사를 써서 당장 내 이름이 신문에 실리길 바랐던 건 아니다. 그래도 이건 아니다 싶었다. 인턴사원은 국어사전에도 ‘회사에 정식으로 채용되지 아니한 채 실습 과정을 밟는 사원’이라 나와 있다. 실습은 배우고 익혀 실제로 일을 해보는 과정이 있어야 하는데, 스캔 작업은 배움이 필요한 일이 아니다. 우린 인턴이란 이름의 알바생이었다. 심지어 몇몇 회사 사람들은 우리를 ‘알바’라 부르기도 했다. 하루에 스캔을 100장씩 하다보면 내 정신이 온전히 내 것이 아닌 경험을 하게 된다. 이 때 나는 마치 내가 스캔기계가 된 것 같았다. 머리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게 아니라 몸이 기억하는대로 반응하고 움직였다. 인턴이고 나발이고 다 때려 치고 싶었다. 차라리 알바를 해서 돈이라도 버는 게 나을 것 같았다. 시급으로 치면 최저임금도 못 받았으니 말이다. 마음속의 분노를 꾹꾹 눌러 담고 2년 같은 두 달을 보냈다.






tvN <미생> 2014




학교로 돌아와 4학년 2학기를 마치고 다시 방학을 맞았다. 토익, 자격증, 상식 공부까지 친구들도 뒤로한 채 공부에만 몰두했다. 시간은 흘러 9월이 됐고 졸업연기제도가 없는 망할 학교 탓에 난 추가학기를 다니게 됐다. 그러다 우연찮게 또 다른 신문사에서 좋은 기회를 얻어, 두 번째 인턴생활을 하게 됐다.전 신문사에서의 경험 탓인지 그리 긴장하지 않은 상태로 첫 출근을 했다. 거기와는 다를 것이란 확신에 오히려 설렘으로 가득 차있었다. 가보니 정말 그랬다. 이 신문사에서 하는 일은 처음 그 곳과는 180도 달랐다. 사건 현장도 가고, 인터뷰도 하고, 내가 쓴 글이 지면으로 나오기도 했다. 선배들이 하나부터 열까지 알려주고 옆에서 도와주진 않지만 일을 하면서 스스로 배우고 과정을 겪으며 익힐 수 있었다. 정말 국어사전에 나와 있는 그 인턴사원이 된 것이다. 비록 전체 기사의 미미한 부분이더라도 내가 쓴 기사가 지면으로 나왔을 땐 너무 뿌듯해서 집에서 나 혼자 콩댄스(feat.홍진호)를 추기도 했다.











그런데 그런 호(好)시절도 찰나였다. 처음 일했던 곳과는 달리 고정적 업무(라고 쓰고 스캔이라고 읽는 것)가 없어서 한 주는 미친 듯이 바쁘다가도 다른 한 주는 할 일이 전혀 없어 서핑만 했다. 쓸모없는, 남아도는, 낭비하는 등 모두 다 나를 수식하는 단어였다. 한편, 몸은 잉여였지만 정신은 기사 아이템을 쥐어짜느라 죽을 것 같았다. 들어오고 2~3주가 지나자 선배들이 ‘너도 슬슬 아이템 좀 내야지’하며 은근슬쩍 압박을 가했다. ‘난 인턴 나부랭인데, 뭘 기대하는 거지’라며 반감이 들기도 했지만, 내가 발제한 아이템이 지면 한 바닥에 실린다는 말에 열과 성을 다해 아이템을 냈다. 하지만 줄줄이 킬(kill) 되면서 힘이 빠졌다. 아이템 선정 기준에 의구심이 들기도 했다. 10년차 선배한테 기사 선정 기준을 물어봤지만 돌아오는 답은 ‘감’이 있어야 한단다. 겨우 한 달 정도 일한 내가 뭘 안다고, 감이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답답한 마음도 컸지만 무엇보다 내 자신한테 화가 났다. 기자가 되기 위한 자질이 부족한 건 아닌지 스스로를 자책하며 화장실에서 남몰래 울기도 했다.



인턴생활 7주째. 선배가 주는 일만 하며 아이템 내는 것도 억지로 하던 그 때. ‘이게 되겠어?’라고 생각했던 주제에 선배가 반응을 보였다. 왜인지 생각해볼 새도 없이 아이템을 키워서 예쁜 기사로 만드는 데 몰두해야 했다. ‘내 기사’를 쓴다는 건 엄청난 노동을 필요로 하는 일이었다. 인터뷰하랴, 통계자료 모으랴, 전문가 멘트 따랴 몸이 열 개라도 부족했다. 선배들은 이 짓을 어떻게 매주하나 싶었다.  그렇게 몸도 마음도 바빠지자 정작 기사의 본질은 잊고 있었다. 사실보다 진실을 밝혀야 하는데 사실을 쫓는 것도 너무 벅차 진실의 문턱은 구경도 못해본 채 한주 한주를 보내고 있었다. 인턴을 하기 전엔 기자가 되기만 하면 정말 잘해낼 수 있다고 단언했다. 하지만 실제로 겪어보니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일이 바쁘단 핑계에 초심은 다 잊고 진실도 뒤로 제쳐뒀다. 아이템이 새롭고 재밌어야 한다는 생각에 자극적인 것만 찾는 내 모습을 발견하기도 했다.



이제 기자란 직업을 목표로 둘 것이 아니라, ‘어떤’ 기자가 될 것인지를 고민해야겠다. 기사 한 문장, 한 글자가 사람들에게, 이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매 순간 잊지 않아야 한다. 일단 당장은 남은 2주 동안 진실의 문턱에 손톱이라도 닿을 수 있게 눈과 귀를 열고 숨은 목소리를 찾아내 들으려 한다.





어고은. 이십대 언시생. 졸업을 앞두고 감정기복이 심함.
필명 뭐 할까 고민하다 포기하고 결국 실명으로 냄.
ekekwk@naver.com





(격)월간잉여 15호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