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잉각색 2014.12.08 03:30

니 남편 섹스 존나 못해 (낭만얄캥이)

밤 열 시.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오지랖 넓은 선배 K(이하 오지랖)의 전화였다. 그는 한숨을 쉬며 나와서 술 한 잔 하자고 했다. 내 구(舊)남친의 결혼식에 다녀오는 길인 모양이다. 연예인들이 애용한다는 강남의 한 웨딩홀에서 결혼식을 올렸단다. 그것도 아버지가 탄탄한 사업체를 운영하는 부잣집 딸내미의 손에 반지를 끼워주며. 나는 “괜히 오버하지 말고 나중에 술자리 안주로 꺼내놓게 오늘 일 잘 기억해 놓으라.”며 전화를 끊었다.



한 시간 쯤 지났나. 이번에는 카톡이 울렸다.
“그 여자 완전 돼지더라. ㅋㅋㅋㅋ"



그 여자란 구남친과 결혼한 여자를 말한다. 대화의 진원지는 대학교 친구들의 단체 카톡 방. 페이스북에서 봤는데 그 여자는 어쩜 양심도 없이 그 몸매로 드레스 입은 사진을 당당하게 올릴 수 있는 거냐며 다들 까대기에 바빴다. 한 쪽에서는 그 여자의 페이스북 주소를 묻고, 한 쪽에서는 나도 결혼할 때 이렇게 뚱뚱해보였느냐고 물었다. 나는 휴대폰을 끄고 이불에 누웠다. 잠이 오지 않았다.



구남친이 시월에 결혼한다는 소식은 진작 알고 있었다. 그와 나는 CC였기 때문에 한 다리 건너면 아는 사람이 천지인지라 헤어진 후에도 실시간으로 뉴스가 들려오곤 했다. 이제는 헤어진 지도 어느덧 1년. 술자리 안주로 구 남친을 씹을 수 있을 정도로 마음의 여유가 생긴 터였다. 다만 그날은 결혼식 당일이어서 센티해지고 싶었을 뿐이다. 4년이나 사귀었으니 이 정도는 생각할 수 있는 것 아닌가.  당신과 나의 인연은 따로 있었다고, 지난날들은 오늘의 연인을 위한 예행연습이었나 보다하고. 그런 시절도 있었지 하며 아름답게 추억하려는데 지인들이 깐족거리는 바람에 살짝 기분이 상했을 뿐이다.



라고 생각하는 정도였는데, 일주일 뒤 오지랖과의 술자리에서 몰랐던 사실을 확인하게 됐다. 결혼식이 끝나고 밥을 먹고 있는데 처음에는 이런 얘기가 들려오더란다. “K는 지금 여자랑 결혼하기 위해서 전 여자를 만났나봐. 둘이 너무 잘 어울린다.” 덕담을 하고 싶으면 덕담만 할 것이지 굳이 자리에도 없는 사람을 디스를 할 건 뭐냐,  나는 그럼 사랑의 정거장이냐며 화를 낼 수도 있겠지만 내가 그 정도로 속 좁은 사람은 아니다. 그런데 그 다음에 이어진 말이 가관이다. “그런데 K 말야, 수단도 좋더라고. 전 여친이랑 헤어지기도 전에 지금 여자랑 잤다며? 그것도 전 여친이 들락거리던 자기 집에서 말야.”



이 얘기를 듣는 순간 어떤 표정을 지어야할지 난감했다. 감정을 관장하는 변연계는 급속도로 증오로 충전되고 있었고 이성을 컨트롤하는 전전두엽은 여기서 깽판 쳐봤자 너만 미련돋는 여자로 보이니까 참으라고 했다. 어느 쪽의 손도 들어주지 못한 채 나는 엉거주춤한 얼굴을 하고 앉아 있었다.  



술자리에 같이 있었던 이들은 모두 구 남친의 얼굴을 한 번씩은 봤던 사이. 그것도 깨가 쏟아질 무렵에. 기절하고 싶을 정도로 쪽팔렸다. 택시에 타자마자 바로 휴대폰을 꺼냈다. 



“이 더러운 새끼야, 깨끗한 척하더니 결국 이거냐?”
아냐 이건 너무 약해. 지우자.
“야 이 개새끼야, 너 나한테는 논문 쓰느라 바쁘다고 공부해야 한다고 그러더니, 그동안에 떡치는 공부하고 있었냐? 사회복지 석사? 웃기고 자빠졌네. 입으로는 부의 재분배 어쩌고 떠들더니, 왜 박근혜가 대통령 되니까 니 살아생전에는 복지 국가 못 이룰 것 같아서 필살기로 혼테크 썼냐?!”



구남친의 전공이 사회복지인 게 아주 중요하다. 사회복지가 아주 간절히 필요했던, 내가 구멍난 스타킹도 뒤집어 입던 가난한 시절에 날 버리고 부잣집 여자랑 만난 것 때문이 아니다. 바로 구 남친과 결혼한 여자의 전공도 사회복지이기 때문이다. 나도 마찬가지다. 그렇다. 그 여자는 내 선배다. 신입생 MT때 나에게 술을 부어주던 여자. 구 남친과 나, 그리고 그 여자와 그 여자의 남친도 지하철 역에서 마주쳐서 서로 잘 어울린다며 덕담도 하던 사이였다. 


나랑 헤어지고 두 달도 안 돼서 그 여자랑 사귄다고 할 때부터 예전부터 썸 타고 있었겠거니, 양다리였겠거니 예상은 어느 정도 하고 있었다. 그래도 그렇지, 섹스까지 했을 줄은 몰랐네????? 내가 순진했나보다. 워낙 구 남친이 우아한 척 말하기 좋아하는 재수 없는 먹물 캐릭터라서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문자는 발송하지 않았다. 어차피 이 둘은 결혼했는데 이런 문자 보내봤자 나만 더 병신될 뿐이니까. 무심코 임시 보관함을 열어보다가 불쑥불쑥 열받기를 여러 번, 그럴 때마다 내 안에는 분노와 사리가 차곡차곡 적립되고 있었다.


구남친의 결혼식장에서 내가 병신처럼 잘근잘근 씹힌 소식을 들은 주말, 나는 세 사람과 싸웠다. 일요일 아침에는 친오빠랑 한 대거리했고, 오후에는 그 거지같은 소식을 술자리에서 같이 들었던 친구에게 시비를 걸었다. 오지랖 선배에게도 전화해서 엄청난 분노를 토해냈다. 이런 식으로 자꾸 구남친 소식 전해줄 거면 아예 인연을 끊자고, 그 인간이 아빠가 되든 이혼을 하든 나는 더 이상 알고 싶지 않다고 바락바락 소리를 질렀다. 결국 모든 대전에서 나는 승리를 거두었다. 하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 가슴이 자꾸만 두근거렸다. 당연했다. 종로에서 뺨맞고 한강 가서 아무리 화풀이 해봤자 기분이 나아질 리 없었다. 


표현할 수 없는 분노를 껴안고 전전긍긍하던 어느 날, 내 안에는 희미하게 어떤 문장이 떠올랐다. 여기에 꼭 어울리는 노래도 함께. 그 노래는 유병재 씨의 <솔직히 말해서 니 여자친구 못생겼어>.









유병재 씨의 노래에 영감받아, 배신으로 인한 분노를 랩으로 승화해봤다.



솔직히 말해서 니 남편 존나 못해.
인정하고 싶지는 않겠지만 너도 알고는 있겠지.
니 남편 섹스 존나 못해.
조금 거칠게 말해서 니 남편 섹스는 체조 같아.
하나 둘, 하나 둘
매번 순서도 같고 강도도 똑같아.
야동도 안 보는지 발전이 전혀 없어.
그래 네가 만족한다면 뭐라할 수는 없어
하지만 객관적으로 말해서
니 남편 섹스 존나 못해
굳이 비교하긴 싫지만 우리집 개가 더 잘할 것 같아.
모른 척하고 싶겠지만 매일 밤 넌 알 수 있겠지.
만약에 잘하는 게 죄라면 니 남편은 매번 훈방조치.
그냥 그렇단 얘기야.
니가 부정해도 좋지만 닭목을 비틀어도 새벽은 오겠지.



평생 오르가즘이 뭔지도 모르고 지낼 그 여자를 생각하면 조금 안 됐다. 헤어진 후에 오죽하면 이상형이 ‘잘 하는 남자’로 바뀌었겠는가!그래도 세상에 신은 있나보다. 주님인지 스님인지가 내게 엄청 잘 하는 남자를 선물로 보내주신 것이다. 현(現)남친은 하루에 일곱 번도 한다. 다양한 레퍼토리에 힘이 아주 그냥!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아휴, 하마터면 평생 불감증인 줄 알고 살 뻔 했잖아?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구남친을 여전히 욕하는 이유는 단 하나. 더 이상 사람을, 사랑을 믿지 못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냥 다른 여자가 좋아졌다며 이별을 고하고 시원하게 욕이나 듣고 싸대기 한 대 맞고 가버릴 것이지  왜 ‘아직도 나는 너를 사랑하는데’ 운운하며 끝까지 내 옆에 남으려는 척 했을까.


아마도 내가 불쌍해서 그랬을 것이다. 불쌍해서 옆자리를 지켜줬겠지.그래서 두렵다. 마음이 식어버려도 갖가지 이유를 대가며 옆에 있을 수 있는 게 사람이고, 그 핑계 삼아서 자신이 희생자인 척 떠나버릴 수 있는 게 사람이니까.진실한 사랑이 과연 존재하기나 하는 걸까. 이런 회의론자를 연인으로 둔 현 남친에게 그저 미안할 따름이다. 나도 언젠가는 다 잊고 행복해질 수 있을까.





낭만 얄캥이. 라는 것도 구남친이 지어준 애칭이었다.
낭만적이면서 얄미운 고양이 같다나 뭐라나.
이번을 마지막으로 이 애칭은 폐기처분한다.




(격)월간잉여 15호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