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스포츠 2015.02.10 23:16

[미래소설] 네로의 여자(서민)

서라!”

이크, 들켰다.’

네로는 책을 옆구리에 낀 채 냅다 뛰기 시작했다. 경찰복을 입은 사내 세 명이 쫓아오고 있었다. 네로는 달리면서 휴대전화를 꺼내 단축번호 1번을 눌렀다. 탁한 목소리가 전화기에서 흘러나왔다.

다음 모퉁이를 돌면 출구가 보일 거다.”

네로가 모퉁이를 돌자마다 맨홀 뚜껑이 열렸고, 네로는 입구 속으로 몸을 날렸다.

 





The Matrix (1999)





휴우, 살았다.”

네로는 몸에 묻은 흙을 털었다.

타이밍이 좋았어. , 너 말고 내가.”

모피우스의 말에 네로는 빙긋이 웃으며 옆구리에 낀 책 세 권을 내밀었다.

책이 왔다고?”

사람들이 몰려들었지만, 네로의 시선은 한 여인에게 가 있었다. 그 여인 역시 네로의 미소에 웃음으로 화답했다. 둘의 거리가 가까워지자 여인이 입을 열었다.

걱정 많이 했어.”

자기도 참. 내가 구원자라는 거, 아직도 안 믿는 거야?”

네로는 말을 마치자마자 여인에게 손을 뻗었다.

잠깐!”

여인이 몸을 빼며 말했다.

내가 구해오라는 책은?”

네로가 웃으며 주머니에 있던 책을 내밀었다. 그 책의 앞부분에는 다음과 같은 글귀가 쓰여 있었다.

월간잉여 15.’

 


우리나라에서 책이 사라진 것은 201811일을 기점으로 해서였다. 그 전해 있었던 대통령선거에서 보수정권은 문재인을 내세운 야당에 압승을 거두며 그들의 집권을 15년으로 연장했다. 그들이 특히 더 고무된 것은 20대의 압도적 지지였다. 일간베스트, 즉 일베의 활약도 무시할 수 없었지만, 20대의 지지율이 선거사상 최초로 70%를 넘어선 것은 뭔가 다른 이유가 있어 보였다. 각 진영의 연구팀은 사활을 걸고 이 현상을 분석했는데, 새누리당의 싱크탱크인 무생각상팔자의 결론은 다음과 같았다.


“20대가 책을 읽는 대신 스마트폰만 들여다본 것이 그들의 보수화를 촉발했다.”

 


책을 읽으면 간접경험을 통해 배우는 게 많고, 그러다보면 세상이 나 혼자 잘났다고 살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즉 다른 이들이 잘 사는 것도 중요한 일이 되고, 다른 사람과의 연대를 통해 보다 좋은 내일을 만들고자 애쓴다. 사건의 배후에 도사린 음모를 읽어낼 능력이 생기는 것도 책이 주는 선물.

 


반면 책을 읽지 않은 사람은 내가 당장 오늘을 살아내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고, 타인은 내게 경쟁자일 뿐이다. 아울러 생각이 단순화됨으로써 세뇌에 쉽게 흔들린다. ‘무자식상팔자의 보고를 받은 새누리당은 흥분했다. “어차피 노인층은 종북몰이로 표심을 얻으면 된다. 20대가 문제였는데, 그들로 하여금 책을 읽지 않게 만들면 영구집권은 따 놓은 당상 아닌가!”


 

그래서 그들은 현대판 분서갱유를 시작한다.

물론 무작정 책을 없애는 건 반발을 불러일으킬 수 있으니 그들은 다음과 같이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했다.



정보화 강국인 우리나라에서 아직도 시대에 뒤떨어진 종이책을 만든다는 것은 어이없습니다. 종이책은 나무를 없앰으로써 환경파괴를 불러일으킵니다. 국토가 좁은 나라에서 그 책들을 보관하는 것도 만만한 일이 아닙니다. 모든 종이책을 없애고 그 대신 스마트폰을 이용한 전자책으로 대체하겠습니다.”

 


일부의 반발이 있었지만 사람들 대다수는 이 제안에 반대하지 않았다. 책을 다 없애는 게 아니라 전자책으로 대체하는 것에 불과하지 않은가! 하지만 종이책과 전자책은 그 기원만큼이나 큰 차이가 있었으니, 커진 스마트폰으로 전자책을 읽다보면 오랜 시간 독서를 하기가 어렵고, 가끔씩 인터넷에 나오는 선정적인 기사들, 예를 들면 수지, 환상몸매 감동같은 기사에 빠져 몇 시간 동안 허우적대기 일쑤였다. 그 결과 10, 20대들은 다음과 같이 변했다.

 

1) 먼 거리를 보는 대신 늘 스마트폰만 보니 근시가 됐다.

2) 손가락 끝부분이 비대해졌다.

3) 긴 문장을 읽지 못하게 됨

4) 말하거나 듣는 능력이 떨어지고 오직 문자로만 대화가 가능해졌다.

5) 깊이 생각하는 대신 즉각적인 사고를 한다. 예를 들어 아침에 아이템을 3개 주고 저녁에 4개 주겠다고 하니 화를 내다가, 아침에 4개 저녁에 3개를 주겠다면 좋아했다.

 


이런 20대를 보수언론에선 스마트폰의 S를 따서 ‘S세대라 부르며 찬양했다. C일보의 사설이다.


가슴에 S를 붙이고 지구를 구했던 슈퍼맨처럼, S세대들은 건전한 세력의 지지자를 자청함으로써 종북. 좌파세력에 의해 피폐된 나라를 다시 세우는 데 있어서 슈퍼맨과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20204, 총선 직후 사설).”

 

스마트폰 중독은 비단 20대에만 국한된 현상은 아니었기에, 30대나 40대는 우리도 20대만큼 스마트폰을 쓴다며 자신들에게도 거기 걸맞은 세대명을 붙여줄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그들은 스스로를 배트맨에서 비롯된 B세대로 불러달라고 했다).

 

과거 책에 빠져 살던 사람들 중 여기에 저항하는 세력이 만들어진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종이책을 지키는 사람들의 모임', 종사모는 사람들에게 종이책 읽는 법을 교육했고, 말하기와 듣기를 가르쳤다. 거기에 더해 종사모는 불에 타지 않은 책들을 모아 젊은이들을 상대로 강독회를 가졌다. 심지어 자신들이 책을 만들어 펴내기도 했다. 책을 가지고 다니다 걸리면 재판 없이 징역 5년이, 종이책을 만드는 행위는 무기징역이 선고되는 현실에서 이들의 행위는 거의 목숨을 건 일이었다. 그들은 신분을 숨기기 위해 서로를 인터넷 아이디로만 불렀다. 정부는 이들을 북에서 보낸 간첩이라고 선전했고, 신고하면 거액의 포상금을 주는 등 종사모 박멸을 위해 애썼다. 수많은 종사모 회원들이 감옥에 갇혔다. 조직의 존폐가 걱정되는 찰나에 등장한 자가 바로 아이디 네로였다. 관상가 오라메디에 의해 인류를 구원할 구세주로 뽑힌 네로는 군과 경찰의 추적을 따돌리며 불에 타지 않은 종이책들을 구해옴으로써 종사모 회원들의 기대를 충족시켰다. 하지만 네로는 외모와는 어울리지 않게 여자를 좋아해 끊임없이 문제를 일으켰는데, 원로 종사모 회원은 네로를 가리켜 이렇게 말했다.


저 놈은 여자 때문에 망할 거야!”

 

책을 구해 오던 네로는 이상한 느낌에 뒤를 돌아봤다. “아니, 이럴 수가!”


경찰이 한 명도 아니고 열명 가량이 쫓고 있었고, 그 뒤에는 오토바이를 탄 경찰도 여럿 보였다. 네로는 쏜살같이 달리며 휴대폰 폴더를 열었다. 신호음이 두 번 들린 뒤 낯익은 여인의 음성이 나왔다.

 

? 도망이라도 치시게? 나한테선 도망칠 수 있었지만, 아마 거기선 못빠져나올 거야.”

, 너는 아이디 삼위일체?”

 

휴대폰을 쥔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네로의 예전 애인이었던 아이디 삼위일체는 네로가 자신을 버리고 아이디 '해수부윤진숙'에게 빠진 것에 격분, 네로를 구해주지 않기로 결심한 것이었다. 정신없이 맨홀뚜껑을 찾던 네로는 결국 경찰에 붙잡혔고, 종사모는 그 뒤 와해됐다. 마지막까지 종사모 사무실을 지키던 원로는 이렇게 한탄했다.

거 봐. 내가 여자 때문에 망할 거라고 했잖아.”

 

종사모가 와해된 지 2년이 지난 2023, 세상은 더없이 평화로웠다. 생각 자체를 안 하게 된 사람들은 더 이상 이런저런 문제로 고민하지 않았다. 1인당 GDP5천불로 떨어지고 빈부격차는 날이 갈수록 심해졌지만, 아무도 이에 대해 항의하는 사람은 없었다. 말 그대로의 완벽한 평화, 자신이 만든 도구가 이런 결과를 가져왔다는 것을 스티브 잡스는 짐작이나 했을까. 그랬거나 말거나 거리를 지나는 사람들의 손에는 스마트폰이 들려 있었고, 스마트폰 게임을 하는 사람들의 표정은 언제나 밝았다.

 

 








(격)월간잉여 15호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