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여논단 2015.02.10 23:27

연애시장의 잉여, 공간의 박탈 (짐송)

  ‘연애라는 말의 사전적인 정의는 다음과 같다. ‘열렬히 사랑하는 두 사람의 관계’. 불과 얼마 전까지 이 두 사람남녀로 한정되어 있었는데 사전적 의미가 교정된 것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다. 물론 사회적으로는 여전히 그 두 사람이 남녀일 때에 한정하긴 한다. 어쨌든 이 연애는, 두 사람이 오늘부터 1을 약속함으로써 시작되는 관계로 유독 이러저러해야 한다는 룰이 많다. 다시 말하면 연애는 그 룰을 통해서 가능해진다. 합의된 룰이 없으면 연애는 성사되지 않는다. 특히 중요한 룰 중 하나는 서로에 대한 사랑을 증명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의무는 결국 소비일 수밖에 없다.


  너무 극단적이라고? ‘연애라는 관계가 시장의 영역에 포섭된 지는 이미 옛날옛적으로 새삼스러울 것 하나 없는 사실이다. 낭만성을 걷어내고 나면 남는 것은 특정 기념일에 주고받는 선물의 가격, 썸탈 때 누가 밥값을 내느냐의 치열한 눈치싸움, 커플을 겨냥한 각종 상품과 희한한 데이(Day)들의 맨얼굴이다. (내 사랑은 순수하다 이딴 소리 지껄이지 마라! 하고 분노한다면 그냥 읽지 말고 지나가실게여.)

 


나는 연애시장에서의 잉여. 20대의 연애 혹은 결혼 적령기 여성이지만 연애하지 않는다. 연애시장은 연애를 하지 않는 이들을 하자 있는 잉여로 낙인찍고 연애의 영역에 들어서고 싶어하는 불쌍한 성냥팔이처럼 묘사한다. 연애시장의 잉여는 연애를 하지 않음으로써 자연스럽게 어떤 공간으로부터 배제된다. 당장 떠오르는 것들만 꼽아 봐도 발렌타인데이의 명동 한복판, 4월의 여의도 공원, 크리스마스 시즌에 로맨틱 코미디를 상영하는 영화관, 커플 동반 모임넘쳐나네 찌밤. (남자분들은 팬시한 디저트 카페, 옷가게 등을 여자 없이 가기 힘든 공간으로 꼽기도 했다) 물론 그 공간에 연애시장의 잉여, 즉 솔로를 감지해서 걸러내는 레이저나 전기가 파박 통하는 철조망이 있는 건 아니다. 경찰이 달려와서 때려잡거나 스포트라이트가 쫙 떨어지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누구나 직감적으로 안다. 그 공간은 연애라는 관계를 기준으로 분할된다는 사실을. 그래서 연애시장의 잉여는 그 공간에 가는 것을 꺼리며 처음 연애를 시작하는 커플들의 데이트 코스는 그토록 뻔한 것이다. 가지 않으면 싸움의 원인이 되기도 할 만큼 특정 공간은 연애라는 관계의 필수이며 이외의 것을 배척한다.

 


어떤 공간이 추구하는 통일된 그림이 있다. 가령 크리스마스 이브의 호화로운 레스토랑을 상상해보자. 마주 앉은, 젊은, 그리고 터무니없는 가격이 매겨진 크리스마스 한정판 요리를 비싸다는 내색 하나 없이 주문하며 분위기에 심취할 손님이 필요하다. 그때 그 공간에 연애 시장의 잉여는 진입해서는 안 된다. 초대받지 않은 불청객은 그 통일된 그림을 망가뜨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일은 대부분 일어나지 않는다. 연애시장의 잉여는 그 공간은 완벽하게 연애 관계에 있는 이들을 위해 세팅되며, 자신의 욕망 여부와는 상관없이 금지된 곳이라는 사실을 잘 알기 때문이다. 코난이나 김전일을 열심히 안 읽은 추리 레벨 1이라도 예상할 수 있다. 무리하게 진입을 시도했다는 민망함 또는 동물원의 동물 보는 듯한 시선을 얻을 뿐이라는 걸.

 









비단 연애하지 않는 솔로뿐만 아니라, 연애 관계가 아닌 혹은 아닌 것처럼 보이는 두 사람의 공간 점유도 주목 받거/입방아에 오르내리기 일쑤이다. 나는 아직도, ‘유희열의 스케치북프로그램에서 손을 꼭 잡고 있던 두 남성을 향해 개그우먼이 터뜨리던 웃음을 기억한다. 연인들의 공간에서 연애 관계에 있다고 여겨지지 않는이들의 출현은 그런 식의 공격성과 배척에 노출된다. 이는 세상이 기대하는 정상적인연애 관계 외의 다른 연애 관계를 구성하고 있는 사람들이 특정 공간에 가는 것을 두려워하는 까닭이기도 하다.


 

특정 공간에 들어갈 자유를 박탈당하는 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사회적 약자가 겪는 설움이다. 버지니아 울프는 여성이기 때문에 대학 도서관에 들어갈 수 없는 현실에 분노했고, 몽고메리 시에서는 버스 안에서 흑인과 백인의 자리를 나누는 데 저항하는 운동이 벌어졌다. 소위 말하는 자유 민주주의 시대지만 권력은 도처에 훨씬 더 미세하고 촘촘한 형태로 거미줄처럼 얽혀 공간을 분할하고 행동과 생활을 제약한다. 법으로 금지하거나 무력을 행사하는 경비원 대신, ‘이질적인 존재를 바라보는 시선과 그로 인한 공포가 연애시장의 잉여를 가로막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연애시장의 잉여 상태를 탈출하고자 필사적이 되는 것도 이러한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

 


그렇다고 해서 이 글이 솔로도 크리스마스의 레스토랑에 가고 싶어 뀨잉은 아니다 네이버(naver). 연애인구 여러분 여러분이 거기 있는 걸 뭐라고 하는 게 아닙니다. 오해하지 마세여. 문제는 연애 여부를 기점으로 공간을 분할하고 특정 정체성에게서 그 공간을 점유할 자유를 박탈하는 권력이다. 특정한 포즈만을 허용하고 권유하는 시장과 공간을 뛰어넘는 궁극적인 방법은, 지극히 비현실적으로 보일 수 있겠지만, ‘그것을 욕망하지 않음이다. 연애시장의 잉여뿐만 아니라 (그 공간이 환영하는) 연애인구가 함께 이 욕망하지 않기에 참여할 때 권력은 그 힘을 잃는다. 박탈도 독점도 사라지는 완벽한 해체. 연애시장의 잉여는 공간을 박탈 당하지 않고, 연애 인구는 특정 공간에 포섭되어야 한다는 당위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 자신의 삶, 자신의 사랑, 자신의 연애가 뻔한 공간에서 뻔한 레퍼토리로 상영되도록 내버려두는 건 좀, 아니 아주 많이 시시하잖아여?

 










 

*짐송 @jitsong

전방위. 무정형. 비연애인구 전용잡지 계간홀로발행합니다.

초록창에 계간홀로검색해보시라능. 계깐홀로로 오타 주의.

뭐든지 재미있어야 눈길이 가지만 재미의 기준은 내 맘. 갓 지은 쌀밥 좋아해여.

 






(격)월간잉여 16호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