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여논단 2015.09.30 17:23

연결된 것을 상상하는 능력 (이재우)

  “그거 얼마주고 샀어? , 인터넷 어디 가서 사면 훨씬 싸게 살 수 있는데 어휴

 

흔히 있는 이야기다. 물건 살 때 가격 안보고 사는 사람 없다. 사고 싶은 물건이 생겼을 때 통장에 잔고가 얼만지, 이번 달에 내가 더 써도 되는 돈이 얼만지 생각 안 해보는 사람도 없다. 호갱이 되지 않으려고 최대한 노력한다. 우리는 아쉽게도 만수르가 아니다. 잘 살려고 아끼는 게 아니라 그러지 않을 수 없어서 아낀다. 같은 효용을 가진 물건이라면 최대한 싼 것을 사는 것, 이른바 가성비가 좋은 물건을 사는 것, 그것을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그것이 우리가 생각해야 할 전부일까?

 

페이스북에서 그런 글을 본적이 있다. “아래 기업들은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학살을 지원하는 기업들이니, 해당 회사의 물건/서비스를 구입하지 맙시다그리고 첨부된 그림에는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기업의 로고가 잔뜩 있었다. 그런 곳에서 돈을 주고 무엇인가 사면 그 돈이 이스라엘로 가서 팔레스타인 사람을 죽이는 데 쓰인다는 것이다. 그 글과 그림이 퍼져나가는 것을 매우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실제로 해당기업의 물건을 사주든 사주지 않든, 불매운동의 원리나 힘에 대해서 생각해볼 기회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참신한 아이디어를 아무런 대가없이 빼앗아 가고, 자라나는 중소기업의 싹을 자르고, 하청업체를 핍박하고, 자기회사의 노동자마저 괴롭히는 비윤리적인 기업이 있다. 그 기업의 물건과 서비스를 구입하려 돈을 지불하는 것은 그 기업의 그런 행동들 모두 옹호하는 것을 뜻한다. 매년 대학교에서 연례행사처럼 치러지는 등록금투쟁이 매번 실패하는 이유는, 결국은 등록금을 내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기업에게 의사표현을 하는 방법은 돈을 지불하거나 하지 않거나 둘뿐인 것 같다.

 

내가 쓰는 돈이 내 손을 떠나서 어디로 가서 어떻게 쓰이는지 생각하는 것은 아주 중요하다. 돈은 힘이다. 돈을 누구에게 주는 것은 그 사람에게 힘을 실어주는 것을 뜻한다. 저녁을 뭘 먹을 건지, 어디서 장을 볼 건지 어느 영화관에서 어떤 영화를 볼 건지 정하는 것은 어느 후보, 어느 정당을 지지할 건지 결정하는 것만큼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돈의 흐름만 눈에 안 보이는 것은 아니다. 배달의 민족 광고를 보면, 류승룡이 당당하게 11닭을 외친다. 하지만 생각해보자. 닭은 음식의 이름이 아니다. 깃털과 벼슬이 있고 두발로 걸어 다니는 동물을 일컫는 말이다. 한 접시 닭튀김을 얻기 위해서 세상 어딘가의 닭 한 마리는 목숨을 잃어야 한다. 어디선가 어린 밍크의 사진을 본 적이 있다. 똘망똘망한 눈을 가진 조그만 동물은 우리가 사랑해마지않는 새끼 고양이만큼이나 귀여웠다. 그 밍크가 70마리가 죽으면 한 벌의 코트가 된다고 한다. 눈앞의 고소한 냄새를 솔솔 풍기는 치킨과 조명아래 놓인 따뜻하고 예뻐 보이는 코트는 다른 생각을 못하게 한다. 그저 지금 당장 보이는 것에만 집중하게 하고 그것들이 어디선가 뚝 떨어진 것처럼 느끼게 만든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사람사이에도 비슷한 일이 일어난다. 미국의 스탠드업 코미디언 Louis C. K. 는 아이들에게 핸드폰을 사주지 말자고 말한다. 텍스트로 말을 던지면 그것을 받는 상대가 어떤 표정을 짓는지 알 수 없다. 내가 친 장난에 상대도 재밌어하는지 기분 나빠하는 지 알 수가 없다. 어릴 때부터 그런 식의 의사소통에 익숙해진다면 상대의 기분을 짐작하는 능력을 잃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화면 뒤에 숨어서 낄낄거리는 불쌍한 악플러도 마찬가지다. 한 번도 무대의 주인공이어 본적 없는 그들은 주목을 받는 입장에 대해서 상상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나만 그런 것도 아냐” “내가 처음으로 한 것도 아냐이런 논리들로 희박해진 책임감을 가진 악플러들은 깊이 생각하지 않고 순간적으로 떠오르는 감정에만 충실해 아무 말이나 뱉는다. 그들로서는 악플을 잔뜩 껴안은 사람의 하루가 어떻게 흘러갈지는 상상할 수가 없는 것이다.

 

가게에 가면 손님은 자고로 왕이거늘하는 마인드로 직원을 자신이 할 수 있는 만큼 최대한 부려먹는 사람이 있다. 마치 자신이 가게를 나가면 그 사람들도 없어진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 직원은 조금 상한 기분과 조금 상한 자존심으로 다음 손님을 맞아야하고 그런 것들이 자꾸 누적되어 어느 순간 폭발해 버릴지도 모르고, 내 인생이 왜 이런 걸까 하고 생각하게 될지도 모른다. “손님은 서비스를 누리라고 있는 사람이니, 직원이 어떻게 느끼든 내 알바 아니지라고 생각할 수 있는 걸까. 나도 내가 아닌 다른 모든 사람에게 타인이다. 타인의 고통을 무시하면 나도 곧 무시당한다.

 

정치에 관심이 없다고 당당하게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더러운 것으로 부터 멀어짐으로써 자신을 깨끗하게 보이게 하려는 걸까. 그렇다면 정치인들은 더러워질 걸 알고도 왜 그 싸움에 뛰어든 것일까. 성공하면 막대한 영향력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 큰 힘을 아무나 가지게 해서는 안 된다. 곧 나와 내 이웃에게 닿아서 고통을 줄 수도 있는 힘이다. 정치에 관심이 없다는 말은 나와 내 이웃의 고통에 관심 없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마트에 가면 생선도 고기도 살 수 있고, 인터넷으로 주문하면 택배로 안 오는 게 없다. 스마트폰으로 접하지 못하는 소식도 없다. 행동반경은 점점 좁아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온 세상과 이어져 있다고 느낀다. 그래서 더 무섭다. 내 눈에 안 보이는 세상의 실제모습이 어떤지 모르면서도 알고 있다고 멋대로 착각하게 되는 것이다. 떳떳하지 못한 것은 언급하지도 않고 예쁘게만 포장하는 광고, 웃기기만 하고 화나게만 해서 감정만 들쑤셔 놓는 타임라인, 이러면 깨시민이래야 힙스터라는 말,


곳곳에 뿌려진 떡밥, 생각을 마비시키는 것들의 방해에 굴하지 말고 우리와 연결된 것들을 생각해보는 기회를 가져야 한자. 당장 불매운동을 시작하고 채식주의자가 되고 인권운동에 참여하고 자선단체에 기부하라는 것이 아니다. 그저 눈에 보이지 않는 우리와 연결된 것들을 상상하는 능력을 잃지 말자는 말이다.

 

   

 


이재우

싱어송라이터? 아니면 백수 아니면 뭐, 취업준비생 거지.

inmaye@gmail.com





(격)월간잉여 17호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