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2012.03.19 00:10

[연재] 북한의 잉여: 김정남 편 (글_쿠마)


올해 마흔 둘의 남자가 있다. 정치권력과 경제력을 두루 갖춘 집안에서 태어났고, 어린 시절에는 해마다 백만 달러에 달하는 생일 선물을 받았다. 학창시절을 러시아 모스크바와 스위스 제네바에서 보냈다. 한국어, 영어, 중국어, 러시아어를 구사하고, 일본어도 조금 할 줄 안다.

어마어마한 스펙을 가진 인물이다. 그런데 잉여다. 지난 해 12월에 사망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장남, 김정남(71년생)이 바로 그다. 한 때 김정일을 잇는 후계자로 거론된 적도 있지만, 지금은 중국에서 보호와 감시 하에 살고 있다. 북한 정치 권력과 완전히 멀어진 것이다. 그는 왜 이렇게 되었을까?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대외적으로 가장 알려진 사건은 2001년에 일어났다. 그는 도미니카 공화국 위조 여권을 가지고 일본에 밀입국을 시도한다. 사실 일본에 가는 건 처음이 아니었다. 그 이전에도 일본에 다섯 번 방문해 신주쿠의 고깃집, 아카사카의 고급클럽, 신바시역 근처 오뎅집 등을 다녔다. 일본의 문화, 음식 등을 상당히 좋아했다고 한다. 그런데 2001년에 일본 출입국 사무소에서 위조 여권이 들통나면서, 일본 방문에 제동이 걸렸다. 당시 방일 목적은 가족과 함께 디즈니랜드에 가는 것이었다. 이 사실이 일본 언론을 비롯해 전세계 언론에 퍼지자, 그는 ‘북한 밖에서 호의호식하는 독재자의 아들’로 이미지가 굳어져버리고 말았다. 이러한 이미지는 북한 인민에게 신뢰를 줄 수 없고, 군부의 충성을 이끌어내는 데도 방해가 된다.

또 다른 설은 김정남이 최근에 일본에서 발간된 ‘아버지 김정일과 나’라는 책을 통해 직접 밝혔다. 스위스에서 돌아온 김정남은 아버지 김정일에게 북한도 개혁과 개방이 필요하다는 직언을 했다. 그러나, 현재 북한에서 권력을 쥐고 있는 군부 엘리트층은 개혁개방을 바라지 않는다. 개혁개방이 실현되면 경제력을 갖춘 세력이 새롭게 등장할 것이고, 군부 세력은 한 발 뒤로 물러설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군부세력이 김정남의 개혁개방 직언을 위기로 받아들이면서, 김정남은 김정일로부터 멀어지기 시작했다.

역설이다. 한국에서는 잉여가 되지 않기 위해 스펙을 쌓는다. 그런데 북한에서는 아무리 좋은 스펙을 쌓아도 권력층과 사상이 맞닿지 않으면 잉여가 되고 만다. 이러한 북한의 ‘엘리트 잉여’는 김정남뿐만이 아니다.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그들 중에는 북한 내에서 숙청을 당한 사람도 있고, 한국으로 넘어와 정착한 사람도 있다. 그리고 김정남처럼 제3국에서 생활하는 사람도 있다.


















해맑은 김정남 (그림 잉집장)




작가 최인훈은 1960년에 『광장』을 출간했다. 이 책의 주인공 이명준은, 남한도 북한도 아닌 제3국을 선택한다. 그러나 결국, 자신은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음을 깨닫고 자살을 한다. 남과 북이 갈라진 것 때문에 한 개인이 얼마나 큰 고통을 당하는지 잘 보여준다. 그런데 작가가 상상한 허구적 인물이 21세기인 지금까지 북한에서 계속 태어나고 있다.  앞으로 『월간잉여』를 통해, 그 사람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기대해 주시라!


<다음 호 예고>
다음 호에는 이한영 씨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이한영 씨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처조카로, 김정남과는 사촌관계가 됩니다. 그는 1982년 한국으로 귀순해서 대학도 다니고, 뛰어난 러시아어 실력으로 KBS방송국 PD가 되어 88년 서울올림픽에서 활약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1996년에 ‘김정일 로열패밀리’라는 책을 써서 김정일을 비롯한 북한 최상류층의 호화로운 삶을 고발했습니다. 그러나 이 책 내용이 북한에게 너무 큰 자극이었는지, 이듬해인 1997년 2월, 이한영 씨는 북한 공작원 2명에 의해 자택에서 피살당하고 맙니다.
최근, 김정남과 일본 도쿄신문 고미요지 기자가 주고 받은 150여 통의 메일을 공개한 책, ‘아버지, 김정일과 나’가 출판되었습니다. 이 책에는 직접적으로 북한을 비판하는 내용은 없습니다. 그러나 최근 일본에서 발간된 ‘문예춘추 3월호’에서 고미요지 기자는 책에 싣지 않은 김정남의 메일 9통을 추가로 공개했습니다. 그 메일 중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도 있습니다. 2011년 11월 4일, 김정남이 고미요지 기자에게 보낸 메일 내용입니다.
유감이지만 그 어린 아이(김정은)의 표정에는 북한과 같은 복잡한 국가의 후계자가 된 인간의 사명감이나 신중함, 이후의 국가 비전을 고민하는 표정 등을 아무 것도 읽을 수 없습니다. 
최근, 김정남이 돈이 없어서 러시아 호텔에서 쫓겨났다는 기사가 나왔습니다. 비록 그가 직접 쓴 책은 아니지만, 그의 생각이 책의 형태로 출판되어 전세계의 주목을 받자, 김정은을 비롯한 북한 정권이 그에 대한 지원을 끊었다는 이야기가 돌고 있습니다. 어쩌면 이한영처럼 김정남도 피살될 수 있다는 말을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한영 씨에 대해 알아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쿠마 올림-





※ 월간잉여 3월호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