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2012.05.01 20:58

Raise of the peninsula of Ingyeo Take1(글 만렙잉여)


우리 집에는 잉여가 둘이다. 큰 수컷 잉여(본인)는 벌써 서른하나 ‘만렙잉여’가 됐고, 작은 암컷 잉여는 스물넷이라는 나이에 이제 막 잉여 사회에 로그인한 쌩 초보이다. 만렙잉여는 요즘 너무나 힘들다. 한 지붕아래 잉여가 둘이라 그런지, 평화롭고 조용함을 추구하는 잉여 인생에 쌩 초보가 너무나 많은 질문을 하는 것이다.  초보 잉여가 만렙잉여에게 물었다.
왜 우리 사회는 잉여를 만들어 내냐고.

정부, 기업, 학교, 가정, 게임, 아니면 개인? 위와 같이 너무나도 많은 문제점과 의문들이 만렙잉여의 머릿속에 들어왔고, 어느 하나의 이유라고 딱 집어서 초보 잉여에게 이야기 할 수 없었다. 오히려 하나가 아닌 복합적인 문제들, 각각의 이유들이 서로 내가 잉여를 만들었노라고 주장하며 만렙 잉여를 압박하기 시작했다.

초보잉여는 대답을 못하며 장고에 들어간 만렙잉여를 바라보며, 므흣한 표정으로 이렇게 생각하는 듯 하였다. “역시 니까짓 게ㅋㅋㅋㅋ” 이때 만렙잉여의 역습이 시작되었다.
“그렇게 큰 소리치던 넌 왜 잉여가 되었지?“

지금으로부터 10여 년 전 만렙잉여의 꿈 많던 고3 시절, 초보잉여는 공부 잘하던 초딩 이였다.
하루 두 끼 먹기도 벅찼던 IMF시절을 지나, 분기마다 로또가 터지는 어머니의 잔고를 바라보며, 고3 오빠는 고의적인 수능 쪽박과 함께 캐나다로 유학을 빙자한 유흥을 즐기기 위해 떠났고, 초보잉여의 외국에 동경은 이때부터 시작되었다.


초보잉여의 첫 번째 선택은 호주였다.
남반구의 끝자락, 끝없는 해변과 그레이트 베리어가 있는 그곳으로 초보 잉여는 날아갔다.  두어 달간의 짧은 연수 후에 두 번째로 선택한 곳은 만렙이 있는 캐나다였다. 하지만 이곳 역시 방학 기간의 짧은 연수로 끝나며, 초보에게 남은 것은 엄청난 기념품뿐 이였다.

초보잉여의 마지막 선택은 미국이였다.
미국 그 얼마나 아름다운 곳인가! 북아메리카에 나라를 세우기 위해 당시 원주민 이였던 아메리카 인디언 오천만 이상의 학살하고, 지금은 세상에 광우병을 나누어주는 젖과 꿀이 흐르는 그곳.  그렇게 미국의 아름다움에 흠뻑 빠진 초보잉여는 일년의 시간을 말 타고 햄버거를 사먹다가 왔다. 초보잉여가 찍어 온 사진에 온통 말 타고 먹는 것뿐이 없어서 그렇게 판단한 건 아니다.

그렇게 초보잉여는 다양한 세상을 경험하고, 메이크업 아티스트란 꿈을 가지게 되었다. 초보잉여는 그 꿈을 위해 고등학교 생활과 전문학원 수업을 병행하였으며, 꿈꾸던 대학을 진학하고, 2년 동안의 노력 끝에 졸업과 동시에 취업을 하였다.


하지만, 현실은 초보잉여가 꿈꿔오던 그런 화려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현실의 메이크업 아티스트란, 커다란 메이크업 박스를 가지고 일거리가 있는 곳으로 단잠을 설치고 새벽이슬을 맞으며 떠 돌아야 하는 88만원 세대 최고의 업종 이였다. 힘든 시간 속에서 초보 잉여의 꿈은 몇 년간 경력을 쌓고, 스물 다섯 이후 ‘능력자 어머니’가 차려줄 자그마한 샵의 주인이 되는 거였다. 하지만 능력자였던 어머니가 신용불량자가 되며 그 꿈은 사라졌고, 초보 잉여에게 남은 건 매달 적자인 생활비와 천만 원이 넘는 학자금 대출이었다.

이렇듯 현실은 이 꿈 많던 젊은 청춘, 아니 아직 피지도 못한 청춘을 수용 하지 못하고 있다. 매년 해처리에서 저글링 나오듯 쏟아지는 졸업생들과 아직 사회적 기반을 다지지 못한 사회2,3년 차 들간의 치열한 생존 싸움. 그리고 이들을 이용해 88만원 세대를 만들어 낸 기득권의 눈치 싸움에서 누군가는 방관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 방관이 기득권의 손을 들어주는 것을 알기에, 엄마가 항상 공부 열심히 해서 좋은 회사에 취직하라고 입버릇처럼 하신 말씀이 귓가에 맴돈다.


※ 월간잉여 3월호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