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2012.06.21 14:37

북한의 잉여: 광명성 3호(글_쿠마)

북한 미사일이 만들어준 잉여의 시간
전라북도 부안군에 격포항이라는 작은 항구가 있다. 여객선으로 채 한 시간이 걸리지 않는 위도까지의 연근해에서 쭈꾸미가 많이 잡히고, 위도 밖으로 나가면 광어가 많이 잡히는 한가로운 항구다. 여기에 지난 4월 12일을 전후해서 여러 방송사가 모이기 시작했다. 북한이 4월 12일에서 16일 사이에 ‘광명성3호’를 발사하는데, 그 추진체가 격포항에서 140km 떨어진 공해상에 낙하할 것이라고 예고했기 때문이다. 7개 방송사가 격포항을 찾았다. 국내방송사 3개와 외국방송사 4개였는데, 생중계를 준비한 방송사는 내가 속한 방송사를 포함해 3개였다. 우리는 11일 오후에 격포항에 도착해서 주변 취재를 하고, 모텔로 들어가 12일 아침을 기다렸다.

12일 아침이 밝았다.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날씨였다. 카시트를 뒤로 젖히고 멍하니 누워 미사일 발사를 기다렸다. 햇살에 반짝이는 바다, 살랑살랑 불어오는 봄바람, 한가롭게 날아가는 갈매기, 귀에 꽂힌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는 일본 모던락…이 모든 것들이 조합돼 완벽한 잉여의 시간을 만들었다. 북한이 미사일을 쏘기로 한 오전 7시부터 12시 사이에 이처럼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을지 미처 알지 못했다. 독서와 낮잠이 교차하던 사이에 어느새 정오가 되었고, '상황해제'라는 지시가 내려왔다. 그 순간, 샐러리맨에게는 꿈만 같은 평일 오후의 자유가 나를 찾아왔다. 낚시로 숭어를 잡고, 새만금 방조제 해안드라이브를 하면서 아이스크림도 먹으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신선한 조개구이와 여유로운 반신욕은 보너스였다.  

그 다음날도 잉여의 시간에 대한 부푼 꿈으로 무사히 오전이 지나가기를 바랐다. 그러나 잉여의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7시 38분 55초에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했기 때문이다. 부랴부랴 격포항 주민들을 인터뷰 하고, 미사일 발사 후 진행 과정을 계속 지켜봤다. 결국 12시에 중계를 한 번 하고, 철수 명령과 함께 서울로 올라갔다. 그렇게 꿈만 같던 잉여의 시간은 추억 속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북한의 잉여 미사일 발사의 의미
북한과 미국은 지난 2월 29일에 한 가지 합의를 했다. 북한이 우라늄 농축을 멈추고, IAEA의 사찰을 받아들이는 등의 대가로 미국이 24만 톤 분의 영양지원을 하기로 한 것이다. 그러나 이로부터 17일 뒤인 3월 16일, 북한은 인공위성 '광명성 3호'를 우주 공간에 띄우기 위해 미사일 발사를 감행한다고 발표했다. 미국은 이에 격노했고, 북한의 미사일 발사를 막기 위해 국제 사회와 연대했다. 50여 명의 세계 정상이 모인 서울 핵안보정상회의에서도, 주요 관심은 정상들이 북한의 미사일 발사에 대해 어떤 입장을 취할지에 대해서였다. UN을 비롯한 거의 모든 국가가 북한의 미사일 발사에 대해 우려를 표명했지만, 북한은 결국 미사일을 발사했다.




▲이 사진은 광명성 3호와 상관 없는 영화 <아폴로 13>관련 사진이다.

사진 없이 글만 있으면 심심할까봐 배려한 것에 불과하다.-잉집장 주-




북한이 미사일을 쏜 이유에 대해 전문가들의 견해를 종합하면 다음과 같다. 우선, 김정일이 죽기 전에 미사일 발사를 계획했다는 것이다. 유훈 정치를 표방하는 김정은으로서는 아버지가 꾸며놓은 미사일 발사 계획을 되돌릴 수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대미 협상용으로도 필요했다. 지난 2006년과 2009년, 북한은 미사일 발사 후에 핵실험을 감행했다. 이러한 전례를 통해, 이번 미사일 발사 후에도 핵실험을 할 수 있다는 것을 과시함으로써, 미국이 새로운 협상에 응해올 것을 노렸을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새로운 김정은 체제 출범을 축하하기 위해 미사일 발사가 필요했다. 미사일 발사를 전후한 당대표자회의와 최고인민회의를 통해, 김정은은 당 제1비서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라는 북한 최고직책을 받았다. 미사일 발사를 체제 출범의 가장 뛰어난 선전 수단으로 생각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종합적인 이유로 북한은 미사일을 발사했지만 실패하고 말았다. 최초로 외신기자들까지 대거 초청했는데 실패했으니 체면이 말이 아니다. 북한은 최초로 실패를 시인(광명성 3호가 우주궤도에 진입하지 못했다는 완곡한 표현이었으나)했고, 우주개발 5개년 계획을 통해 앞으로도 미사일을 쏘아 올리겠다고 했다. 그리고 UN안보리가 의장성명을 통해 북한의 미사일 발사를 규탄하자, 이를 배격한다고 발표했다. 게다가 어버이연합 등이 미사일 발사 당일에 김정은을 비난하는 시위를 했는데, 이명박 정부가 이를 방치했다는 이유로 서울을 날려보내는 특별행동조치를 취할 수 있다고 발표했다. 남북관계를 비롯해 북한과 국제 사회의 관계는 점점 악화되고 있다.

통일부 자료에 따르면, 북한이 미사일을 쏘지 않았다면 옥수수 250만 톤을 살 수 있었다고 한다. 매년 40만 톤 정도의 식량이 부족한 북한에게는 약 6년 간의 식량 부족분에 해당한다. 즉, 북한이 미사일을 쏘지 않았다면 국제사회의 도움 없이도 최소 6년 간 굶주림에서 해방될 수 있었다는 얘기다. 앞으로 북한이 국제 사회에 식량을 요청할 때, 미사일 발사는 불편한 진실로 남을 것이다. 잉여 식량을 저버리고 잉여 미사일을 쏘아 올린 북한은 글로벌 잉여에 한 발짝 더 다가간 셈이다. 






※ 월간잉여 5월호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