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스포츠 2013.05.06 18:28

어쩌면 역사는 자기계발서일지도 모른다 (날아)

[역사, 위험한 거울](2001, 푸른역사)을 읽고

 

11월 중순 무한정판(unlimited edition)에서 잉집장을 만났다. 20131월호에 예언인지 예측인지를 주제로 삼는다고 한다. 나는 무슨 글을 써야 할까 고민만 근 한 달 동안 한 것 같다. 잘 쓰지도 못하는 문장으로, 그것도 [월간 잉여]라는 열정만큼은 스웩(Swag)종합 시사 문화 교양지에다 어떤 내용의 글을 써서 보내야 할지 나 스스로도 궁금해하다보니 12월 중순이 되었다. 전공 분야도 아니면서 통계가 만들어 낸 허상에 대해 써볼까요?”라고 떠든 근자감은 무언지, 정말 이 쓸모없는 자신감의 근원이나 먼저 찾아야 할 텐데 말이다. 여하튼 무한정판에서 만난 해맑은 잉집장 얼굴이 생각나서 뭔가 쓰긴 써본다.

 


어쩌다보니 글의 주제가 역사학이 되었다.

얼핏 보면 무슨 상관이야라고 말할 수 있다. ‘종합 시사 문화 교양지월간 잉여에서 타이틀로 내건 예언이라는 게 역사학과 무슨 관련이 있을지 생각해볼까? 표준국어대사전은 예언에 대해 앞으로 다가올 일을 미리 알거나 짐작하여 하는 말이라고 밝힌다. 종교적인 의미에서 신의 계시를 전달하기 위한 예언(prophecy)이 아니라, ‘질문과 대답을 통해 사실을 논리적으로 추론해낸다는 의미로 보면 역사는 예언(prediction)과 무슨 관계가 있을지 모른다. 다시 말하면, “과거를 알아야 미래가 보인다라는 흔한 말이 맞는지, 인문과학이라는 역사학은 그런 역할을 할 수 있는지 확인을 해보자는 셈이다. 비록, [사회학 사전] (2000, 사회문화연구소)에서 사회적 사건들에 대한 성공적인 예측(prediction)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경험적인 지적을 모른 체하고 말이다.


예언 안에서 역사학은 어떤과정을 수행한다고 볼 수 있다. 어떤과정은 앞으로 다가올 일미리 알거나 짐작하기 위해 탐색하는 과정일 것이다. 하지만 앞서 [사회학 사전]에서 언급한 것처럼 성공적인 예측이 지금까지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 자연과학과 같이 인문과학이 예측(prediction)’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필요한 보편 법칙을 확립해야 한다. 예를 들어, 내일 아침에도 해가 뜬다는 건 하나의 사실로써 예측을 넘어 법칙으로 알고 있다. 정작, 인간이 만든 사회에 이러한 법칙이 있을까? 1분 뒤, 어떤 일을 하고 있을 지도 정확히 모르는 것을. 사진을 찍던 앙리 까르띠에 브레송의 가장 유명한 전시 제목처럼 우리는 찰나의 순간만을 살고 있는지 모른다. 과거도, 현재도, 미래도, 아닌 찰나의 순간들을 이어가며 끝없이 살아가고 있는지도.


미래에 대한 예언을 할 수 없는 역사학은 사실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과거에 대한 참된 이야기를 서술하는데 기여하는 학문이다. 그렇지만 실용성과 효율성을 논하는 자본주의의 정신과 돈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는 사람들은 역사학과 역사, 바로 지금 살펴봐야 할 과거에 존재했던 이야기들을 뒷전에 밀어두고 있다. 세상에는 내 눈을 바라보면 행복해지고, 건강해지고, 웃을 수 있고, 시험에 합격하고, 살도 빠지고, 키도 커지고, 더 예뻐지고, 잘 생겨지게된다는 류의 공허한 예언만이 사회를 따스하게 감싸 안는다.

 


김현식의 [역사, 위험한 거울] (2001, 푸른역사)를 만났다

역사학은 미래를 예언하는 일과 상관이 없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럼 대체 이 역사학이라 하는 건 무얼 하고자 함인지 그 실험들을 살펴보고자 한다. 우연히 알라딘 헌책방 서가 구석에서 내 책꽂이로 이사 온 책 한 권 때문이다. (책 디자인이 새로워서 데려온) 김현식이라는 사람이 쓴 [역사, 위험한 거울](2001, 푸른역사)은 그 구성도 새롭다, 아니, 한 서평자의 말처럼 기괴할정도다(이상의 작품만큼은 아니니 걱정하지 말기를). 차례를 펼치면 프롤로그’, ‘갈등’, ‘화두’, ‘역사 (1, 2, 3, 4, 5)’, ‘해석 (1, 2)’, ‘실천’, ‘글 끝에 부치는 말 몇 가락이라 쓰여 있다. 구성만 놓고 보면, 이건 소설이다. “갈등이 생겨나고 그 안에서 스스로 화두를 집어든다. , 답은 역사였구나, 우리는 서로를 이렇게 해석했던 거야. 어떻게든 잘 할께라 다시 쓸 수 있는 전형적인 액자식 구성의 달달씁쓸한 연애 소설의 기승전결을 차례에서 드러내고 있다. 정체를 모를 책이다. 직원의 실수로 역사 코너에 꽂힌 소설은 아닌지 의아할 정도로 말이다.




역사, 위험한 거울 (2001, 푸른역사)




우선 글 끝에 부치는 말 몇 가락을 펴면 이 책은 역사와 문학의 경계, 진실과 허구의 경계, 이론과 실천의 경계, 그리고 사랑과 집착의 경계들의 우울한 틈새를, 필연적이라 여겨지는 이 간극을 드러내고 건드리는 경계를 시험하는 사고 실험의 결실이라 말한다. 저자가 끄집어 낸 경계들을 살펴보자.

 


 이야기 하나

배경은 2001년이다. 주인공은 대학에서 강의를 하는 D와 강의를 수강하는 A. 종강일, AD에게 다가가고, 둘은 사랑을 나누는 사이가 된다. DA와의 절대적인 사랑을 꿈꾸며, 서로가 서로의 유일한 여자이며 유일한 남자인 그런 연인 사이로 나아간다. 대학원생이 된 A가 어느 날, D와의 약속을 취소하고, 영국에서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한 선배를 축하하는 자리에 가게 된다. D는 며칠간 A의 연락을 피하고, 그리스 신화에서 메데아를 배신한 영웅인 이아손을 떠올리며 가벼운 배신과 그에 대한 무거운 증오, 홀로 남겨진 증오, 홀로 남겨진 자의 비통한 절망만이 남았다 생각한다. “열정에 가득 찬 사랑이란 그 얼마나 사악한 것이더냐!”. 화해를 청하는 D에게 A사랑을 줄이라는 게 아니에요. 저에 대한 당신의 집착을 조금 덜어내라는 거죠.”라 말한다. D는 집착이란 열정의 찌꺼기이고, 파괴적이고 가학적인 매달림이라 생각하며 그들은 혼란의 끝에 자리 한다. 이 이야기에는 사랑과 집착의 경계를 오고간다. D는 절대적인 사랑과 순종을 바라고, A는 이 상황 안에서 부조리함을 느낀다. AD와의 마지막 통화에서 아벨라르와 엘로이즈라는 11세기의 한 연인과 자신들의 차이를 읽어내길 바란다며 전화를 끊는다.

 


 이야기 둘

D는 아벨라르와 엘로이즈의 이야기를 자신이 하는 역사 이론 강의의 주논제로 삼는다. 명성과 업적을 쌓은 학자인 아벨라르와 16살 엘리오즈의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 배경은 11세기다. 엘로이즈의 삼촌인 풀베르가 아벨라르에게 엘로이즈의 교육을 맡기고, 체벌까지도 허락한다. 아벨라르와 엘리오즈는 사랑의 열락을 맛본다. 이를 알게 된 풀베르가 둘을 갈라놓지만, 엘로이즈가 임신을 하게 된다. 아벨라르는 풀베르에게 사죄를 청하며, 엘리오즈와의 결혼을 약속한다. 이 때, 엘리오즈는 결혼이라는 굴레를 씌워 억지로 묶어두기 보다는 그저 사랑으로 연인으로 살자고 말한다. 아벨라르는 결혼을 감행하지만, 둘의 결혼은 풀베르만 아는 비밀결혼이었다. 풀베르는 아벨라르를 계속 의심하고, 결국, 비밀결혼을 다른 사람들에게 폭로한다. 아벨라르는 엘로이즈를 수도원으로 보내냈다. 풀베르는 가장 잔혹하고도 수치스러운 복수로써 아벨라르의 성기를 잘라낸다. 수치와 모멸감 속에서 아벨라르는 수도원으로 숨어들고, 엘로이즈는 비탄과 의무감 속에서 수녀원 생활을 계속했다. 몇 번의 편지를 주고 받기는 했지만, 십 몇 년 후, 엘로이즈는 죽은 아벨라르를 만나고, 자신이 원장으로 있는 수도원에 묻었다. 그로부터 이십여년 후, 엘로이즈는 그토록 갈망했던 아벨라르의 옆에 누웠다.

 


작가는 이렇게 두 가지 이야기를 내놓는다. 그리고 이어지는 내용은 단 하나의 복잡한 질문이다. 과연 E. H. Carr가 던진역사란 무엇인가?”에 답을 해보자고 말한다. 저자는 이 질문은 1) 역사란 무엇에 관한 것이며, 2) 역사가는 어떤 방법을 통해 그 대상을 탐구해야 하는지, 마지막으로 이 3) 역사란 무엇인지라는 세 개의 질문이 섞인 복합질문이라고 말한다.

 



Abélard and Heloïse in a manuscript of the Roman de la Rose (14th century)




정말 역사는 무엇일까?

답을 바로 하기 전에, 우리가 어떤 상황인지 한 번 살펴보자. ‘인간은 그/그녀가 소속된 각개의 고유한 패러다임에 따라 사유하고 행동하는존재들이라 한다. 역사가들이 역사를 연구하는 제 일의 목표는 타자의 삶을 제대로 이해하는데있다고 한다. 다시 질문이 생긴다. 왜 타자의 삶을 알아야 하는 걸까? 답은 너 잉여도 알고, 나 잉여도 아는 우리, 나의 삶을 알기 위해서.

 

하지만 역사를 바라볼 때 주의해야 할 점이 하나 있다. 앞서 모두가 각개의 고유한 패러다임 속에 살고 있다고 말했듯, 과거인들이 채택한 방법은 그 시대에 유용한 방법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회사에서 내가 하던 일을 다른 동료가 맡아 할 때도 그 결과가 똑같지 않다. 상대적으로 차이 나지 않아 보이는 시간인데도, 서로 다른 패러다임이 작동하고 있는 건 아닐까? 역사는 시간과 공간의 차이를 자각하며 읽어야한다. 그래야 한다. 다만, ‘과거에 존재했던 다양한 삶의 모습은 개연성을 찾아내 빛이 될 수 있으며’, 다채로운 대답은 해결의 실마리가 될 수 있다는 기대를 가슴에 품고. ‘한 줄기 희망이든, 부질없는 열망이든 상관없이나의 삶이 자유로운 말을 발견할 수 있도록.

 


서먹서먹한 시선, 얼빠진 표정으로 우리의 말들은 일그러져 가네

진심을 가득 담아 노랠 불러보지만 이제는 나조차도 자신이 없어

누군가 말하네 거침없는 말이 있다고 한 줄기 희망일까 부질없는 열망일까

웃으며 떠나네 자유로운 말을 찾아서 한 줄기 희망이든 부질없는 열망이든

상관없어 - ‘생각의 여름이라는 음악가의 노래, []

 



저자는 극단의 허무까지도 수용해야 한다고 말한다. D는 강의에서 역사속 아벨라르와 엘로이즈의 사랑을 확인하고는 실천을, 긍정을, 삶을 쏟아 부어절정에 이르렀다. 학생들에게 스스로의 사고 실험으로탐구하라는 말을 던지고, ‘어떤 회의에도 흔들리지 않는 확고한 진실을 가슴에 안으라며 영웅이 된 듯 이야기를 이어나간다. ‘자신의 삶에 대한 역사적 지식의 적용이야말로 역사를 공부하고 고민하는 궁극의 목표라 마무리를 한다. 하지만, 이 후 만남에서 A는 이별을 통보한다. 여기에서 DA에 대한 소설로 돌아오자. 둘은 죽는다. D는 자살을 하고, A는 죽음을 당한다. D는 자살하기 전, ‘역사의 무의미성, 역사적 교훈의 가벼움, 역사한다는 것의 허망함을 논한다.


과거와 현재 사이의 벽, 해석과 행동 사이의 거리, 부활과 재생은 일생의 책임을 요구해야 한다는데 말이다. 이 책의 형식이자, D의 실천과 이해에 대한 상징물인 사실로써의 역사허구로써의 문학이라는 경계가 희미해진다. 사랑과 집착의 경우는 그 경계가 더 희미하다. 사랑과 집착 사이에 놓인 경계는 어쩌면 우리 바람일 뿐이지는 않을까. 사람은 객관과 사실이 합리성을 보장한다는 관찰과 발견의 논리를 만들었다. 그리고 그 논리를 우리에게 들이대고 있다. 또한 예언자가 되어, 삶과 죽음을 긍정과 부정으로 나누고, 전파했다. 경계를 나누고, 의미를 부여한 것들 역시 (역사의 창안자이며, 대상자이기도 한) 인간들인 셈이다, 어떤 절대적 진리가 아니라. 이러한 사실마저 인정할 때, ‘고통과 슬픔이라는 매서운 절정에서도 (살아갈) 힘을 가질 의지를갖게 될 것이다. 그 의지를 갖고 담담히 그리고 담대히 새로운 출발을 하자는 저자의 바람인 듯하다.

 



어쩌면 역사는 자기계발서일지도 모른다

이상이 ‘69’라 다방 간판을 달았다가, 허가를 취소당한 일이 있다. 그 날 저녁 이상은 아마 삐루를 마시며 고것들 내가 쎈쓰 좀 부려보려 했건만 이리 막네라 웃지는 않았을까 상상해본다. 이상은 二十三이라는 표현을 내놓은 적도 있다. 뜻은 다리 둘과 다리 셋을 합친다는 류의 휴우머다. 우리, 이런 역사적 인물과 사건을 실마리 삼아 적어도 한 몇 년 즐겁게 잉여질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역사는 미래 예언은 아니지만 괜찮은 자기계발서인지도 모른다. “청춘들이여, 참아 봐, 좋은 날이 올꺼야라는 허경영의 친구들을 떠나보내야 하지 않을까.


얼마 전 무릎팍도사에 출연한 배우 김상경씨가 한 말이 계속 머리 위를 맴돈다. “광주 민주화운동은 특수부대원(계엄군)과 희생자 모두에게 불행한 근대사다. 그 공간에 그 사람들을 몰아넣고 맞서게 한 사람들의 책임이 크다.” 이 같은 일은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다. 누가 책임을 져야 하는지 아는 삶을 살 수 있다는 것, 문제가 어디에서 어떤 양상으로 발생하는지 살펴볼 수 있는게 역사와 대화를 나누면 얻게 되는 힘이 아닐까. 이게 아마 저자가 말하는 생의 역사인 것 같다.


805월 광주를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따스한 눈인사를, 그 후로도 아파하는 사람들에게 따스한 눈인사, 그리고 미안함과 감사를. 그리고 김목인이 부르는 [음악가 자신의 노래] 처럼 많은 잉여들이 나 잉여의 노래를 스스로 지어 부를 수 있기를 바란다. 공염불이 되지 않기를 바라며, 그리 되지 않을 거라 예언하며. 안니옹.

 



덧붙임

박정희 정권 아래에서 살던 자신의 목소리를 갖지 못했던 사람들과 그 시대에 대한 책을 소개합니다. 그 시대를 살아간 사람들의 목소리를 담으려 애 쓴 연구들입니다. ‘유신’, ‘독재라는 한 시대를 통칭하기 전에, 그 시대를 살아 간 한 사람’, ‘한 사람의 이야기들을 살펴보길 바라는 마음에 권해봅니다.

*김현식, 2001, [역사, 위험한 거울], 푸른역사

*권보드래, 천정환, 2012, [1960년을 묻다 - 박정희 시대의 문화정치와 지성], 천년의 상상

* 김원, 2006, [여공 1970, 그녀들의 역사], 이매진

*김원, 2011, [박정희 시대의 유령들 - 기억, 사건 그리고 정치], 현실문화연구

* 김영미, 2009, [그들의 새마을 운동 - 한 마을과 농촌운동가를 통해 본 민중들의 새마을 운동 이야기], 푸른역사








 


※ 월간잉여 1월호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