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잉각색 2019.09.30 15:19

누구의 직원도 아닌 송희(김송희)

회사를 또 그만둔다. 다닌 지 2년을 코앞에 두고 퇴사가 결정되었다(쫓겨나는 것도 아닌데, 왠지 수동태를 쓰고 싶다). 퇴사라는 놈은 겪을 때마다 참 마음이 산란해진다. 무릇 완벽한 직장이란 없어 다닐 때에는 짜증나고 불만스러운 일들 천지인데, 막상 그만두려면 나를 힘들게 했던 것들조차 왠지 아련하다. 물론 거기에는 앞으로 겪게 될 변화에 대한 귀찮음과 심란함도 포함된다.

 

나의 구() 직장은 <빅이슈>. 아는 사람은 알고, 또 모르는 사람도 많아서 왜 거 있잖아요. 지하철 앞에서 빨간 조끼 입은 노숙인 아저씨들이 파는 잡지요!”라고 설명을 곁들여야 하는 어중간한 인지도의 잡지사다. 원래 회사를 다닐 때보다 그만둘 때에 구구절절 할 말이 더 많은 법인데, 왜 모든 잡지사는 그만둘 때 퇴사의 변같은 걸 쓸 수가 없는 지 아쉽다. 그래서 그걸 월간잉여에 쓴다.(? ?)

 

2년 남짓의 시간 동안 나는 “<빅이슈>의 김송희 기자입니다로 나를 설명해왔다. 아마 며칠 후면 그냥 김송희가 될 것이다. 얼마 전 퇴사를 결심하고, 우연히 면접을 하나 봤다. 그간 다녔던 여러 회사들이 나열된 이력서를 뒤적이며 면접관은 이렇게 물었다. “전 직장들이 다 고만고만하네, 제일 내세울만한 데가 어디에요?” 김송희라는 사람을 포장지로 둘둘 감싸서 설명하는 너저분한 작업 앞에서 갑자기 머리가 뜨끈해졌다. 지금 내가 설명하고 있는 저 김송희는 누구지? 처음 보는 사람에게 나를 증명하고 설명하는 일이란 참으로 고단하다. 왜 나는 그냥 나이면 안 되는 걸까.

 

나는 유명한 회사에 다닌 적이 없다. 이름만 말하면 다들 우왕! 대단하다라고 박수칠만한 대기업이나, 부모님이 밖에 나가 우리 딸이 거기 기자야라고 자랑할 만한 유명 매체에서 정규직으로 일한 적이 없다. 그렇고 그런, 작은 회사들을 전전하면서 나중에는 꼭 그럴듯한 잡지사에 들어가야지라고 생각했다. 작은 매체의 기자는 섭외도 어렵고 일하면서 자부심을 느끼기도 어렵다. 그래서 나의 목표는 큰 매체에 이직하는 일이었던 것 같다. 서른에 접어들고부터는 더 조바심이 들었다. 이러다 어영부영 나이가 들어서 영영 기회를 잡지 못하면 어쩌나.

 

패션지가 됐든 여성지가 됐든, 체계와 규모가 있는 큰 잡지사에서 경력을 쌓는 일은 이 바닥에서 꽤 중요하다. 자신의 커리어를 멀리 내다 볼 때,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10년 후, 20년 후 내가 어디에서 무엇을 하려면 그 경력이 더욱 중요하다고 내내 생각했다.

 

그런데 정말 그 뿐이었을까. 나는 남 보기에 그럴싸해 보이는 직장을 원했던 것은 아닐까. 내 이름 앞에 따라붙어 나를 설명할 어떤 회사, ‘땡땡땡의 김송희 입니다라고 자랑스레 말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나는 이런 내가 부끄러워졌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온전히 아끼지도 못하고, 어디에 속해야만 나를 증명할 수 있다고 믿어왔던 나. 일하는 내내 어떻게 좋은 글을 쓸지, 어떻게 더 잘할 수 있을 지보다 남들이 나를 어떻게 봐줄지를 더 걱정하고 동동거리며 살아온 나. 가끔 상대방이 어디에 소속된 사람인가로 남을 평가하고, 회사의 이름이 곧 자신의 자부심인양 갑질을 해대는 사람들을 보며 혀를 끌끌 찼으면서. 결국은 나 역시 그 갑이 되고 싶었던 거다. 나를 알아줘, 나를 사랑해줘, 나는 이만큼 멋진 사람인데 니들은 왜 나를 몰라주는 거야. 그렇게 몸부림치는 동안 결국 나는 내가 누구인지 모르게 돼버렸다.

 

15세 관람가 주제에 10대 주인공들이 할 짓 다하는, 본격 염장질 영화 <안녕, 헤이즐>에 이런 장면이 있다. 거스가 헤이즐에게 내가 널 좋아하는 이유를 설명한다. “너의 이런 것 때문에 널 좋아하는 거야. 헤이즐 그레이스, 너는 다른 사람이 너를 어떻게 보는지 관심이 없어 보였어. 너는 너 자신으로 있기에도 너무 바빠서 다른 사람들이 널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는 거야. 그래서 널 좋아해.”

 

전국 카페 스피커에 아담 리바인의 lost stars만 지긋지긋하게 플레이되도록 만든 원흉, <비긴 어게인>의 그레타 역시 자기 자신으로 사느라 바쁜 여자다. 그녀는 남자 친구가 배신을 해 뉴욕 한 복판에 갈 데 없이 버려져도, ‘노래도 곧잘 하고 예쁘니까 성공하겠어라는 달콤한 말을 들어도 원래 있는 그대로의 나의 노래를 부르는 여자였다. 그레타가 누구와 맺어질 필요가 없는 자립적인 여자였기에 관객들은 그녀를 사랑한 걸게다.

 

 

영화 <비긴어게인> 中

 

회사를 그만 두면서, 더 큰 회사에 들어가고 싶어서 기웃대고 김송희라는 제품을 그럴싸하게 포장하려 고심하는 나를 보며 이런 생각을 했다. 지금 내게 중요한 건 나를 그들에게 증명하는 일이 아니고, 나의 시간을 충실하고 즐겁게 쓰면서 앞으로 나아가는 일이라고. 어디에서 어떤 식으로 밥벌이를 하고, 어디에 어떤 글을 쓰게 되더라도 내 이름이 부끄럽지 않은 좋은 글을 써내면 충분한 거라고. 어디에 소속된 내가 아니어도 된다. 어떤 브랜드에도 기대지 않고 그냥 로 충분할 수 있어야 우리는 진짜 자립을 할 수 있는 거다.

 

아무 대책도 없이, 이직할 곳도 없이 나는 회사를 그만뒀다. 오늘 사람들에게 인사를 하고, 아쉬워하며 그래도 나를 알아주는 사람들과 일 했던 시간이 소중했다고 느꼈다. 작은 회사였고, 전국구 가난뱅이 회사였고 5년차인데도 첫 직장보다 적은 월급을 받았지만. 나는 그래도 이 회사를 꽤 좋아했다. 여기였기에 쓸 수 있었던 글들, 인터뷰할 수 있었던 사람들, 우리가 나눴던 시간들을 좋아했고 즐거웠다.

 

쉬운 일도 있었고, 신났던 일도 있었고, 그만큼 힘든 일도, 짜증나는 일도 많았다. 그걸 굳이 세세히 적을 필요는 없을 것이다. 누구의 직원도 아닌 그냥 김송희로, 다른 누구도 아닌 나로 우뚝 서서 조금 쓸쓸하지만 가을방학을 즐기려고 한다. 당분간 매우 한가하여 아르바이트든, 공짜 술이든 언제나 환영한다. 아래의 메일로 연락 바람.

 

 

 

그냥 김송희. flymoon6@naver.com

blog.naver.com/flymoon6

 

 (격)월간잉여 17호에 실린 글입니다.